안현민과 정면승부를? 차라리 대놓고 거른다...'최근 3G 6볼넷' KT 괴물타자 공포증 최절정 [춘추 이슈분석]

리그 초토화한 괴물 타자 등장에 투수들 노골적인 승부 회피...안현민에게 주어진 숙제

2025-06-23     배지헌 기자
투수들에게 납량특집 같은 공포를 선사하는 안현민(사진=KT)

 

[스포츠춘추]

최근 팬그래프에 올라온 흥미로운 칼럼 하나가 화제를 모았다. 야구 역사상 최고의 괴물 타자 중 하나인 애런 저지의 컨택시 wOBA(가중출루율)가 볼넷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차라리 볼넷으로 거르는 편이 낫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KBO리그에도 '한국의 저지'로 불리며 투수들에게 '스트라이크 던지면 죽는다'는 공포를 선사하는 타자가 등장했다. 바로 KT 위즈의 온몸이 근육인 몬스터 타자 안현민이다.

안현민은 6월 23일 현재 46경기에서 타율 0.331, 13홈런, 43타점, 출루율 0.434, 장타율 0.651로 숫자만 봐도 뒷목이 서늘해지는 스탯을 찍고 있다. 리그 홈런 1위는 27개를 기록한 삼성 르윈 디아즈지만, 홈런 13개인 안현민의 포스도 그에 못지 않다. 안현민의 순장타율은 0.320으로 디아즈(0.329)와 큰 차이가 없고, 타수 대비 장타도 0.14개로 디아즈와 동률이다. 뜬공타구 대비 홈런은 0.24개로 박병호(0.25), 디아즈(0.24)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투수들 입장에선 숏츠 화면을 넘기다가 우연으로라도 만나고 싶지 않은 악몽같은 존재다.

상대 투수 입장에선 야구게임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타자가 된 안현민(사진=KT)

키 183cm, 몸무게 90kg의 탄탄한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안현민은 마산고 시절에만 해도 '컨택 히터'에 가까웠다. 당시 프로 스카우트 사이에선 "컨택과 선구안, 출루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프로에서 힘을 키우면 더 좋은 타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2022 신인 드래프트 2차지명에서 KT의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안현민은 고교 시절과는 다른 타자로 진화했다. 공격력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꾼 그는 2군에서 1년만 보낸 뒤 바로 입대해 빠르게 군 문제부터 해결했다. 강원도 양구군 21사단에서 매일같이 운동하며 몸을 만들어 한때는 '3대' 640kg까지 들 정도로 힘이 좋아졌다. 원래 좋았던 컨택과 출루능력, 운동능력에 힘까지 더해지자 완전체로 진화했다는 평가다.

엄청난 타구속도와 비거리로 무장한 안현민은 "스쳐도 홈런, 제대로 맞은 타구는 다음날까지 계속 날아간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정도로 리그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5월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김택연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터뜨린 안현민은 2~4일 키움과의 수원 3연전에서 11타수 7안타 3홈런 9타점으로 폭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투수들의 악몽, 안현민(사진=KT)

안현민의 괴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투수들의 대응 방식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특히 볼넷 지표의 변화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5월 4일까지 6경기에서 볼넷이 0개였던 안현민은 멀티홈런을 때린 4일 경기 바로 다음날인 5일 경기에서 시즌 첫 볼넷을 얻어 나갔다. 5월 4일까지는 6경기에서 4홈런을 치며 0.409/0.435/1.000의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볼넷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타석당 볼넷 비율이 0.0%였고, 볼 비율도 40.4%에 그쳤다.

하지만 5월 5일부터 29일까지 21경기에서는 볼넷 10개로 타석당 볼넷 비율이 11.0%로 급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의 변화다. 5월 30일부터 6월 22일까지 19경기에서 볼넷 16개를 얻어 타석당 볼넷 비율이 19.5%까지 치솟았고, 최근 7경기에서는 9개의 볼넷을 얻어 29.0%라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투구수 대비 볼 비율도 48.0%에 달해 투수들이 얼마나 안현민과의 승부를 회피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이 같은 '안현민포비아' 현상의 정점은 21일 NC전에서 나타났다. 안현민은 이날 첫 4타석을 모두 볼넷으로 걸어나갔는데, 이 중에는 2타석의 스트레이트 볼넷, 1타석의 5구 승부 볼넷, 1타석의 자동고의볼넷이 포함됐다. 이 중엔 투수들이 제구력 부족으로 내준 볼넷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공을 주지 않고 승부를 피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흡사 배리 본즈의 전성기 때 만루에서도 상대 벤치가 고의볼넷으로 거르던 장면이 연상될 정도다. 

22일 NC전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지속됐다. 이날 3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한 안현민은 네 타석 동안 좋은 공을 거의 보지 못했다. 1회말 첫 타석에서 로건 앨런은 1, 2구를 크게 벗어나는 바깥쪽 높은 볼로 던졌고, 3구 바깥쪽 꽉 찬 슬라이더, 4구 다시 높게 벗어나는 볼을 던진 뒤에야 5구째 커브를 스트라이크존에 던졌다.

4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초구 스트라이크 후 2구 바깥쪽, 3구 몸쪽으로 벗어나는 볼을 던졌고, 6회에는 초구 스트라이크 후 4구 연속 볼로 볼넷을 내줬다. 8회에도 초구 스트라이크 후 2, 3, 4구를 모두 크게 벗어나는 공으로 던지는 등 승부 회피 양상이 뚜렷했다.

안현민의 기간별 타격 성적 변화. 볼넷과 볼 비율의 폭증이 눈에 띈다(통계=스탯티즈)

이렇게 좋은 공이 들어오지 않자 안현민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칠 만한 공이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다 보니 웬만큼 비슷한 공에는 배트가 나오는 경향이 눈에 띈다. 22일 경기에서도 첫 타석과 8회 타석에서 '나쁜' 공을 때리려다가 범타로 연결됐다. 나쁜 공을 치다 보니 타격 성적도 다소 하락했다. 최근 7경기 타율이 0.227, 최근 5경기 타율이 0.143으로 다소 페이스가 떨어지는 모습이다. 투수들이 대놓고 승부를 피하는 상황에서 안현민으로서는 참을성과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안현민을 너무 의식하다가 상대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나온다. 21일 대역전패를 당한 NC가 대표적이다. 이날 첫 3타석 연속으로 안현민을 걸러보낸 NC는 5대 0으로 앞선 8회말 안현민 앞타자 김상수의 볼넷 출루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 안현민 앞에 주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식이 오히려 제구 난조로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안현민 타석에서 또다시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한 투수 전사민은 결국 무사 1, 2루 상황에서 강판됐다.

NC는 이 이닝에만 볼넷과 몸에 맞는 볼을 남발하며 7실점을 허용해 역전패를 당했다. 특정 타자 상대로 무조건 승부를 피하고 거르는 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안현민이라는 신종 괴물타자 공포가 번져가는 가운데 상대 투수에게도, 안현민 본인에게도 새로운 고민거리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