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하는 투수, 앞으로 못 보겠네...일본야구 센트럴리그도 2027년부터 지명타자 도입 [스춘 NPB]
50년간 지켜온 '9인 야구' 전통 마침내 포기...고교야구 DH 도입이 결정타
[스포츠춘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가 지명타자(DH) 제도를 도입한다. 일본야구기구(NPB) 사무국은 8월 4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2027시즌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1975년 퍼시픽리그가 먼저 도입한 이래 50년간 '투수도 타석에 서는 게 야구'라며 버텨온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고교야구가 DH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결정타였다. 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이 지난 1일 내년 봄 센바쓰(선발고교야구대회)부터 DH 제도를 채택한다고 발표하자, 센트럴리그도 더 이상 버틸 명분을 잃었다. '9인 야구의 전통'이란 말로 포장해봤자 아마추어 야구 전체가 DH로 넘어가는 마당에 프로만 고집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센트럴리그는 그동안 DH 도입을 완강히 거부해왔다. 실용성보다는 9인 야구 전통을 내세웠고, 퍼시픽리그와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202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코로나19 상황을 빌미로 DH 도입을 제안했지만 다른 구단들의 동조를 얻지 못했다. 2021년에도 재추진했지만 역시 무산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통 수호'라는 명분이 통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고교야구뿐만 아니라 도쿄6대학, 관서학생야구 등 대학야구 27개 연맹이 모두 DH 제도 채택을 결정했다. 사회인야구와 독립리그도 이미 DH를 사용하고 있다. 센트럴리그는 일본 야구계에서 홀로 떨어진 갈라파고스가 될 처지가 됐다.
국제무대에서도 DH는 대세가 됐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 주요 국제대회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도 2022년부터 내셔널리그까지 DH를 전면 도입했다. 오타니 쇼헤이의 활약으로 탄생한 '오타니 룰'(투수와 DH 겸업)이 화제가 되면서, DH 제도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됐다.
센트럴리그는 이번 결정을 '새로운 도전'이라고 포장했지만, 실상은 불가피한 백기투항이었다. 히로시마 카프의 스즈키 기요아키 이사장은 "고교야구까지 DH를 채택한 건 큰 충격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더 이상 '아마추어 야구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NPB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커미셔너는 줄곧 "두 리그의 제도가 다른 것은 정상이 아니다"라며 DH 도입을 압박해왔다. 구단 경영진들도 선수 영입과 국제대회 대응 면에서 DH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2019년 일본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에 4연패당한 요미우리의 하라 다쓰노리 전 감독이 'DH가 없는 것이 경쟁력 차이로 이어진다'고 토로한 것도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였다.
2026시즌을 '준비 기간'으로 설정한 것도 계산된 수순이다. 구단들이 선수 영입과 팀 편성 방향을 바꿀 시간을 준 것이다. DH 제도 도입으로 타자 한 명이 더 필요해지고, 투수의 부담도 줄어든다. 야구 판도 자체가 바뀔 수 있는 변화다.
센트럴리그는 "세계 주요 프로야구 리그 중 마지막까지 9인 야구를 계승해온 리그"라고 자평했다. 어쩌면 자랑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통을 지키는 것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다르다. 센트럴리그가 50년간 한 일은 후자에 가까웠다.
2026시즌은 "투수가 타석에 서는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다. 사카키바라 커미셔너는 "그런 시각에서 주목해달라"고 했지만, 과연 팬들이 그런 센티멘털한 시선으로 바라볼지는 의문이다. 이미 대세는 기운 지 오래다. 센트럴리그만 혼자 딴 세상에 살고 있었을 뿐이다. 2025년 8월 4일은 지명타자 전통이 끝난 날이자, 변화를 거부한 보수주의가 패한 날로 기록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