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신인이 3할 타율, 김태균-이정후 이후 박준순이 처음..."3루 수비도 기대 이상" 조성환 대행도 극찬 [스춘 히어로]
허경민 공백 메운 3루수 후계자, 김재호 등번호 물려받은 후계자 등장
[스포츠춘추=잠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타자가 프로 1군 무대에서 바로 적응해 활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고교 레벨에선 한번도 본 적 없는 각 팀 에이스급 투수들과 외국인 투수들의 공을 상대해야 하고, 토너먼트 전국대회만 하다가 144경기 페넌트레이스를 소화하는 강행군을 버텨야 한다. 무엇보다 기라성 같은 기존 선배 선수들 틈에서 자리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실제로 KBO리그 역사를 돌아봐도 19세 이하 고졸 신인 타자가 바로 1군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역대 19세 이하 타자 중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단 12명뿐이고, 한 시즌 200타석 이상 출전한 선수도 총 36명으로 1년에 1명꼴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올 시즌 두산 베어스에 그런 ‘특별한’ 신인이 나타났다.
바로 박준순이다. 2025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두산에 입단한 19세 내야수가 데뷔 첫 해부터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차며 놀라운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박준순은 23일 현재까지 6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0(213타수 64안타), 3홈런, 15타점, 8도루, OPS 0.722를 기록 중이다. 작년까지 고교 무대에서 뛰었던 신인 내야수라고는 믿기 힘든 성적표다.
박준순의 타율 3할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00년대 이후 19세 이하 신인으로 200타석 이상 출전하며 3할 이상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2001년 한화 김태균(0.335)과 2017년 넥센(현 키움) 이정후(0.324), 그리고 올 시즌 두산 박준순 세 명뿐이다. 프로 원년까지 범위를 넓혀도 1982년 OB 구천서(0.308), 1994년 한화 박지상(0.308)까지 포함해 총 5명만이 이런 기록을 세웠다.
김태균은 KBO리그 역대 최고의 레전드 타자고, 이정후 역시 리그 최고의 타자로 활약하다 현재는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활약 중이다. 이런 레전드 선수들이나 가능한 19세 신인 3할 타율을 올 시즌 박준순이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태균의 주 포지션이 1루수, 이정후가 외야수인 데 비해 박준순은 3루수, 유격수, 2루수 등 수비 부담이 큰 내야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대단하다.
박준순의 활약에 두산 조성환 감독대행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 감독대행은 22일 잠실 KT 위즈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타격은 그래도 어느 정도 결과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3루 수비를 지금 정도로 할 줄은 몰랐다”며 “실책도 많고 미숙한 면도 있지만 우리가 예상할 때 제일 놀란 부분은 박준순의 수비”라고 감탄했다.
조 대행은 전반기 끝난 뒤 인터뷰에서도 “박준순은 내가 생각했던 한계치를 일찌감치 넘어섰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상황에 따라 당겨치고 밀어 치는 걸 보니 프로 시즌을 몇 년 치른 선수 같더라. 이미 자신과의 싸움은 끝냈고, 상대의 집중 견제까지 극복한다면 그 자리에서 박준순을 이길 선수가 없지 않을까 싶다”고 극찬한 바 있다.
박준순의 타격 능력은 이미 고교 시절부터 정평이 났다. 덕수고 시절인 지난해 고교 3학년 시즌 이마트배 대회에서 7경기 타율 0.520에 4홈런 13타점으로 전국의 투수들을 초토화하며 타율-홈런-타점 3관왕을 차지했다. 작년 시즌 전체로는 34경기 타율 0.442(113타수 50안타), 5홈런, 33타점, 22도루, OPS 1.250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했다.
프로에서도 그 재능은 곧바로 빛을 발했다. 4월 13일 1군 데뷔 후 처음에는 대주자, 대수비로 기회를 얻었지만, 6월 조성환 감독대행 체제가 시작된 이후 본격적으로 주전 기회를 잡았다. 6월 한 달간 타율 0.296을 기록하며 적응했고, 7월에는 월간 타율 0.338에 OPS 0.832로 더욱 뜨거운 활약을 펼쳤다. 8월에도 월간 타율 0.274로 꾸준함을 유지하고 있다. 타율 0.300에 출루율 0.318로 선구안 개선이 필요하긴 하지만, 19세 신인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지난 7월 ‘천재 유격수’ 김재호의 은퇴식에서 박준순은 52번 유니폼을 물려받는 퍼포먼스의 주인공이 됐다. 박준순은 허경민 이후 16년 만에 두산이 1라운드에서 지명한 내야수이기도 하다. 김재호의 후계자이자 동시에 허경민의 후계자인 셈이다. 박준순에 거는 두산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태균과 이정후가 함께 거론되는, 김재호와 허경민의 후계자로 인정받은 특급 유망주의 등장에 두산 팬들은 가슴이 뛴다. 지명 당시 김태룡 두산 단장은 박준순을 가리키며 “두산 내야를 20년간 책임질 선수로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 20년의 출발점은 바로 올해부터다. 두산의 미래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