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팀 때문에 생긴 적자, 여자팀 팔아서 해결?...EPL 클럽들의 여성팀 매각 꼼수 논란 [춘추 EPL]
아스톤 빌라도 첼시 따라 여성팀 매각 추진...여성축구 '재정도구화' 확산
[스포츠춘추]
남성 축구팀의 무분별한 투자와 경영 실패로 벌어진 재정 적자를 여성팀 매각으로 메우려는 시도가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확산되고 있다. 첼시에 이어 아스톤 빌라까지 여성팀 매각을 추진하면서, 여성 스포츠가 남성팀의 재정 문제 해결 도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6월 26일(한국시간) 기사에서 "지난 18개월간 여성팀 매각 방안을 검토해왔다"는 아스톤 빌라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빌라는 지난 2년간 1억9500만 파운드(3601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PSR(수익성 및 지속가능성 규정) 위반 위기에 몰렸다. PSR은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3년간 손실을 1억500만 파운드로 제한하는 재정 건전성 규정이다.
빌라의 적자 규모는 상당하다. 2022-23시즌 1억1960만 달러(1622억원), 2023-24시즌 8540만 달러(1158억원)를 기록했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을 영입하고 대규모 선수 영입에 나선 결과다. 빌라 남자팀은 3년 연속 7위 이내 성과를 거두며 유로파리그 진출권까지 확보했지만, 클럽 전체의 재정 부담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빌라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첼시 사례'다. 첼시는 작년 6월 30일 재정 마감 이틀 전 모기업 블루코22에 여성팀을 매각해 1억9870만 파운드(3669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세전 1억2840만 파운드(2372억원)의 흑자로 돌아서며 어렵사리 PSR 위반을 피했다.
첼시는 이후 레딧 공동창업자이자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의 남편인 알렉시스 오하니언에게 여성팀 지분 8%를 2000만 파운드(369억원)에 매각했다. 여성 스포츠 투자라는 명목으로 이뤄진 거래지만, 실질적으로는 남성팀의 재정 문제 해결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이런 거래 방식에 대해서는 각계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축구 재정 전문가 키에런 맥과이어는 "뉴캐슬은 수익의 2배, 위기의 첼시 남자팀도 5배에 팔렸는데, 첼시 여자팀은 수익의 18배에 팔렸다"며 "전통적인 평가 기준으로는 정당화할 수 없는 가치"라고 지적했다.
여성축구 재정 전문가 크리스티나 필리푸 박사의 분석도 비슷하다. "아스널 여자팀이 첼시보다 더 많은 수익(1500만 파운드 대 1100만 파운드)을 올리는데 첼시가 높게 평가받는 것은 의문"이라며 "지배력도 없는 소수 지분에 대한 과대평가"라고 평가했다.
UEFA는 이런 매각 방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럽축구연맹은 자매 회사 간 자산 매각을 FFP(재정공정성규정) 계산에서 제외하고 있어 첼시가 벌금을 물 가능성이 있다. 프리미어리그도 아직 첼시의 거래를 공정 시장 가치로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빌라는 첼시와 유사한 방식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자체 매각이든 외부 투자든 재정 규정을 준수하기 위한 선택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빌라 여자팀은 지난 시즌 여자 슈퍼리그 6위에 그쳤지만, 매각 시 상당한 장부상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미어리그는 작년 6월 이런 자산 매각을 금지하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표결에서 부결됐다. 당분간은 남성팀의 경영상 어려움을 여성팀 매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전망이다. 여성 스포츠의 성장이 진정한 가치 인정보다는 남성 스포츠의 재정 문제 해결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실에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