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몸에 맞는 볼이 줄고 있다? 통계전문 매체가 분석한 이유 세 가지: 싱커 감소, 제구력 향상, 그리고... [스춘 MLB]
40년 증가세 꺾이며 5년째 감소..."싱커볼 줄고, 타자 회피 능력 늘어"
[스포츠춘추]
메이저리그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40년간 계속 꾸준히 늘어나던 몸에 맞는 볼이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부터 꾸준히 상승해온 HBP 비율이 2020년 정점을 찍은 뒤 뚜렷한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동안 야구계는 '몸에 맞는 볼 전염병'을 걱정해왔다. 주요 매체들이 수십 건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톰 버두치는 2021년에 이어 두 달 전에도 거의 똑같은 제목의 기사를 썼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감소에 대한 분석은 전무했다.
이와 관련해 야구 통계 전문 매체 팬그래프의 데이비 앤드루스가 20일(한국시간)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지난 5년 중 4차례 HBP 비율이 감소했다"며 "수십 년간 울려댔던 경보를 이제 끌 때가 됐다"는 진단이다.
앤드루스에 따르면 첫 번째 원인은 구종 변화다. 그중에서도 싱커볼의 몰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회전성 무브먼트의 싱커볼은 원래 타자를 괴롭히는 데 탁월한 구종이지만, 동시에 몸에 맞힐 확률도 높다. 2021년 이후 전체 HBP의 66%를 싱커볼과 각종 변화구가 차지했다. 2008~2016년에는 60% 미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싱커볼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2010년부터 서서히 줄어들던 사용량이 2019년부터는 급락했다. 대신 체인지업, 스플리터, 슬라이더 계열이 늘었다. 이런 구종들은 상대적으로 타자를 맞힐 확률이 낮은 편이다. 투수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HBP까지 줄어든 셈이다.
두 번째 분석도 흥미롭다. 앤드루스는 투수들이 전보다 더 많은 몸쪽 공을 던지는데도 HBP는 오히려 줄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투수들은 타자 쪽으로 휘는 공을 더 자주 던지고 있다. 안쪽 공략도 늘었다. 상식으로는 HBP가 늘어야 맞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핵심은 정교함이다. 몸쪽 공략은 늘었지만 정말 위험한 극단적인 몸쪽 공은 오히려 줄었다. 과거처럼 타자를 위협하려고 몸쪽 깊숙이, 그것도 높은 곳으로 던지는 빈볼은 줄어들고, 대신 스트라이크존 근처의 안쪽으로 정교하게 던지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우타자 기준 위험한 안쪽 공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안쪽을 공략하되, 타자를 맞히는 일은 줄인 셈이다.
평균 HBP 높이도 지난 몇 년간 12.7cm나 낮아졌다. 머리나 손목 같은 치명적 부위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하체 부위를 맞히는 경우가 늘었다. 빈볼이 줄고 투수들의 제구력이 향상됐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앤드루스가 분석한 세 번째 원인은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다. 빠른 공일수록 타자를 덜 맞힌다는 역설이다.
시속 161km 미만에서는 속도가 빠를수록 HBP 확률이 뚜렷하게 떨어졌다. 같은 위치에 던진 공이라도 156km보다 148km 공이 타자를 더 자주 맞혔다. 반응시간이 짧을수록 피하기 어려워야 상식인데,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건 시기별 차이다. 2021년 이후에야 이런 현상이 뚜렷해졌다. 2016~2020년에는 명확한 패턴이 없었다. 즉, 최근 들어 타자들의 행동양식이 바뀐 것이다.
"타자들이 빠른 공을 무서워해서 더 잘 피한다는 게 유일한 해석"이라고 앤드루스는 분석했다. 생존 본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156km를 던지는 투수가 제구에 실패해 안쪽으로 빠진 공 앞에서 타자들이 재빨리 몸을 피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패스트볼 전체 HBP 비율은 올랐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구속이 느린 패스트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빠른 구속의 패스트볼 HBP는 오히려 감소했다. 빠른 공 앞에서는 몸을 사리고, 느린 공 앞에서는 방심한다는 것이다. 타자들이 무의식적으로 학습한 결과다.
물론 HBP를 늘리는 요인들도 남아 있다. 극단적으로 휘는 스위퍼 사용 증가가 대표적이다. 스위퍼는 일반 슬라이더보다 88% 더 자주 타자를 맞힌다. 하지만 아직 전체 구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감소 추세를 뒤바꾸지는 못한다.
선수들의 체격 변화도 변수다. 과거 피 위 리스 같은 작은 선수보다 애런 저지 같은 거구가 늘면서 몸에 맞을 확률 자체는 높아진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을 감안해도 전체 감소세는 분명하다.
결국 세 가지 요인이 40년 증가세를 꺾었다. 싱커볼 몰락, 제구력 향상, 타자들의 회피 능력 각성. 하지만 이런 변화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야구는 끊임없이 변한다. 투수와 타자의 군비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어느 순간 또 다른 변곡점이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40년간 지속된 패턴이 바뀐 만큼, 이 변화를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다. 지금까지 HBP 증가를 걱정해왔다면, 이제는 감소 이유도 따져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