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 말했던 신임 단장, "절실함" 말하는 감독대행...키움은 대체 무슨 야구를 하겠다는 건가 [춘추 이슈분석]
김하성·이정후 팔고 외국인 영입 실패...선수단 절실함이 아니라 최약체 전력이 문제
[스포츠춘추]
"올시즌 가을야구를 목표로 한다."
키움 허승필 신임 단장이 지난 2월 25일 스프링캠프 자체중계 해설자로 나와서 한 말이다.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고 겨우내 눈에 띄는 전력 보강이 없었던 키움의 전력을 생각하면 다소 황당한 목표였다. 정말로 그렇게 믿었는지, 팬들 듣기 좋게 희망을 섞어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객관적 예상과는 크게 동떨어진 발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즌 전 전문가나 기자 가운데 키움의 최하위를 예상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전문가가 키움을 최하위로 고정한 가운데 나머지 9개 팀의 순위를 매겼다. 수치상으로도 키움의 최하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키움의 2025시즌 선수단 40인의 예상 WAR을 합한 수치는 20.25승으로 9위 롯데(38.05승)의 절반에 불과했다. 1위 LG(47.09승)와 9위 롯데의 예상 WAR 차이가 9.04승에 불과한데 9위 롯데와 키움의 차이는 17.8승에 달했다. 어떤 경우의 수를 동원해도 키움이 꼴찌를 면하는 건 불가능했다.
상식적인 예상대로 키움은 전반기를 최하위로 마감했다. 그런데 키움은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홍원기 감독을 보직 해임했다. 구단 외부에서는 최하위 전력으로 최하위를 한 게 감독교체 사유가 되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올해 목표는 가을야구'라고 했던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을야구에 도전할 팀인데 전반기 승률 0.307로 최하위에 그쳤으니 감독 책임이 아니겠는가.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잘했어야 한다, 혹은 "모두의 미스가 있었다"(허 단장 인터뷰 발언). 상황 인식과 진단이 잘못되면, 엉뚱한 처방이 나오는 법이다.
아니다. 키움의 최하위는 감독이나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못해서가 아니다. 키움 감독과 선수, 코치진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각자가 가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했다. 모두의 미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잘못에서 모든 것이 비롯됐다. KBO로부터 영구실격 제재를 받았지만 여전히 측근들을 통해 구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의심받는 '언더 키움'의 존재가 키움을 지금 같은 수렁으로 빠뜨렸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다.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아래에선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줄 잘 선 사람이 높이 올라가고, 진짜 책임 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 악순환이 생긴다. 키움에선 다른 구단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키움은 슈퍼스타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을 미국에 보내고 주전선수 박동원, 최원태, 조상우, 김휘집을 팔아치워 팀 전력을 셀프 약화시켰다. 이정후는 자신의 포스팅비 수입을 구단이 선수단을 위해 써달라고 요청했지만 키움이 이 돈을 전력강화나 선수단 복지에 썼다는 흔적은 아직 찾지 못했다.
안 그래도 약한 전력인데 지난해 마운드를 이끈 외국인 에이스 듀오와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엉뚱하게 외국인 타자 2명을 데려온 뒤 "가을야구를 위해선 200홈런이 필요(허승필 단장 중계방송 발언)"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리그에서 200홈런을 친 팀은 한 팀도 없었다. 올해 KBO리그는 투고타저 경향이 뚜렷하다. 키움이 야심차게 영입한 외국인 타자 야시엘 푸이그는 6홈런, 루벤 카디네스는 5홈런을 치는 데 그쳤다. 이런 사태에 책임 없는 감독과 단장은 잘렸고, 이 의사결정에 책임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았다.
진짜 인적청산 대상은 그대로인데 대신 돌을 맞아준 방패막이들만 갈아치웠으니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가능할 리 없다. 설종진 키움 감독대행은 15일 고척돔에서 취임 후 처음 언론 앞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설 대행은 다소 준비되지 않은 듯한 구상과 발언을 쏟아냈다. 설 대행의 발언은 크게 '절실함'과 '작전야구'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압축된다.
보도에 따르면 설 대행은 선수들을 향해 "프로야구 선수들이 가져야 할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 후반기에는 절실함을 갖고 구단과 팬들을 위해 열심히 뛰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주문했다. 선수들의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취지라고 선해할 수도 있지만, 최약체 전력과 부족한 지원에도 최선을 다한 선수들 입장에서는 '너희들 정신력 부족 탓'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형편없는 전력을 구성하고 선수단 지원도 제대로 못한 구단의 책임을 선수단에 돌리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키움 주장 송성문은 팀이 10연패를 끊은 뒤 방송 인터뷰에서 눈물을 쏟았다. 이런 선수들에게 절실함을 지적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다.
설 대행은 작전야구, 뛰는 야구의 필요성도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설 대행은 "외국인선수나 선발 로테이션 문제도 있겠지만 작전야구, 뛰는 야구가 잘 되지 않았다"며 "우리가 홈런을 많이 치는 팀도 아니다. 출루율이 리그에서 가장 낮다. 득점권 타율도 최하위다. 살아나가지 못하고 살아나가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도루 성공률이 80% 정도 되는데 많이 뛰지 않았다. 뛰는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한다. 경기 초반부터 번트 사인이 나가거나 런앤히트 등 작전을 걸 수 있다"고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애초부터 최하위가 확실했던 키움의 팀 성적이 예상보다 더 바닥을 친 이유는 외국인 영입 실패와 허약한 선발진 탓이다. 외국인 타자를 2명 쓰고 외국인 투수를 줄여서 선발진을 망가뜨린 결정권자의 책임이다. 키움이 홈런을 못 치고 출루율이 낮은 이유는 홈런 잘 치고 출루율 높은 선수들을 내보내고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도루 수가 적은 건 팀에서 가장 도루 잘하는 선수(김혜성)가 떠났고, 뛸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키움 2군 고양 히어로즈의 팀 도루는 17개로 11개 팀 가운데 10위다. 최하위 상무(14개)는 퓨처스 최강 타선을 자랑하는 팀(장타율 0.528로 1위)이라 뛰는 야구를 할 이유가 없다. 올해 키움 퓨처스 도루 1위는 3개의 박주홍이다. 작년에는 4도루의 원성준이 팀내 1위였다. 뛸 사람이 있어야 뛴다.
키움의 팀 전력으로 번트를 자주 대고 런앤히트나 도루를 하면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까. 키움은 전반기 1점차 승률 0.611로 전체 3위를 기록했다. 전반기 키움 타자들이 3점 이상 열세 상황에서 타석에 나선 회수는 790회로 이 부문 2위 롯데(468회)의 거의 두 배에 가깝다. 키움이 못한 건 한두 점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라, 투수들이 대량실점으로 크게 무너진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키움이 자랑하는 진보적 통계분석에 따르면 감독의 작전이나 도루는 팀 득점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기대득점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감독이 강하게 개입하는 야구는 한화처럼 마운드가 강한 팀에서나 통하는 전략이다. 아니면 반드시 꼭 잡아야 하는 단기전 1경기에나 유효하다. 키움이 목숨걸고 1경기 잡아서 어디다 쓸 건지 궁금하다.
키움 퓨처스팀은 올해 전반기 승률 0.406으로 북부리그 5팀 중에 4위다. 작년에는 0.350으로 꼴찌였고, 재작년에도 0.393으로 꼴찌였다. 물론 퓨처스는 '이기는 야구'를 하는 곳이 아니니 이 성적이 크게 중요한 건 안다. 다만 설 대행이 후반기 1군 목표로 말한 "4할 내지 5할 승률"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설 대행의 이날 발언이 개인 생각인지, 구단과 논의하에 나온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간 키움은 감독 혼자서 방향을 정하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하는 구단이 아니었다. 홍원기 전 감독은 전력분석팀, 수뇌부와 긴밀히 상의해서 방향성을 정하고 그에 따른 야구를 그라운드에서 이행해왔다. 키움은 전력분석팀장이 경기 중 더그아웃에 들어와서 선수단과 함께 움직이는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다. 도루를 적게 하고 작전을 적게 하는 건 그간 키움이 추구해온 야구의 방향성이다.
이 방향성을 180도 뒤집는 듯한 발언이 감독대행에게서 나왔다는 게 다소 의아하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말이거나, 구단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다. 신임 단장이 시즌 전 '가을야구'와 '200홈런'을 말했던 걸 생각하면 후자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어느 쪽이든, 후반기 키움야구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