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돌이가 결정했을리는 없는데...'구단주 개입 금지' 키움, 단장-감독 해임 결정 누가 왜 했나 [춘추 이슈분석]

키움의 감독-단장-수석코치 동시 해임 미스터리

2025-07-14     배지헌 기자
키움은 여전히 이장석 전 대표이사가 최대주주로 구단의 주인이다(이미지=ChatGPT 생성)

 

[스포츠춘추]

키움 히어로즈가 14일 발표한 '감독-단장-수석코치 보직 해임' 보도자료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세 사람을 보직에서 해임했다는 사실만 있고 왜 잘랐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감독이나 단장을 해임할 때는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팀의 쇄신을 위해' 따위 그럴싸한 명분을 들게 마련인데 키움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을 한꺼번에 자르면서 아무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대표이사가 홍 감독과 고 단장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구단의 결정 사항을 전달했다"고 언급한 게 전부다. 감독과 단장을 동시에 자르는 결정이 대표이사 선에서 가능한 일인지, 여기서 말하는 '구단'이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의문이지만 일단 여기선 넘어가자.

물론 3년 연속 압도적인 최하위가 확실시되는 팀 성적 부진을 핑계로 댈 수도 있었겠지만, 차마 그 이유로 감독을 자르긴 어려웠을 거다. 올시즌 키움의 전력은 누가 봐도 최하위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키움의 2025시즌 선수단 40인의 예상 WAR을 합한 수치는 20.25승으로 9위 롯데(38.05승)의 절반에 불과했다. 1위 LG(47.09승)와 9위 롯데의 예상 WAR 차이가 9.04승에 불과한데 9위 롯데와 키움의 차이는 17.8승에 달했다.

10개 구단의 시즌 전 WAR 예측 수치 비교. 키움은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최하위로 예상됐다(표=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이 정도 전력차라면 이정후, 김혜성, 김하성이 한꺼번에 돌아와서 합류해야 하위권을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다. 이 멤버로는 야구의 신이 아니라 야구의 계왕신이 와도 꼴찌를 면할 수 없다. 감독에게 이런 선수단을 주고 성적을 내라고 요구하는 건 도둑 심보다. 키움이 홍원기 감독을 자르면서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라는 말을 소리내어 하지 못한 이유다.

그럼 이렇게 약한 선수단을 구성한 프런트 수장 단장을 탓해야 할까. 그러기도 애매하다. 키움 한 관계자는 "고형욱 단장은 이미 올시즌 전부터 사실상 업무 배제 상태였다"고 전했다. 지난 시즌 신인드래프트가 끝난 뒤 이상원 기존 스카우트 팀장과 함께 모든 스카우트 업무에서 배제됐고, 올시즌부터는 단장 고유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야구인은 "키움 원정 경기 시간에 고 단장에게 전화하니 고척돔 단장실에서 받더라"고 전했다. 단장들은 거의 모든 원정 경기에 동행하며 경기를 관찰하고 선수단의 상황을 파악한다. 진짜 '구단'은 고 단장이 원정 경기를 다니거나 단장 업무를 하길 원하지 않았다. 올 시즌 키움의 선수단 구성은 단장이 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 '작년, 재작년에도 키움은 꼴찌였다'는 반론이 예상된다. 그런데 키움의 지난 2년간 최하위 성적은 의도적인 '탱킹'에 가까웠다. 김하성이 떠나고 이정후도 떠난 가운데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리빌딩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춘 시즌 운영이 이뤄졌다. 젊은 선수들을 1군에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속성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전급 중에 FA를 앞둔 선수는 지명권을 받고 팔아치웠다. 키움을 아는 이 가운데 누구도 이런 의사결정을 단장이 주도했다고 보지 않는다. 

홍원기 감독(사진=키움)

감독, 단장 교체는 키움을 뒤에서 이끌어가는 신주류 세력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키움은 이장석 최대주주가 출소한 뒤 이 구단주와 관련있는 인사들을 하나둘씩 구단 고위직에 앉혔다. 위재민 대표이사는 이장석 구단주의 변호인 출신이다. 이 구단주의 지인으로 알려진 언론계 출신 인사도 영입했다. 역시 최측근으로 알려진 임상수 변호사를 비등기 법무이사로 등록하려고 시도한 일도 있었다. 이 사실이 보도돼 논란이 되자 일단 철회한 뒤 '법률자문' 계약으로 우회했다.

KBO가 지난 2018년 이장석 구단주의 영구 실격을 의결하고 구단 경영 개입을 금지했지만, 실제로는 구단의 중요한 결정을 좌우하는 고위 인사가 모두 이 구단주 측근으로 채워졌다. 이번에 단장이 된 허승필 운영팀장과 또 다른 실세 인사 A도 이 세력 교체 과정에서 발언권이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기존 구단 수뇌부 가운데 고 단장은 주류에서 밀려나고 권한을 뺏겼다. 구단 내부에선 다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각에서 '스카우트 실패 책임을 물었다'는 말도 나오지만, 다른 구단 스카우트 책임자 가운데 최근 키움의 신인 지명을 실패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올시즌을 앞두고 여러 뒷말을 낳았던 키움의 아리엘 후라도-엔마뉴엘 데 헤이수스 재계약 불발, 외국인 타자 2명 전략 등은 기존 단장 선에서 이뤄진 의사결정이 아니다. 타 구단에서 방출당한 선수들을 주워모은 오프시즌 '전력보강'도 마찬가지.

최하위 성적이 말해주듯 이 판단은 처참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키움은 꼴찌를 넘어 압도적인 최하위로 추락했고, 승률 2할대와 3할 초반을 넘나들며 타 구단의 승수자판기가 됐다. 매 경기 선발이 무너지고 불펜이 초반부터 등장하는 악순환 속에 성적은커녕 유망주 육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최악의 실패를 경험하는 중이다. 참고로 신임 단장은 올해 스프링캠프 자체중계에서 시즌 목표를 '가을야구'라고 선언한 바 있다. 

허승필 단장(사진=키움)

키움 내부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홍원기 감독과 고형욱 단장이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그나마 둘이 있어서 팀이 더 무너지지 않고 지탱했다고 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관계자의 말이다: "야구인 출신 중에 홍 감독만큼 구단의 무리한 요구에 보조를 맞춰줄 사람이 누가 또 있나. 어떤 야구인이 구단에서 저렇게 개입하고, 선수를 수시로 팔아치우는데 참고 자리를 지키겠나. 고 단장 역시 특수한 구단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경쟁력 있는 선수단을 꾸리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키움은 "대표이사가 홍 감독과 고 단장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구단의 결정 사항을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보통 구단에서 감독과 단장을 동시에 자르는 결정은 대표이사 선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구단주 재가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키움의 구단주는 공식적으로는 경영 개입이 금지된 인물이다. 그렇다면 키움의 이 결정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내린 것일까. 턱돌이가 했나.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언더 키움'이라도 있는 것일까. 모두가 뻔히 알면서 모른체 하는 이 눈가리고 아웅을 언제가지 참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