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어린 후배들은 감독, 코치 하는데...45세 좌완 리치 힐은 여전히 현역이다 [춘추 MLB]

14번째 팀 캔자스시티가 콜업...에드윈 잭슨과 최다팀 동률 기록

2025-07-22     배지헌 기자
45세 현역 투수 리치 힐(사진=MLB.com)

 

[스포츠춘추]

한참 어린 후배들은 벌써 감독과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현역 선수로 마운드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있다. 1980년생, 미국 나이로 45세 리치 힐이 그 주인공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덕아웃을 살펴보면 힐보다 어린 감독들이 즐비하다. 올리버 마몰(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1986년생으로 39세, 스티븐 보그트(클리블랜드 가디언스)는 1984년생 41세, 윌 베너블(시카고 화이트삭스)은 1982년생 43세다. 로코 발델리(미네소타 트윈스)는 1981년생 44세이고, 존 슈나이더(토론토 블루제이스)는 1980년생으로 힐과 동갑이다. 이들이 덕아웃에서 팀을 지휘하는 동안, 힐은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른다.

이는 현대 야구의 독특한 현상이다. 선수 생명이 길어지고 감독 임용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나타난 일로,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 이제 일상이 됐다.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팀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7월 22일(한국시간) 힐을 메이저리그로 콜업할 예정이라고 복수의 매체가 보도했다. 힐이 캔자스시티 유니폼을 입고 등판하면 에드윈 잭슨의 메이저리그 최다팀(14개 팀)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동시에 캔자스시티 구단 역사상 최고령 선수가 된다.

복귀 무대도 의미심장하다. 23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등판할 가능성이 높은데, 컵스는 바로 20년 전 힐이 메이저리그 첫 발을 디딘 곳이다. 완전한 원점 회귀인 셈이다.

2002년 컵스 4라운드 지명을 받은 힐은 그야말로 떠돌이 야구 인생을 살았다. 컵스에서 시작해 볼티모어, 보스턴, 클리블랜드, LA 에인절스, 뉴욕 양키스, 오클랜드, LA 다저스, 미네소타, 탬파베이, 뉴욕 메츠, 피츠버그, 샌디에이고를 거쳐 이제 캔자스시티까지. 야구계에선 이런 선수를 '저니맨'이라 부르지만, 힐만큼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다.

더욱 놀라운 건 힐의 대기만성 스토리다. 34세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투수였지만, 남들이 은퇴를 고민할 35세인 2015년부터 갑작스럽게 리그 정상급 선수로 도약했다. 첨단 스포츠 과학과 피치 디자인으로 갈고 닦은 커브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35세부터 40세까지 6시즌 동안 평균자책 2.92를 기록했다. 505이닝에서 584개의 삼진을 솎아냈고, 특히 다저스 시절엔 포스트시즌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다.

리치 힐의 다저스 시절(사진=스포츠춘추 DB)

물론 최근 몇 년은 쉽지 않았다. 2023년 평균자책 5.41으로 세월을 거스르지 못했고, 작년엔 고작 4경기 등판에 그쳤다. 올 시즌 초엔 아예 소속팀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5월 캔자스시티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트리플A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42이닝 동안 48탈삼진을 기록하며 여전한 위력을 입증했다.

캔자스시티도 현실적 필요가 있었다. 선발진 평균자책은 3.36으로 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부상자가 속출했다. 마이클 로렌젠은 복사근 부상, 콜 레이건스는 회전근개 부상으로 이탈 중이다. 좌완 구원투수 대니얼 린치 4세도 팔꿈치 문제로 빠진 상황이다.

힐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불확실하다. 선발이 될 수도 있고, 불펜에서 긴 이닝을 막는 역할이 주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 후배들이 이미 감독 자리에 앉아 있는 시대에 선수로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21년 연속 메이저리그 무대를 지킨 끈질긴 생명력의 소유자다. 2015년 잠시 독립리그를 거쳤던 것을 제외하면 2005년 데뷔 이후 한 번도 빅리그를 떠나지 않았다. 80년대생 감독들이 덕아웃을 지휘하는 가운데, 1980년생 힐은 여전히 마운드에 서려 한다. 그 불굴의 집념이 14번째 팀에서도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