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은 꿀 다 빨아놓고 우리는 양보하라고?"...레전드 선배들 '앞잡이' 동원한 MLB 분열책에 선수노조 극대노 [춘추 MLB]

CC 사바시아·하워드 등 스타 19명 앰배서더 프로그램에 노조 "현역 선수 분열 조장" 격분

2025-07-23     배지헌 기자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사진=MLB.com)

 

[스포츠춘추]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CC 사바시아, 라이언 하워드 등 은퇴 스타들을 동원해 현역 선수들에게 연봉 상한제를 설득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수노조는 이를 "선수들을 분열시키려는 계획된 음모"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문제의 발단은 2023년 맨프레드가 만든 '커미셔너 앰배서더 프로그램(CAP)'이다. 이번 주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CC 사바시아를 비롯해 라이언 하워드, 지미 롤린스 등 쟁쟁한 19명의 전직 스타들이 참여한다. 겉으로는 리그 행사 참석과 현역 선수 소통이 목적이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이들이 맨프레드와 함께 클럽하우스를 돌며 연봉 상한제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니 클라크 선수노조 사무총장은 지난주 디 애슬레틱 에반 드렐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CAP 참가자들에게 "노동 관련 대화에서 빠지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노골적인 경고였다.

더욱 직설적인 건 브루스 마이어 부위원장이었다. 그는 TV 프로그램 '파울 테리터리'에서 "MLB에서 급료를 받는 퇴역 선수들이 커미셔너와 함께 라커룸을 돌며 노조가 선수들에게 해롭다고 여기는 제도를 홍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역 선수들도 저들이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걸 다 안다"고 덧붙였다.

맨프레드는 이런 지적에 "그들이 내 물 심부름을 하는 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의 실제 행보는 노조 의혹에 힘을 실어준다. 드렐릭 기자 보도에 따르면 맨프레드는 올 시즌 각 팀 클럽하우스를 찾아다니며 선수들에게 "경제 시스템 개편을 거부해 수십억 달러 손해를 봤다"고 주장해왔다. 때로는 CAP 멤버들이 동행하기도 했다.

CAP 참가자인 덱스터 파울러는 최근 "우리는 그저 야구 발전을 원할 뿐"이라고 해명했다. "우리는 야구 편"이라는 그의 말에 전직 선수 출신 방송인 A.J. 피어진스키는 "어느 쪽 편이냐"고 따져 물었다. "커미셔너를 위해 일하면서 노조와는 다른 편에 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연봉 상한제 도입을 둘러싼 MLB와 선수노조의 대립이 커지고 있다(사진=MLB.com)

문제의 핵심은 CAP의 실체다. 맨프레드는 노조가 가진 것보다 훨씬 화려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바시아, 하워드, 롤린스 외에도 델린 베탄시스, 프린스 필더, 케니 로프턴, 게리 셰필드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줄을 섰다. 선수노조가 보유한 전직 선수 그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스타성이다.

맨프레드의 계산은 단순하다. 스타들이 나서면 현역 선수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는 치명적 맹점이 있다. CAP에 참여한 스타들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서 뛰었다. 사바시아가 누린 자유계약시장과 하워드가 경험한 연봉 협상 과정이 같을 리 없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선수들을 하나의 목소리로 묶어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의 이해관계다. 현재 이들은 MLB로부터 급료를 받는 입장이다. 아무리 야구계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워도, 고용주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과거 선수로서의 경험과 현재 고용인으로서의 처지 사이에서 과연 중립적 조언이 가능할까.

노조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야구 선배들이 후배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누렸던 권익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클라크 사무총장은 "선수였던 사람은 영원히 선수 동료"라면서도 "우리가 넘어야 할 어려움들이 있다"고 털어놨다. 속내를 드러낸 발언이었다.

맨프레드는 분명 2022년 파업 종료 후 "선수들과 관계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CAP를 통한 그의 행보를 보면 진정한 관계 개선보다는 일방적 설득에 가깝다. 상대방 의견을 듣고 타협점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CAP에 참여한 스타들에게도 딜레마는 있다. 이번 주말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사바시아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야구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로운 순간과 현 체제 옹호자 역할 사이에서 고민이 없을까. 하워드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현역 시절 톱 클래스 연봉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선배들이 쟁취한 자유계약 제도 덕분이었다. 그런 그가 후배들에게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2026년 단체협약 만료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 신경전은 단순한 노사갈등을 넘어선다. 맨프레드의 CAP 카드가 통할지, 노조의 반격이 더 효과적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확실한 건 양측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