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믿음+동료 호수비+팬들의 응원...마무리 하나 키우는데 이글스 마을 손잡았다, 김서현은 혼자가 아니다 [스춘 FOCUS]
감독 뚝심-동료 호수비-팬 성원, 고졸 3년차는 혼자가 아니다
[스포츠춘추=대전]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 말을 야구에 적용하면 '마무리 투수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야구팀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화 이글스 마무리 투수 김서현만 봐도 그렇다. 21살 어린 선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압박 앞에서 코칭스태프와 동료들, 그리고 팬들의 도움으로 부진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
마무리 투수는 야구에서 가장 정신적 압박이 심한 보직이다. 3년 연속 마무리 자리를 유지하는 선수가 극히 드물다는 통계도 있다. 한 시즌 훌륭한 활약을 해도 다음 해 부상이나 부진으로 자리를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팀 승리를 지키는 마지막 아웃카운트에 대한 부담은 7, 8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상급 마무리들도 어쩌다 한번 구원 실패하면 혹독한 비판과 DM 폭탄을 피해가지 못한다.
김서현의 지난 한 주도 그런 시간이었다. 5일 KT전에서 강백호에게 3타점 적시타를 맞고 무너진 게 시작이었다. 6일 경기에서도 0.2이닝 동안 볼넷 2개와 안타 2개를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8일 LG전에서는 결승점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됐고, 10일 LG전에서도 3점 앞선 9회에 올라와 2실점하며 간신히 1점차 승리를 지켜냈다.
"지난 한 주가 다른 주보다 더 길었던 느낌이다. 지난 주 내내 계속 생각이 많았다." 12일 대전 롯데전에서 1.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거둔 김서현이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들려준 말이다.
김서현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뭔가(나아질 방법을) 찾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날도 순탄한 세이브는 아니었다. 9회초 주자 1루에서 노진혁에게 동점 홈런성 큰 타구를 맞았고, 3루 쪽 강습 타구를 허용하는 등 아슬아슬한 '극장'이 펼쳐졌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김서현은 정말로 온갖 시도를 다 했다. 지난주엔 셰도우 피칭을 해보기도 하고, 경기 전 미리 마운드를 밟는 행동도 해봤다. 12일 경기에선 또 다른 접근을 택했다.
"오늘은 진짜 그냥 땅에 꽂는다 생각하고 던져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계속 공이 뜨기도 했고 바깥쪽으로 많이 가기도 했고. 그래서 오늘은 그냥 가운데 완전 원 바운드로 꽂는다라는 생각을 하고 던지자라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된 것 같다"고 김서현은 설명했다.
물론 혼자만의 노력으로 위기를 이겨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서현의 부진 탈출을 위해 한화는 김경문 감독부터 양상문 투수코치, 전력분석 파트까지 모두가 힘을 모아 지원했다. 특히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의 부진에도 계속해서 믿음을 보내며 힘을 실어줬다. 마무리 교체나 보다 부담이 적은 상황에 기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계속 김서현을 중요한 상황에 기용하면서 스스로 이겨내게 했다.
김 감독은 12일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제 처음 마무리하는 투수에게 100%를 원하면 잘못된 것"이라며 "이제 마무리를 시작한 고졸 3년차 선수다. 그 나이에 마운드에 서지도 못하는 선수가 많다"고 김서현을 감쌌다.
김 감독은 "그동안 김서현이 너무나 잘 던지지 않았나. 워낙 잘 던졌기 때문에 안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이런 시간도 겪어봐야 한다. 역전도 당하고 질 날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분명히 했었다. 나는 김서현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승리로 1000승을 달성한 베테랑 감독에게는 강하게 키워도 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를 구분하는 통찰력이 있다. 김 감독이 파악한 김서현은 강하게 키워야 할 선수, 압박과 부담감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캐릭터의 선수다. 그리고 실제로 김서현은 위태위태하면서도 조금씩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서현은 "김경문 감독님이 인터뷰를 통해서도 계속 믿음을 주시니까 오히려 '내가 더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내가 좌절하면 팀의 뒷문이 더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일어나려고 노력 중이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마무리 투수를 키우는 데는 동료들의 도움도 중요하다. 12일 경기에선 한화 야수들의 릴레이 호수비가 김서현을 구했다. 8회초 2사 만루에선 빅터 레이예스의 빗맞은 타구를 루이스 리베라토가 전력질주로 잡아냈다. 9회초 무사 1루에서 노진혁의 홈런성 좌익수 뜬공은 문현빈이 펜스에 몸을 부딪치며 처리했다. 3루 쪽 강한 땅볼도 노시환이 매끄럽게 해결했다.
김서현은 노진혁 타구에 대해 "솔직히 넘어갈 줄 알았다. 현빈이가 잡아줬으니까 동기지만 너무 고맙다"면서 "그거 하나 덕분에 아웃 카운트가 늘고 실점도 막았다"고 말했다. 만약 이 타구 중에 하나라도 안타가 됐다면 경기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김서현은 다시 한번 구원에 실패하고, 팀은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고, 김서현과 팀 모두가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좋은 수비가 모두를 구했다.
"솔직히 그때 나 자신을 의심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운 좋게 세이브를 챙길 수 있었다." 김서현의 말이다.
한화생명 볼파크의 17,000석을 가득 채운 한화 팬들의 응원도 김서현에게 큰 힘이 됐다. 최근 불안한 모습을 보인 마무리투수지만 홈 팬들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응원을 보냈다. 김서현은 세이브를 거둔 뒤 관중들을 향해 크게 인사했다.
"팬들의 응원을 보면서 그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제가 잡은 게 아니라 약간 팬분들의 응원 덕분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더 오래 숙이고 있었다"고 김서현은 말했다.
김서현은 "지난 한 주 동안에 너무 생각이 많았고, 팬들에게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 모습을 못 보여드린 게 마음에 걸렸다"면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그렇게 다 져버렸으니 팀에도 미안했다. 여러 가지 마음이 섞였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무거운 짐을 지고 마운드에 서는 마무리에겐 비난과 질책보단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김서현은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고, 무엇보다 팬들 응원 덕분에 힘을 얻는다"고 감사를 전했다.
감독은 뚝심 있게 마무리 투수를 믿는다. 동료들은 좋은 수비로 마무리투수를 돕는다. 팬들은 응원과 함성으로 마무리투수를 응원한다. 모두가 힘을 합해 김서현이라는 마무리투수를 지원하고 있다. 21살 마무리 앞에 앞으로도 많은 위기와 고비가 있겠지만, 김서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온 이글스가 한 마음으로 마무리투수를 키워내고 있다. 먼 훗날 프랜차이즈의 역사를 바꿀 레전드 마무리의 탄생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