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경문 감독, 손아섭, 누구보다 우승에 목마른 이들의 만남...이 정도면 야구의 신도 감동하겠네 [스춘 이슈분석]

우승 없는 팀과 우승 없는 감독, 우승 없는 베테랑의 만남

2025-08-01     배지헌 기자
6타점을 올린 손아섭(사진=NC)

 

[스포츠춘추]

야구는 때로 운명 같은 만남을 연출한다. 31일 오후 발표된 손아섭의 한화 이글스 트레이드가 그렇다. 1999년 이후 26년간 우승이 없는 구단, 통산 900승을 달성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없는 감독, 그리고 무려 2134경기를 뛰었지만 한국시리즈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선수. 누구보다 우승에 목마른 세 주체가 모였다.

한화는 31일 NC 다이노스에 현금 3억원과 2026년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을 넘기고 손아섭을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화는 "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 기록 보유 선수이자 최근 10년 내 포스트시즌 통산 OPS가 1.008에 달하는 손아섭이 가을야구 진출 시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해 이번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닌 가을 DNA 주입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손아섭은 2007년 신인 2차 4라운드 전체 29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KBO리그 통산 213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0, 2583안타, 181홈런, 1069타점을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에는 박용택(은퇴)을 넘어서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가 됐고, 올 시즌에도 76경기에서 타율 0.300을 기록하고 있다.

손아섭에게 이번 트레이드는 단순한 팀 이적 이상의 의미다. 2022년 NC 이적 당시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는 게 컴플렉스"라고 고백했던 그다. 그러나 NC에서도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202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KT에 2승 무패로 앞서가다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또 한 번 좌절했다. 37세가 된 올시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간절함을 더한다.

그런 손아섭에게 한화는 희망의 신호탄이다. 1일 현재 단독 선두로 한국시리즈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 한화는 59승으로 2위 LG와 2경기 차를 유지 중이다. 기대승률 기반 가을야구 진출 확률(PSODDS.com 제공)이 무려 99.9%(1위)에 달하는 강팀이다. 한국시리즈 직행 확률도 61.7%로 압도적 1위다(LG 34.1%). 그 어느 때보다 우승에 가까이 접근한 팀에서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김경문 감독과의 케미스트리도 흥미롭다. 김 감독은 통산 900승 명장이지만 정작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는 손에 넣지 못했다. 두산과 NC에서 여러 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번번이 우승 꿈은 좌절됐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은 있지만 국내리그 우승을 못한 게 평생의 한이다. 우승에 대한 갈망이라면 손아섭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절실함의 조합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2023년 LG 트윈스가 그 답을 이미 보여줬다. 1994년 이후 29년간 우승이 없던 LG와 감독 커리어에 우승 경험이 없던 염경엽 감독. 당시만 해도 의문을 표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지만, 간절함과 간절함의 만남이 빚어낸 결과는 극적인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박민우가 차원이 다른 선수,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고 묘사한 손아섭(사진=NC)

손아섭 개인에게도 이번 트레이드는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다. 정든 NC를 떠나는 것은 시원섭섭하지만, 1위팀 한화에서 우승을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시즌 후에는 또 다른 기회가 기다린다. 한화에서 우승에 기여하며 여전한 가치를 증명한다면 FA 시장에서의 입지도 달라진다. 전 동료 강민호처럼 세 번째 FA에서도 의미 있는 계약을 맺을 수 있고, 한화와 재계약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어쩌면 오랜 꿈이었던 친정 롯데와의 아름다운 마무리 기회가 돌아올 수도 있다.

첫 우승, 그 후 FA 시장에서의 재평가, 그리고 그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드라마. 어쩌면 친정 복귀라는 낭만적인 해피엔딩까지도 가능한 우주가 손아섭 앞에 펼쳐졌다. 한화의 간절함에 김경문 감독의 간절함, 그리고 손아섭의 간절함이 더해졌다. 이 정도면 대전 상공에 원기옥이 생길 지도 모른다. 하늘도, 어쩌면 야구의 신도 감동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