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지명되면 어쩌지? 차라리 미국 갈까..." 드래프트 1순위 후보 특급 유망주들의 고민 [춘추 이슈]

고교 최상위 유망주들이 키움 지명을 두려워한다? 몇 년 전까지하면 상상도 못할 현상이 최근 현실로 나타나는 분위기다.

2025-07-23     배지헌 기자
2025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키움에 입단한 정현우(사진=키움)

 

[스포츠춘추]

올해 신인드래프트 고교 유망주들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른다. 예년 같으면 "어느 팀이든 뽑아만 주면 땡큐"라고 했을 선수 가운데 미국행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선수가 있다는 소문이 돈다. 특히 전체 1순위 후보로 거론되는 최상위 유망주일수록 고민이 커 보인다.

아마야구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상위권 유망주로 꼽히는 A는 원래 KBO리그에서 성공한 뒤 포스팅을 통해 미국에 진출하는 쪽을 선호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 직행도 선택지에 놓고 고민하는 모습이라는 전언이다. 다른 상위권 선수들이 이미 미국행을 확정하거나 미국으로 갈 것 같은 분위기여서 자신이 1순위로 키움에 지명받을 가능성이 전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구단의 러브콜을 받은 상황에서 최근 키움을 둘러싼 부정적인 뉴스들 때문에 고민한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유망주는 A만이 아니다. 작년 2학년 때부터 여러 미국 구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다른 유망주 B도 원래는 KBO리그 진출이 우선순위였지만 최근 들어 마음이 흔들리는 눈치다. 고교 선수들과 자주 교류하는 야구인은 "해당 선수는 원래는 어느 팀이든 프로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요즘 들어 고민이 되는 모양"이라며 “한번은 야구중계로 키움 경기를 함께 보다가 '미국 가는 게 나을까요'라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농담처럼 들리지 않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불과 1, 2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다. 원래 키움은 고교 유망주들이 선호하는 구단이었다. 다른 팀보다 빨리 1군에서 뛰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키움에 뽑히길 원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 등 빛나는 슈퍼스타들이 있었고, 젊은 선수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주는 구단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키움에 가면 빠르게 1군급으로 성장한다는 인식도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키움의 열악한 2군 훈련시설과 부실한 선수단 지원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먼저 프로에 간 선배들을 통해 구전으로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키움 2군 홈구장인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의 실상이 최근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곰팡이가 가득한 천장 아래 떨어지는 물을 받는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고, 실내 훈련장 내부 누수도 심각하다. 시설 곳곳이 파손되어 있어 KBO 점검 결과 경기장과 더그아웃 등 시설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판정됐다.

다른 구단들은 2군 시설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LG나 두산은 거액을 쏟아부어 메이저리그가 부럽지 않은 시설을 갖춰놨다. 식단부터 숙소, 훈련시설까지 최고 수준이고 심지어 커피머신과 원두까지 신경쓴다. “LG 2군 시설이 오히려 1군보다도 좋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반면 키움 2군 훈련장은 NC 2군 구장인 마산야구장과 함께 10개 구단 중 최악의 시설로 평가받는다. 화성 히어로즈 시절만 해도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고양 이전 후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키움 퓨처스팀 고양 히어로즈(사진=키움)

기회가 많은 건 좋은데 “배울 게 없다”는 말도 나온다. 과거 키움에는 야구 잘하는 선배가 많아서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배울 게 많았다. 어린 선수들은 선배들과 1군에서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성장했다. 선배가 후배에게 좋은 문화를 물려주고 그 후배가 성장해서 다시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선순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슷한 나이대의 저연차 선수들로 가득한 로스터다. 몇 안 되는 선배들은 자기 앞가림이 급한 사람들이라 후배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코칭스태프 문제도 심각하다. 한 야구인은 “올시즌 중에 키움 코치 몇 명이 구단의 총애를 받는 특정 코치의 횡포에 반발해서 팀을 떠났다”고 전했다. 최근엔 홍원기 감독과 김창현 수석코치가 해임돼 16명만 남은 상황이다. LG 트윈스가 트레이닝 코치 제외 25명의 대규모 코칭스태프를 기용하는 것과 비교된다. 

키움은 코치 대부분이 저연차로 갓 은퇴한 코치들이다.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키움 코치 중에 다른 팀에서 스카우트할 만한 코치는 손으로 꼽을 정도"라는 말이 정설이다. 이 코칭스태프 대부분은 본인의 코칭 철학보다는 구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을 선수들도 모르지 않는다. “배울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키움하면 구단 운영에 뚜렷한 방향성이 있는 것 같았는데 요새는 무슨 기조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일례로 2년차인 김윤하나 신인 정현우를 쓰는 걸 보면 이 선수들을 계획과 비전을 갖고 육성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란 말도 했다. 몇 년째 스카우트 성과가 없다고 스카우트 파트를 대거 숙청했는데 그보다는 좋은 유망주를 뽑아도 키우지 못하는 구단 육성능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키움 구단 운영의 문제점은 이미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어찌나 문제가 심각한지 선수협이 16일 전례 없는 구단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선수협은 "수년째 비정상적인 운영으로 지탄받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의 행보를 규탄한다"며 "열악한 2군 구장이 매년 문제가 됐지만 키움은 개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선수협에는 당연히 키움 선수단도 포함된다. 이 시선은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시선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여전히 키움을 선호하거나 키움에 지명돼도 상관없다는 고교 유망주들도 적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어느 구단이든 뽑아만 준다면 고마워하고 다행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구단을 가릴 만큼 여유 있는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특급 유망주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구단들이 한국 유망주 대상으로 100만 달러 이상 계약금을 준비하는 곳이 적지 않다. 마이너리그 시설과 복지도 크게 좋아진 상황이다. 안 그래도 미국 진출이 점점 매력적이 되어가는데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키움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특A급 유망주들은 고민할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때 유망주들의 1순위 지망 구단이었던 키움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는 건 키움으로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유망주를 키우는 게 구단 운영 기조인 팀이 육성에 투자하지 않고, 육성에서 성과를 못 내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몇 년 전만 해도 "기회의 땅"이었던 키움이 이제는 기피 대상이 되어가는 분위기. 과연 올해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누가 뽑힐지, 그리고 이 선수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