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부담없는 스포츠 복지 확장, 체육재정 확대가 답이다 [김기한 칼럼]

-체육정책이 곧 민생정책 -국고 부담없는 체육진흥기금 잘 활용해야 -체육재정 확대, 국민건강 증진과 사회적 비용 절약의 열쇠

2025-08-12     박동희 기자
제23회 순천남승룡마라톤대회 장면. 순천은 지방도시 가운데 스포츠를 통한 지역민 건강 증진과 질병 에방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아는 만큼 가장 잘 실천하는 지자체로 유명하다[사진=순천시 제공]

[스포츠춘추]

대한민국 전체 정부 예산 가운데 중앙정부의 체육 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0.25%이다. ‘불과’라는 단어를 써도 될 만큼 수치상으론 비중이 작다. 그러나 ‘0.25%’가 발생하는 정책 효과는 매우 크다. 

정부 체육정책 대상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사실상 전 국민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체육정책의 목적은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국민’을,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준’으로 스포츠에 참여하고, 관람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스포츠 참여가 생활체육과 복지의 영역이라면, 스포츠 관람은 전문체육과 산업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먹은 날과 먹지 않은 날의 차이를 느껴보라”라는 오래된 영양제 광고 문구가 있다. 마찬가지로 ‘스포츠를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차’ 역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체육정책은 국민의 일상적 삶, 즉 ‘민생’(民生)에 관한 정책이다. 좋은 체육정책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또한 정부는 국민 체감이 높은 긍정적 정책 효과로 국정 지지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정책 효과는 예산 규모에 비례, 그러나 국민체육진흥기금 사업비 비중은 갈수록 떨어져

정부 체육예산의 95% 이상이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구성된다. 스포츠토토는 대한민국 체육재정의 우물이다(사진=국민체육진흥공단)

한정된 자원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없다.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자원을 언제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행위가 ‘가치의 배분’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 Easton)은 정책을 도구로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행위’를 정치로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가치의 배분이 결국 ‘예산’의 배정으로 실현되므로, 더 많은 예산이 배정된다는 것은 더 큰 정책적 잠재력을 의미한다. 체육정책이 민생정책이라면, 예산 규모를 확대하여 국민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주목할 게 있다. 바로 체육예산이다. 체육예산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국고 의존도가 지극히 낮다. 정부 체육예산의 95% 이상이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기금 수입의 절대적 비중은 체육진흥투표권사업, 즉 스포츠토토 사업 전입금에서 나온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4년간, 전체 체육예산에서 스포츠토토 전입금이 차지한 비중은 평균 63%에 이른다. 

기금 중심의 체육 재정 구조는 국고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정책을 보다 자율적이고 확장성 있게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민체육진흥기금은 사업성 기금이다. ‘체육진흥을 위한 사업을 하라고 조성한 기금’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기금 수입 대비 사업비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실제로 전체 기금 수입에서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95%로 가장 높았고, 이후 계속 감소해 2023년에는 51%까지 떨어졌다. ‘사업 하라’고 조성한 기금인데, 정작 사업 예산으로 배정받지 못한 셈이다.

정부 예산의 배정을 두고 부처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민의 정책 수요를 담아낼 적절한 체육 정책이 부족했던 탓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국민이 체감하고 사회적 효과가 명확한 정책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투-트랙 전략, 체육기금 확대와 전 국민 스포츠 복지 강화로 체육의 민생 기여도 강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김기한 교수가 체육 예산의 비중과 관련해 설명하는 장면(사진=스포츠춘추)

국민체육진흥기금을 확대 조성하여 체육 재정의 규모를 키우고, 동시에 국민의 열망을 담아낼 체육 정책을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이 체육의 민생 기여도를 높이는 길이다.

정부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스포츠토토 사업을 억제해야 할 사행산업으로 본다. 전 세계 스포츠 베팅 시장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연간 매출 총량 제한이 대표적 규제다. 그러나 스포츠토토는 스포츠 경기업으로부터 파생한 엄연한 스포츠 산업이다.

축구 산업이 발달한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축구 강국들은 예외 없이 스포츠 베팅 시장이 발달했다. 이들 국가는 베팅 산업을 통해 확보한 공적 재원을 풀뿌리 스포츠와 대국민 스포츠 정책으로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왔다. 

대한민국은 스포츠 선진국을 통해 벤치마킹할 게 많다. 제대로 벤치마킹한다면 우리도 법 개정 없이 규제의 합리적 조정만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 수입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안은 국민적 정책 수요와 정치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매우 실질적인 정책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 국민에게 최대 혜택’을 고려한다면, 전 국민을 잠재적 정책 대상으로 삼는 스포츠 복지 정책의 확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스포츠 복지 정책의 특징은, 투입된 비용이 단순히 소모되어 없어지는 매몰비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신체 비활동으로 연간 약 270억 달러(약 38조 원)의 의료비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신체활동을 촉진하는 스포츠 복지 정책은 막대한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공공투자로 작동할 수 있다.

체육 재정의 확대를 스포츠 복지 재원으로 적극 활용한다면, 국민 건강 증진과 사회적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적인 민생정책이 될 것이다.

기고 :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김기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