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들은 홈런치고 빠던에 세리머니 하면서...투수의 삼진 포효는 사과할 일? NC-한화전 벤클로 본 이중잣대 [스춘 FOCUS]

홈런 치고 포효하는 타자는 괜찮고...투수만 사과해야 하나

2025-08-17     배지헌 기자
NC 다이노스 선발 신민혁(사진=중계화면 캡쳐)

 

[스포츠춘추]

16일 창원 NC파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NC 선발투수 신민혁이 한화 하주석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포효했다가 벤치클리어링까지 발생한 일 말이다. 신민혁은 즉석에서 모자를 벗으며 사과했다. 그런데 과연 이게 투수가 사과할 일이었을까.

야구계엔 오랫동안 투수 불문율이 있었다. 삼진을 잡고 나서 과도하게 기뻐해선 안 된다는 암묵적 룰. 타자를 조롱하는 듯한 세레머니는 금물이었고, 위반하면 언젠가 보복을 당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따라붙었다. 스포츠 작가 로스 번스타인의 '더 코드'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투수가 삼진으로 물러난 타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금물이다."

NC 다이노스 선발 신민혁의 세리머니가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사진=중계화면 캡쳐)

지난해 7월 한화 박상원의 경우엔 경계선상을 넘나들었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12대 2로 크게 앞선 8회말, 삼진 세레머니를 과도하게 했다가 KT 선수들의 격한 항의를 받았다. 김장훈의 독도킥을 연상케 하는 발차기 퍼포먼스였다. 투구할 때마다 크게 고함을 치는 것부터 언짢았는데, 큰 점수차에서 큰 제스처가 나왔으니 상대방이 언짢을 여지가 아예 없진 않았다.

그런데 신민혁의 경우는 어떤가. 5대 4로 팽팽한 경기 상황이었고, 직전 등판에서 6이닝 9실점으로 데뷔 후 최악의 투구를 했던 터였다. 4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지 못해 머리까지 삭발하고 나선 이날, 그의 포효는 답답함과 절박함의 표출에 가까웠다. MBC스포츠플러스 정민철 해설위원도 "신민혁 선수는 본인에게 한 다짐인데, 하주석 선수가 오해한 장면"이라고 분석했다.

공평하지 못하단 생각이 든다. 요즘 야구에서 타자들은 홈런을 치면 하늘을 가리키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때로는 춤을 추기도 한다. 한때 절대 금기였던 빠던(배트플립)은 이제 당연한 풍경이 됐다. 과거 투수들이 혐오했던 세레머니를 이제는 MLB도 KBO도 리그 차원에서 장려한다. 2015년 ALDS에서 호세 바티스타가 보여준 화려한 '빠던'은 이듬해 5월 빈볼과 난투극으로 이어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예 공식 계정에 '빠던' 장면만 모은 영상이 올라올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NC 다이노스 선발 신민혁의 세리머니가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사진=중계화면 캡쳐)

그런데 투수가 삼진을 잡고 기뻐하면 "상대를 자극했다"는 소리가 나오고, 사과를 요구받는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대결이다. 타자가 홈런을 치면 기뻐할 권리가 있듯, 투수도 삼진을 잡으면 기뻐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타자들의 홈런 세레머니는 박수받고, 투수의 삼진 포효는 사과 대상이 된다.

바티스타는 과거 한 기고문에서 "낡고 오래되고 불합리한 불문율은 젊은 선수들과 야구팬 사이에서 공감을 사지 못한다"고 썼다. 어째서 같은 감정 표현이 포지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하는 걸까. 타자의 세레머니는 '감정 표현의 자유'이고, 투수의 포효는 '상대 자극' 행위인가.

물론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오래된 불문율에서 지나치게 많은 금지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이란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신민혁처럼 자신의 절박함을 표현한 것까지 벤클로 이어지고 사과하는 건 과하다. 타자들은 마음껏 세레머니를 하면서 투수만 사과해야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진정한 존중은 서로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