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스타전 예능화가 불만? 그게 어때서? 예전 '핵노잼' 무관심 올스타전보다 낫지 않나요 [배지헌의 브러시백]

메이저리그와 같을 수 없는 시스템, 누구도 '진짜 야구' 원하지 않는 현실... 그렇다면 팬이 좋아하는 길이 답이다

2025-07-13     배지헌 기자
올스타전의 예능화는 불가피한 한국적 선택이다(사진=한화)

 

[스포츠춘추]

올스타전 때마다 매년 되풀이되는 시비가 있다. 12일 대전에서 열린 2025 KBO 올스타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려한 분장, 기발한 퍼포먼스, 팬서비스가 경기 못지않게 화제가 됐지만 일각에서는 어김없이 불평의 목소리가 나온다. "너무 예능화됐다", "양준혁 자선야구인 줄 알았다", "진짜 야구를 보고 싶다", "메이저리그를 봐라"는 목소리다.

예능과 야구의 대립, 퍼포먼스는 화려할지 몰라도 야구의 진정성은 떨어졌다는 지적이 매년 반복된다. 올스타전의 예능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같은 불평만 늘어놓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솔직해져 보자. KBO 올스타전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처럼 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특별한 이유는 명확하다. 30개 구단이 양대 리그와 6개 지구로 나뉘어 있어 평소 만나기 어려운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시즌 때 보스턴 팬이 오타니를 보려면 1년에 몇 번 안 되는 다저스 원정경기를 기다리거나 서부까지 날아가야 한다. 다저스 팬이 김하성을 보고 싶어도 마찬가지. 분명한 희소성이 존재한다.

KBO는 어떤가. 10개 구단이 최소 16차례씩 맞붙는 단일리그다. 대전 사는 팬이 KTX로 서울 가서 경기를 보고 당일 귀가가 가능하다. TV와 모바일로 144경기 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김도영이나 류현진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이 메이저리그만큼 특별할 리 없다. 그렇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더 중요한 건 당사자들의 마음이다. 구단도, 감독도, 선수들도 올스타전에서 '진짜 야구'를 하길 원하지 않는다. 한 구단 관계자의 솔직한 고백이 모든 걸 보여준다. "사실 구단 입장에선 선수가 올스타전에서 힘빼는 걸 원하지 않는다. 부상이라도 생기면 어쩐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요즘엔 팬들도 너무 전력으로 하면 뭐라고 하는 분위기더라." 물론 겉으로야 "팬들과 함께하는 축제"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후반기 페넌트레이스에만 집중되어 있다.

2010년 류현진-김광현 맞대결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온 야구계와 팬들이 리그 최고 에이스들의 멋진 대결을 기대했지만 둘 다 1회부터 대량실점하고 무너졌다. 정규시즌 후반기 첫 등판을 대비해 의도적으로 페이스를 조절한 결과다. 당시만 해도 팬들이 올스타전을 진지하게 여기던 시절이었고, 두 선수는 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뭇매를 맞았다. 이처럼 '슬렁슬렁 올스타전'에는 역사와 전통이 있다.

몇 해 전 올스타에 처음 선발된 선수에게 축하 인사를 했더니 "솔직히 가기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과 함께 쉬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이 선수만이 아니었다. “나간다고 뭐 얻는 것도 없지 않나” “하루라도 더 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선수가 적지 않았다. 올스타전 출전을 정말 원하는, 선발을 빛나는 영광으로 생각하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올스타 선정이 큰 영광이다. 30개 구단 600여 명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기 때문이다. 신인급 선수는 올스타에 뽑히면 보너스를 받거나, 연봉 협상에서 유리한 근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명예의전당 투표에서도 중요한 지표다. 중계방송 때마다 선수 이름 옆에 '몇 차례 올스타'가 장식처럼 따라붙는다.

그렇지만 KBO는 다르다. 10개 팀에서 뽑는 올스타다 보니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떨어진다. 연봉 협상이나 FA 계약에서 특별한 가치를 갖지도 않는다. 중계방송에서 선수 소개할 때 '올스타 3회에 빛나는' 같은 말을 붙이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더러 "진짜 야구를 하라"고 요구하는 게 현실적일까? 당사자들이 원하지도 않고, 시스템상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게 맞을까.

다스베이더로 분장한 폰세. 한국식 올스타전에 빠르게 적응한 모습(사진=한화)

오랫동안 ‘노잼 올스타전’과 ‘올스타전 흥행 부진’에 고민한 KBO가 내린 결론은 현실적이었다. 어차피 메이저리그 같은 위상을 갖기 어렵다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자는 것. 그게 바로 예능화였다. 이에 KBO는 2019년부터 '베스트 퍼포먼스상'을 신설하고 구단과 선수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대놓고 분장과 퍼포먼스를 마음껏 하라고 판을 펼쳐줬다. 첫해부터 ‘로맥아더장군’과 ‘최정 홈런공장장’이 대박을 쳤다. 이후 올스타전은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능가하는 분장과 퍼포먼스 경연장이 됐다. 

결과는 어떨까? 예능화된 KBO 올스타전은 큰 흥행에 성공했다. 5-6군데였던 스폰서가 올해는 17곳으로 늘었고, 만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올스타 굿즈는 완판 행진이다. 

더 중요한 건 팬 구성의 변화다. 2023년 1000만 관중 중 20-30대가 50% 이상을 차지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새로 야구팬이 된 이들은 기존 팬들과 야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야구만 보러 야구장에 오지 않는다. 야구 경기만큼이나 선수의 색다른 모습, 재미있는 퍼포먼스에서도 즐거움을 느낀다. 기존 '고인물' 팬들이야 예능화를 못마땅해할 수 있지만, 새로운 팬들의 취향은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시장은 이미 후자 쪽으로 기울었다.

이를 두고 마케팅 전문가 김경민 단국대 겸임교수는 "제대로 된 상품과 서비스의 기준은 공급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 먹방 콘텐츠 구독자가 1840만 명이 넘는다. 내 관점에선 '와그작 와그작 먹기만 하는 영상을 왜 보는 거지?' 싶지만, 1840만 명이 구독한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중심으로 상품을 기획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야구팬의 입장에서 최고 투수와 최고 타자가 자존심을 걸고 맞붙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올스타전에서 힘빼거나 부상당하지 않길 원하는 구단들, 쉬고 싶어하는 선수들, 야구 외에도 볼거리에 주목하는 새로운 팬들. 이것이 KBO의 현실이다.

정규시즌 홈런 1위 르윈 디아즈(삼성 라이온즈)가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도 정상에 올랐다(사진=삼성)

그렇다면 올스타전 예능화는 한국적 현실에서 가능한 최선일 수 있다. 적어도 과거처럼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사무국 외엔 누구도 원하지 않는 '노잼 올스타전'보다는 낫다. 선수들도 전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무엇보다 팬들도 즐거워한다. 가족과 함께 참가해서 동료 선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선수들도 많아졌다. 모두가 만족할 순 없을지 몰라도, 모두가 불만족인 상황에선 일단 벗어났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전보다 나은 방향이라면 인정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불가능한 이상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KBO 올스타전의 예능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꾸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며 시비를 걸 일이 아니다. 김 교수의 말처럼 내가 이해 못하는 유튜브 채널을 1800만 명이 보고 있다면, 세상이 틀렸다고 할 게 아니라 세상이 달라졌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낫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게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