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20승도 거뜬했던 대투수 벌랜더, 18경기 만에 겨우 시즌 첫 승...1승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춘추 MLB]

17경기 무승 끝에 시즌 첫 승...통산 263승, 300승까지 앞으로 -37승

2025-07-24     배지헌 기자
시즌 첫 승을 거둔 벌랜더(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SNS)

 

[스포츠춘추]

야구는 참 어렵다. 2011년 사이영상을 받으며 24승을 휩쓸었던 투수가, 20승을 두 번이나 기록했던 투수가, 통산 262승으로 300승 대기록을 바라보는 투수가 2025년 7월까지 고작 1승을 얻지 못해 애를 태웠다. 저스틴 벌랜더에게 벌어진 기가 막힌 현실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최고령 투수 벌랜더가 7월 24일(한국시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원정경기에서 5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마침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프랜차이즈 역사상 한 시즌 최장인 17경기 무승 행진을 끝낸 순간이었다.

5회 초, 운명의 신이 벌랜더를 가지고 마지막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자이언츠가 3대 0으로 앞선 상황에서 단 한 이닝만 더 던지면 승리 투수 자격을 얻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승이 간절한 투수에게 이보다 잔인한 농담이 또 있을까. 트루이스트 파크의 관중들이 우산을 꺼내들기 시작할 때, 벌랜더의 머릿속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뭔가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아, 경기가 비 때문에 중단되고 2시간 대기하다가 내가 다시 마운드에 못 올라가겠구나'라고 말이다." 경기후 벌랜더가 취재진 앞에서 들려준 말이다.

다행히 비는 잠시 내리다 잦아들었다. 벌랜더는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5회를 마무리하고 승리투수 자격을 채웠다. 샌프란시스코는 9대 3으로 승리했고, 벌랜더는 마침내 동료들과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눌 수 있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인 지난해 9월 28일 이후 약 10개월 만에 거둔 첫 승리였다. 그사이 벌랜더는 자이언츠와 1년 1천5백만 달러(210억원) 계약을 맺고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시즌 첫 승을 거둔 벌랜더(사진=MLB.com)

벌랜더의 무승 행진이 이렇게 길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시즌 초 오른쪽 가슴 근육 부상으로 한 달을 쉬었다. 복귀 후에도 평균자책 4.99로 부진했다. 타선 지원도 아쉬웠다. 16경기 동안 자이언츠 타자들이 벌랜더를 위해 만들어준 득점이 고작 26점이었다.

9차례 올스타에 선정된 베테랑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잘 풀릴 때는 승리를 당연하게 여긴다. 5일마다 마운드에 올라가서 대부분 이기고, 경기 후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내 몫을 했고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육체적으로나 마운드에서나 힘든 시간이었다."

밥 멜빈 감독도 벌랜더의 무승 행진을 안타까워했다. 감독은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었지만 어째서인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1회에 40개 공을 던지고서도 5이닝을 마무리한 건 정말 대단하다"는 말로 노장의 투혼을 칭찬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 승리로 애틀랜타와의 3연전을 2승 1패 위닝시리즈로 가져갔다. 6연패를 끊고 다시 플레이오프 경쟁에 뛰어들 발판을 마련했다. 벌랜더의 승리가 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은 셈이다. "동료들이 축하 와인을 선물해줬다. 조금 마셔볼 생각이다." 벌랜더가 경기 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편 전날 경기 4타수 무안타에 그친 이정후는 이날 결장했다. 이정후 대신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루이스 마토스가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지명타자로 출전한 라파엘 데버스도 홈런 2방 포함 3안타 4타점으로 벌랜더 도우미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