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시즌=몸풀기? 천만에! EPL 선수들의 극한준비...200개 혈액 검사+죽음의 왕복달리기 훈련까지 [춘추 해축]
200가지 혈액 지표 분석부터 4분 30초 브론코 테스트까지...EPL 선수들의 극한 프리시즌
[스포츠춘추]
축구팬들은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화려한 모습만 본다. 잔디 위에서 펼치는 90분간의 예술 말이다. 프리시즌? 그냥 몸풀기 정도로 여긴다. 느긋하게 돌아와서 몇 주 조깅하고 친선경기 몇 경기 뛰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이 공개한 프리시즌 검사의 실체는 놀라울 정도다. 혈액에서 200가지 생체지표를 뽑아내고, 지면반력기 위에서 점프 한 번 한 번을 분석한다. 이게 과연 축구 준비인가, 우주비행사 훈련인가 싶을 정도다.
토트넘에서 20년간 일한 제프 스콧의 증언이 모든 걸 말해준다. "복귀 첫날은 거의 하루 종일 메디컬 테스트를 받는다. 각 선수가 돌아다니며 받아야 할 최대 16개 스테이션이 있는 일정표가 있었다."
16개 스테이션. 마치 공장의 생산라인 같다. 혈액 검사부터 파워 테스트, 심지어 치과 및 안과 검진까지 모든 것이 포함된다. 선수가 아니라 정밀기계를 점검하는 것 같다.
혈액 검사의 수준은 더욱 놀랍다. 200가지 생체지표를 분석한다. 이온, 비타민, 미네랄까지 샅샅이 뒤진다. 그것도 연간 4회씩. 돈이 얼마나 들지 상상이 안 된다. 뭔가 적정 수준이 아니라면 식단을 조정해서 개선하려고 한다. 음식으로 안 되면 보충제로. 이쯤 되면 선수가 아니라 실험 대상이다.
체성분 검사는 또 어떤가. DEXA 스캐너나 캘리퍼로 피하지방 두께까지 측정한다. 목표 체중에서 1킬로그램만 벗어나도 눈총을 받는다. 휴가 중에도 감시받는 셈이다. 스콧은 "클럽들은 선수들이 지난 시즌 말에 받은 목표 체중에서 1킬로그램 이내로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뇌진탕 기준선 검사는 의무가 됐다. 컴퓨터 기반 인지 검사로 반응 속도, 기억력을 측정한다. 심장 검사도 마찬가지다. 심전도와 심초음파 검사를 받는다. 종합병원에 온 건지 훈련장에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지면반력기라는 장비도 등장한다. 다양한 움직임 중 지면 반력을 측정하는 센서가 장착된 플랫폼이다. 선수가 얼마나 높이 점프할 수 있는지, 힘 발달 속도, 반응 근력 지수까지 모든 걸 수치화한다. 등속성 검사로는 대퇴사두근과 햄스트링 근력을 비교 분석한다. 좌우 균형이 맞지 않으면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이 모든 하이테크 검사가 끝나면 선수들은 운동장으로 나간다. 거기엔 여전히 원시적인 고함이 기다리고 있다. "힘내라, 포기하지 마!" 브론코 테스트, 가콘 테스트, 30-15 간헐적 체력 테스트.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브렌트퍼드의 브론코 테스트를 보자. 20m, 40m, 60m 지점을 왕복하는 셔틀런을 5세트 반복한다. 총 1,200m를 4분 30초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브리스톨 시티의 아니스 메메티는 4분 12초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뉴질랜드 럭비 선수 보든 바렛이 세운 최고 기록과 동일한 수준이다.
토트넘은 1km 달리기를 한다. 피치를 10번 왕복하며 3분 15초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폴 주변을 10번 도는 게 훈련에서 정말 짜증나는 부분"이라고 브렌트퍼드의 비탈리 야넬트가 말했다. 그는 테스트 전날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가콘 테스트는 더욱 잔인하다. 포체티노 감독이 애용하는 이 테스트는 45초마다 거리가 6.25m씩 늘어난다. 유산소 파워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요구한다. 첼시의 벤 칠웰은 "8번째 후에는 모든 선수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고 증언했다.
30-15 간헐적 체력 테스트는 30초 달리기와 15초 휴식을 반복한다.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연속으로 3번의 삐 소리를 놓치면 테스트가 끝난다. 브라이턴의 카를로스 발레바는 시속 22.5km까지 달렸다. 3km를 그 속도로 뛴 셈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예전엔 단순한 삐프 테스트가 전부였다. 지금은 노드보드, 그로인바, 등속성 검사기까지 동원된다. 뇌진탕과 심장 검사는 리그 규정상 의무가 됐다.
이 모든 과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팬들이 보는 건 화려한 경기뿐이다. 16개 스테이션을 돌며 몸을 해부당하고, 브론코 테스트에서 한계를 시험당하는 과정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스콧은 "프리시즌은 작은 문제들을 미리 찾아내서 시즌 중에 꾸준히 관리함으로써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그 '작은 문제'를 찾기 위해 200가지 혈액 지표를 뒤지고, 지면반력기로 점프력을 측정한다. 3주 휴가 동안 쉬어도 온전히 쉬는 건 아니다. 개인 피트니스 코치와 함께 스페인이나 두바이에서 훈련 캠프를 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
결국 프리미어리그의 화려한 무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극한 준비로 만들어진다. 팬들이 보는 90분의 예술을 위해 선수들은 수개월간 과학자들과 의사들의 실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여전히 "힘내라, 포기하지 마"라는 원시적 외침 속에서 한계에 도전한다.
이게 바로 프리미어리그의 진짜 모습이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극한의 준비. 팬들이 절대 볼 수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