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승 올린 외국인 투수를 교체? 그만큼 롯데는 가을야구에 진심...빅리그 38승 'V2' 영입 [스춘 이슈분석]
포스트시즌 진출 도전 위해 10승 거둔 투수 교체한 롯데의 결단
[스포츠춘추]
10승을 거두고도 짐을 쌀 수밖에 없는 투수가 있다. 롯데 자이언츠 터커 데이비슨의 이야기다.
6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KIA전에서 6이닝 4안타 1실점 호투로 시즌 10승째를 올린 데이비슨은 경기가 끝난 직후 구단으로부터 교체 통보를 받았다. 다승 부문 5위에 평균자책 3점대 투수(3.65), 투수 WAR 랭킹에서도 3.89승으로 8위에 올라 있는 투수를 시즌 막판에 교체하는 건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롯데가 이런 결단을 내린 건 가을야구를 향한 절실함 때문이다. 6일 기준 리그 3위에 올라 있는 롯데는 1위 한화와 2위 LG를 4경기 차로 추격 중이다. 남은 시즌 가을야구 경쟁에서 살아남고, 단순한 포스트시즌 진출을 넘어 더 높은 곳을 노리기 위해선 현재보다 더 강력한 선발투수가 필요하다는 게 롯데의 판단이다.
데이비슨은 수치상 성적은 나쁘지 않지만 외국인 투수에게 기대하는 압도적인 맛은 부족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는 장면이 자주 나왔고, 특히 6월 4경기에서 3패 평균자책 7.71로 무너지면서 김태형 감독의 눈밖에 났다. 7월에도 5경기 3승(1패)을 거두긴 했지만 평균자책이 4.05로 좋지 않았고, 경기당 평균 5.1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쳐 '5무원'이란 별명까지 따라다녔다. 김태형 감독이 "초콜릿 뺏긴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나쁘진 않지만 뭔가 아쉬운' 데이비슨 대신 압도적인 에이스감을 찾은 롯데는 우완 빈스 벨라스케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1992년생인 벨라스케스는 2010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드래프트 2라운드 58순위로 데뷔, 통산 빅리그 9시즌 동안 763.2이닝을 소화한 베테랑 투수다. 특히 2018년엔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으로 9승 12패 평균자책 4.85를 기록하며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벨라스케스는 강력한 포심과 슬라이더 조합을 구사한다. 전성기였던 2021년 팬그래프 분석에선 스탯캐스트 시대 1000구 이상의 포심을 던진 투수 가운데 벨라스케스의 구위를 최상위권으로 평가했다. 이 강력한 포심을 앞세워 2016년 한 경기 16탈삼진 완봉승을 비롯해 무더기 삼진을 솎아냈다. 빅리그에서 통산 9이닝당 탈삼진은 9.69개로 거의 마무리투수 수준의 삼진율을 자랑하는 벨라스케스다.
2023년 팔꿈치 수술대에 오른 뒤 2024년을 통째로 날린 벨라스케스는 올 시즌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 계약, 트리플A에서 18경기에 등판했다.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5승 4패 평균자책 3.42를 기록했고, 최근 12경기에선 평균자책 3.17로 갈수록 좋은 투구를 펼쳤다. 패스트볼 구속도 평균 92~93마일대(150km/h)로 전성기와 차이가 크지 않다.
다만 전성기에도 썩 좋지 못했던 커맨드 문제는 올 시즌도 여전하다. 데이비슨은 18경기 81.2이닝 동안 무려 50개의 볼넷을 내줬다. 9이닝당 5.51개의 볼넷을 허용한 셈인데, 아무리 좋게 봐도 섬세한 제구력을 자랑하는 투수는 아니다. 삼진도 많이 잡지만 그만큼 볼넷도 많이 허용하는 유형이라고 봐야 한다. 기계적으로 존을 적용하는 KBO리그 ABS(자동볼판정시스템)에 얼마나 적응할지가 관건이다.
롯데는 앞서 외국인 투수 찰리 반즈를 방출하고 알렉 감보아를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감보아는 11경기에서 7승 3패 평균자책 2.14라는 놀라운 활약으로 이 도박을 성공작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데이비슨을 내보내고 벨라스케스를 데려오면서 또 한 번의 강한 승부수를 던진 롯데다.
10승을 거둔 투수를 내보내면서 더 나은 선택을 찾는다는 건 그만큼 가을야구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의미다. 과연 롯데의 이번 승부수가 감보아 때처럼 대박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두고두고 후회할 오판이 될지는 앞으로 펼쳐질 경기들이 답해줄 것이다. 롯데의 가을 꿈은 이제 벨라스케스의 오른팔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