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봉황대기 건너뛰고 '여자야구' 보러온 前키움팬 [스춘 현장]

히어로즈에서 멀어진 마음, 여자야구로 다시 뜨거워지다

2025-08-24     황혜정 기자
오OO씨가 여자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화성=스포츠춘추]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야구장에 카메라를 든 젊은 여성이 선수들을 촬영하는 모습 말이다. 그러나 렌즈 너머의 주인공이 여자 선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선수들을 ‘팬심’ 하나로 담기 위해 화성까지 택시를 타고 온 젊은 여성이 있다. 37도까지 치솟은 폭염 속에서 열정적으로 촬영을 이어간 그녀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바로 여자야구 '1호 팬'으로 불리는 23세 대학생 오 모 씨다.

화성 드림파크에서는 주말마다 어김없이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이 맹훈련을 펼친다. 대표팀은 허일상 감독의 지도 아래, 오는 10월 말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2025 여자야구 아시안컵(BFA)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 곁을 지키는 한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조용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그녀, 바로 오 씨였다.

24일 화성에서 만난 오 씨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해부터 여자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직접 와서 보니 너무 재밌고, 막 끓어오르는 게 있더라고요.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예요.”

오 씨가 여자야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여자야구 국가대표 손가은(19) 덕분이다. 손가은은 2023년 제51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출전한 선수다. 2024년 제52회 봉황대기에서는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고교야구 마운드를 밟은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됐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팬이었던 오 씨는 고교야구에도 관심이 많았다. 손가은 선수의 활약 소식을 접한 뒤, 여자야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가은 선수 덕분에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가 이곳 화성까지 오게 됐어요.”

여자야구 대표팀이 24일 덕수중과 경기에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이날 여자대표팀은 덕수중학교와의 친선경기를 치렀고, 8회 말 외야수 안수지의 역전 3타점 적시타로 6-5 대역전승을 거뒀다. 경기를 지켜본 오 씨는 이렇게 전했다. “정말 재밌었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감동받았고, 순수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어요. 앞으로도 자주 올 생각이에요.”

어릴 적부터 목동야구장과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키움 히어로즈를 응원해온 오 씨. 왜 키움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냥 좋았어요. 부모님은 다른 구단을 응원하시는데, 저만 히어로즈 팬이었죠”라며 자신을 ‘버건디 피’가 흐른다고 표현했다. 오 씨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현재 탬파베이에서 활약 중인 김하성이다.

하지만 최근 키움에 대한 애정은 뚝 떨어졌다고. 구단 관련 이슈가 연이어 터지며 일종의 '환멸'을 느꼈고, 프로야구 전반에 대한 관심도 점점 멀어졌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활력을 준 것이 바로 '여자야구'였다. “프로야구를 안 보던 차에 다음 학기에 휴학하게 돼서 시간이 좀 생겼어요. 주말마다 화성에서 여자야구 대표팀이 훈련한다고 해서 한 번 와봤는데, 정말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여자야구 국가대표 손가은과 오OO씨가 다정하게 사진 촬영에 임했다. (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여자야구 선수들에게도 ‘1호 팬’ 오 씨의 존재는 반가운 일이다. 손가은은 “응원하러 먼 길 와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저를 통해 여자야구를 아시게 돼서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고, 허일상 감독도 “언제든 오셔서 편하게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드릴 게 없어서 오히려 죄송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는 카메라를 든 팬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촬영한 사진은 온라인을 통해 선수와 구단의 자연스러운 홍보 수단이 되며, 또 다른 팬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이제 여자야구에도, 비록 단 한 명일지라도 그런 팬이 생겼다. 

오 씨는 웃으며 말했다. “더 많은 분들이 카메라 들고 여자야구 현장에 나오셔서 저랑 사진 경쟁(?)하시면 이보다 기쁠 일은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