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기는 결과만 확인...순위 신경 안 써요" 3위 탈환 SSG, 20년 베테랑의 비결은 '일희일비 안 하기' [스춘 히어로]
일희일비 안 하는 랜더스, 한 경기씩 최선 다한 결과 극적인 순위 역전 성공
[스포츠춘추=수원]
"롯데 경기요? 다 끝나고 결과만 확인해요."
한 번 삐끗하면 3위에서 8위로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는 혼돈의 중위권. 3위부터 8위까지 6개 팀 간 승차가 불과 3경기차에 불과한 역대급 치열한 순위싸움 속에서, SSG 랜더스가 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경쟁팀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고, 오직 자신들의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SSG는 20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전에서 5대 3으로 승리하며, 이날 10연패를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를 제치고 단독 3위로 올라섰다. 4월 16일 이후 처음으로 되찾은 3위 자리. 8월 3일까지만 해도 롯데와 5경기차 4위에 머물렀던 SSG가 극적인 역전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KBO리그 사상 최초 1500득점을 달성한 스타 최정 주위로 경기 후 취재진이 몰렸다. 아직 잠실 롯데 경기가 끝나기 전이었다. 한 취재진이 롯데 경기 상황을 알고 있는지 묻자 최정은 '아니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순위싸움하는 경쟁팀인 만큼 경기가 끝나자마자 스코어를 확인했을 법한데, 최정은 그러지 않았다.
"롯데 경기는 끝난 뒤에 다른 경기들과 함께 결과만 확인한다"며 담담하게 설명한 최정은 "팀 순위는 1, 2위를 가릴 때나 신경 썼지, 그보다 밑에 있을 때는 별로 순위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다. 20년 베테랑이 터득한 생존의 지혜다. 최정은 "다른 선수들도 그냥 한 게임 한 게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며 "순위싸움 한다는 긴장감 없이, 물론 긴장감이 없을 순 없지만 그래도 너무 조바심내지 않고 편안하게 자기 플레이를 자신 있게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순위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자세다.
이숭용 감독 역시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취재진 인터뷰에서 "위를 보려고 하면 계속 보인다"며 미소를 보인 이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는 최대한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좋은 흐름만 유지하자, 그 생각뿐이다. 가장 중요한 건 순리대로 가야 한다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20일 경기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도 이 감독의 철학은 일관됐다. "순위싸움이 치열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일단 우리 팀이 잘해서 승리해야 그다음에 뭐라도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144경기가 다 끝나야 결과가 나오는 거고 지금은 과정이다. 수많은 과정이 있으니까 그에 대해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강조한다"며 장기적 관점을 드러냈다.
이런 마음가짐은 실제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11경기 동안 3위였던 롯데가 1무 10패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SSG는 주전 줄부상과 각종 악재 속에서도 6승 6패로 묵묵히 버텨냈다. 한때 롯데와 5경기차까지 벌어진 격차에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한 경기씩 차근차근 최선을 다한 결과가 극적인 역전으로 이어졌다.
SSG만의 또 다른 강점은 개인보다 팀을 우선하는 성숙한 자세에 있다. 최정은 올시즌 부상과 타격감 난조로 예년 대비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71경기 타율 0.225에 14홈런 43타점은 그의 커리어를 고려하면 아쉬운 수치다. 하지만 최정의 시선은 개인 기록을 넘어 팀에 맞춰져 있었다.
"어차피 지금 제가 개인 성적을 생각해야 될 시기는 아니다"라며 솔직하게 말문을 연 최정은 "팀이 이제 순위싸움하고 있는데 끝까지 팀이 이기는 데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에 개인 기록보다는 팀이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게 목표"라는 그의 말에선 진정한 리더의 면모가 엿보였다.
사실 SSG에게 치열한 순위싸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21년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창단한 첫 시즌부터 막판까지 뜨거운 순위경쟁을 벌였다. 최종전에서 순위가 결정돼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전년도 9위 팀이 5위 키움과 0.5경기차까지 추격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
그 기세를 이어 2022년에는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2023년에도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 끝에 3위로 마무리했는데, 이때도 4위와 1.5경기차, 6위 팀과 3.5경기차에 불과할 정도로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지난해 역시 정규시즌 최종전까지 가는 혼전 끝에 5위와 승차 없는 6위로 시즌을 마쳤다.
매년 반복된 치열한 경쟁은 SSG를 단련시켰다. 순위싸움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내성을 기른 셈이다. 최정의 여유로운 모습도, 이숭용 감독의 신중한 접근법도 모두 이런 경험에서 나왔다.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며, 욕심내지 않고 순리대로 가겠다는 마음가짐은 결국 3위 탈환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물론 아직 순위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하지만 SSG가 보여준 '여유'의 힘은 분명하다. 치열한 순위경쟁 속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큰 그림을 그리는 SSG 만의 접근법이 과연 포스트시즌 진출로,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이어질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