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여, 저는 할 수 있는 걸 다했습니다"...위대한 도전 나서는 4인의 용사들 - ④김라경 [스춘 여자야구]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4인방, WPBL 도전
2026년,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WPBL)가 출범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무대에 한국 여자야구 선수 4명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아직 프로는 물론 실업 무대조차 없는 한국 여자야구 현실 속에서, 이들의 도전은 단순한 이적이나 진출을 넘어 '가능성의 증명'이자 '미래를 향한 선언'입니다. 스포츠춘추는 WPBL 트라이아웃에 나서는 네 명의 선수를 중심으로, 그들의 도전과 성장, 그리고 여자야구의 오늘과 내일을 조명하는 특별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한자성어다. 한국 여자야구 '간판'이자 국가대표 1선발 김라경(25·서울대 졸)이 바로 그 자세로 운명의 무대를 향해 나선다.
오는 20일, 김라경은 미국으로 출국한다. 2026년 미국에서 공식 출범하는 여자 프로야구 리그 WPBL에 참가하기 위한 트라이아웃 무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WPBL은 1943년부터 1954년까지 존재했던 전미여자프로야구리그(AAGPBL) 이후, 70년 만에 부활하는 ‘여성을 위한 정식 프로야구 리그’다. 이제 여자야구 선수들도 ‘프로’라는 이름을 당당히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김라경은 그 시대를 가장 오래, 가장 간절히 기다려온 이들 중 하나다.
“왜 여자야구엔 프로 무대가 없을까.”
서울대학교 야구부와 일본 여자야구팀이라는 상징적인 무대에서, 그리고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에서수많은은 공을 던져온 김라경. 하지만 아무리 성실히 공을 뿌려도,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프로 선수’라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수십만 개의 공을 던지고 또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김라경이 만 26세가 되는 2026년, 그토록 바라던 ‘프로 무대’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벅차오르는 기대만큼, 불안감과 초조함도 컸다. 무덤덤한 얼굴 뒤로 들끓는 긴장감을 숨긴 채, 김라경은 묵묵히 자신을 단련해갔다. 미국에 가서 먹을 식단을 직접 챙기고, 현지 환경에 맞춘 운동 루틴까지 만들어가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계획하고 준비했다. 김라경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다. 이제 결과는 하늘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WPBL 트라이아웃은 단순한 테스트를 넘어 세계 여자야구의 상징적인 장면이 될 전망이다. 전 세계에서 600명이 넘는 여자야구 선수가 한자리에 모인다. 김라경은 그 순간이 단순한 ‘경쟁’이 아닌 ‘축제’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모인 선수들은 모두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들과 함께 프로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김라경에게 이번 도전은 승패나 성적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는 “이토록 멋진 무대를 두려움 없이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아무런 확신도 없이 달려왔던 시간들, 단 한 줄의 프로 계약서도, 어떠한 지위나 명예, 금전적 보장도 없던 현실 속에서도 그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김라경 앞에, 오롯이 그를 위한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그 무대 위에서 김라경은 마지막까지 담담하게, 그러나 가장 뜨겁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던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이든, 김라경은 이미 한국 여자야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앞으로 나아갈 다음 세대의 롤모델이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