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KBO 역수출? 전 LG 디트릭 엔스, 1371일 만의 빅리그 복귀전 5이닝 무실점 감격의 승리 [춘추 MLB]
애슬레틱스 상대 5이닝 무실점...KBO에서 갈고 닦은 체인지업 장착 성공
[스포츠춘추]
또 하나의 KBO 역수출 신화 탄생인가. 전 LG 트윈스 외국인 투수 디트릭 엔스가 1371일 만의 메이저리그 복귀전에서 무실점 피칭으로 승리를 거뒀다.
엔스는 6월 27일(한국시간) 홈구장 코메리카 파크에서 열린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팀의 8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선발투수로 등판한 엔스는 5이닝 동안 1안타 2볼넷 4탈삼진으로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2021년 9월 이후 첫 메이저리그 등판에서 승리투수가 된 엔스다.
엔스에게 이날은 단순한 1경기 등판이 아니었다. 2021년 9월 16일 탬파베이 레이스 소속으로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4이닝 1실점으로 승리한 이후 정확히 1371일 만에 다시 밟는 빅리그 무대였다. 그 사이 엔스는 일본과 한국을 거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소화했다.
2012년 뉴욕 양키스에 19라운드로 지명돼 프로 경력을 시작한 엔스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통산 12경기 등판에 그쳤다. 빅리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엔스는 2022년부터 일본프로야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뛰었고, 2024년 총액 1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외국인 투수로 LG 트윈스에 합류했다.
LG에서의 한 시즌은 아쉬움이 남았다. 좌완에서 나오는 150km 속구와 커터 구위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확실한 결정구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염경엽 감독의 주문을 받고 체인지업 완성도를 높이는 데 공을 들였지만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구위를 앞세워 30경기 13승 6패로 두 자리 승수는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이 4.19로 다소 높았고,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엔스는 올해 1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재기를 노렸다. 트리플 A 톨레도에서 14경기에 선발 등판해 평균자책 2.89에 9이닝당 10.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꾸준한 호투를 펼치며 기회를 엿봤다. 마침내 빅리그 선발 리즈 올슨의 부상 이탈로 메이저리그 콜업 기회가 돌아왔고, 엔스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엔스는 5이닝 동안 77구를 던졌다. 포심 패스트볼 37구, 체인지업 23구, 커터 8구, 커브 7구, 싱커 2구로 전체적으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위주의 피칭을 구사했다. LG에서 보낸 지난 시즌 내내 완성하려고 애썼던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적극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4.5마일(약 152km)을 기록했다.
엔스는 1회 8구만으로 3명을 연속 아웃시키며 완벽한 출발을 보였다. 3회에 맥스 슈만의 선두타자 안타와 덴젤 클라크의 볼넷으로 1, 3루 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여기서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연속 병살타를 유도해 위기를 넘겼다. 이후 마지막 8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아웃시키며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A.J. 힌치 타이거스 감독은 경기 후 "그의 여정이 자랑스럽다"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시 기회를 만들어냈다"고 일본과 KBO리그를 거친 엔스의 도전을 평가했다. 이어 "같은 것을 반복하며 새 기회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체인지업을 발전시키고 카운트 싸움을 더 잘하게 됐다"고 엔스의 발전된 모습을 칭찬했다. KBO리그에서 체인지업을 완성하려고 노력한 시간이 빅리그에서 성공적인 등판으로 돌아온 셈이다.
최근 KBO리그를 거친 외국인 투수들의 메이저리그 복귀 사례가 늘고 있다. 앞서 롯데 출신 브룩스 레일리, SK(현 SSG) 출신 메릴 켈리, NC에서 투수 3관왕을 차지한 에릭 페디, 삼성 출신 벤 라이블리와 알버트 수아레즈 등이 성공적인 복귀를 이뤄냈다. 이날 호투로 엔스가 이 대열에 새로운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흥미롭게도 디트로이트 트리플 A팀 톨레도에는 전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과 전 두산 외국인 투수 조던 발라조빅도 있다. 고우석은 최근 타이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빅리그 데뷔에 도전하고 있다. 만약 엔스가 빅리그에 남아 호투를 이어가고, 고우석이 빅리그 데뷔에 성공한다면 전 LG 외국인 투수와 마무리 투수가 같은 팀에서 뛰는 진기한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