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후예들이 돌아왔다...브라질 4팀, 클럽 월드컵에서 유럽 명문 클럽 연파 '돌풍' 비결은? [춘추 이슈분석]
플라멘고·보타포고 등 브라질 참가팀 8경기 6승 2무 돌풍
[스포츠춘추]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FIFA 클럽월드컵이 예상 밖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개최국인 미국이 아닌 남미의 브라질이 대회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참가한 4개 구단이 모두 조 1위를 달리며 유럽 강호들을 연달아 격파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디 애슬레틱의 잭 랭 기자는 23일(한국시간) '클럽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초반 강세가 축구 강국으로서의 지위에 대해 말해주는 것' 제목의 기사에서 "이 대회는 미국에서 열리고 있지만 사실상 브라질 토너먼트"라며 "나머지 세계는 아직 이를 깨닫지 못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브라질 4개 구단은 23일까지 총 8경기에서 6승 2무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보타포고의 PSG 격파는 세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긴 이변이었다. 루이스 엔리케 PSG 감독은 경기 후 "이번 시즌 우리를 상대로 이렇게 잘 수비한 팀은 없었다"고 극찬했다. 그외 플라멩구는 첼시를, 플루미넨시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런 선전은 브라질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브라질 언론들은 "유럽인들이 FIFA에 청원서를 보내고 있다"며 "바스코 다 가마(리우 하위 리그에 있는 팀)를 대회에 참가시켜 달라고 한다. 그래야 우승할 기회라도 생긴다"는 농담을 퍼뜨리고 있다.
브라질은 세계적 축구 강국이지만 21세기 들어 침체기를 겪었다. 이번 성과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랭 기자에 따르면 브라질 구단이 공식 경기에서 유럽팀을 이긴 것은 2012년 코린치안스가 클럽월드컵 결승에서 첼시를 꺾은 이후 처음이다.
1960년대 펠레의 산토스가 대륙간컵을 연속 우승하고, 1981년 플라멩구가 리버풀을 격파하는 등 과거 브라질 축구는 유럽과 대등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유럽 축구가 상업화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인프라와 전술 혁신에서 앞서나가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2010년엔 인테르나시오나우가 콩고의 TP 마젬베에게 탈락하고, 2011년에도 산토스가 바르셀로나에게 대패하는 등 굴욕을 당했다. 그레미우, 플라멩구, 팔메이라스, 플루미넨시 모두 유럽팀과의 결승에서 패배를 맛봤다.
디 애슬레틱은 브라질 축구 부활의 배경으로 여러 요인을 제시했다. 먼저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2021년 브라질 정부가 축구 구단의 새로운 소유 모델을 도입한 법을 통과시키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크리스털 팰리스 공동 소유주인 존 텍스터가 보타포고를 인수했고, 레드불은 브라간치노에, 시티 풋볼 그룹은 바이아에 투자했다.
선수 영입 전략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 브라질 구단들은 유럽행을 앞둔 유망주나 은퇴를 앞둔 베테랑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제는 전성기 선수들을 영입할 여력이 생겼다. 플라멩구가 2022년 마르세유에서 1500만 유로(210억원)에 영입한 25세 미드필더 제르송이 대표적 사례다.
외국인 감독 영입을 통한 전술적 혁신도 주효했다. 최근 6년간 브라질 리그 우승팀 중 4팀이 포르투갈 감독의 지휘를 받았다. 이는 브라질 축구계의 개방성을 보여주며, 최근 이탈리아의 카를로 안첼로티가 브라질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는 배경이 됐다.
이런 변화의 결과로 브라질은 남미 지역의 챔피언스리그 격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독점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최근 6년간 우승팀이 모두 브라질 구단이었고, 그 중 4번은 브라질 구단끼리 결승을 치렀다.
인터 마이애미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감독은 "팔메이라스 스쿼드를 보면 모든 포지션에 2-3명의 높은 수준 선수들이 있다"며 "플라멩구, 플루미넨시, 보타포고도 마찬가지다. 다들 많은 투자를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랭 기자는 "일정이 너무 빽빽해 잘 나가는 팀들은 한 시즌에 70-80경기를 치른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주별 리그 경기들이 많고, 열악한 경기장 상태도 여전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번 클럽월드컵은 희망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플라멩구의 필리페 루이스 감독은 "축구계에는 8-10개 팀으로 이뤄진 엘리트 그룹이 있다"며 "그들은 훨씬 우월하다. 하지만 그 엘리트 그룹을 제외하면 브라질 구단들이 2위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플루미넨시의 헤나투 가우슈 감독도 "경제적으로는 유럽팀과 경쟁할 수 없다"면서도 "축구 경기는 필드에서 결정된다. 브라질 국민들은 우리 구단들이 클럽월드컵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정말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 12월 이코노미스트지가 "브라질 축구는 차세대 프리미어리그처럼 보인다"고 평가한 것처럼, 한때 유럽에 밀렸던 브라질 축구가 다시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클럽월드컵이 그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