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봉황대기 건너뛰고 '여자야구' 보러온 前키움팬 [스춘 현장]
히어로즈에서 멀어진 마음, 여자야구로 다시 뜨거워지다
[화성=스포츠춘추]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야구장에 카메라를 든 젊은 여성이 선수들을 촬영하는 모습 말이다. 그러나 렌즈 너머의 주인공이 여자 선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선수들을 ‘팬심’ 하나로 담기 위해 화성까지 택시를 타고 온 젊은 여성이 있다. 37도까지 치솟은 폭염 속에서 열정적으로 촬영을 이어간 그녀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바로 여자야구 '1호 팬'으로 불리는 23세 대학생 오 모 씨다.
화성 드림파크에서는 주말마다 어김없이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이 맹훈련을 펼친다. 대표팀은 허일상 감독의 지도 아래, 오는 10월 말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2025 여자야구 아시안컵(BFA)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 곁을 지키는 한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조용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그녀, 바로 오 씨였다.
24일 화성에서 만난 오 씨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해부터 여자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직접 와서 보니 너무 재밌고, 막 끓어오르는 게 있더라고요.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예요.”
오 씨가 여자야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여자야구 국가대표 손가은(19) 덕분이다. 손가은은 2023년 제51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출전한 선수다. 2024년 제52회 봉황대기에서는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고교야구 마운드를 밟은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됐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팬이었던 오 씨는 고교야구에도 관심이 많았다. 손가은 선수의 활약 소식을 접한 뒤, 여자야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가은 선수 덕분에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가 이곳 화성까지 오게 됐어요.”
이날 여자대표팀은 덕수중학교와의 친선경기를 치렀고, 8회 말 외야수 안수지의 역전 3타점 적시타로 6-5 대역전승을 거뒀다. 경기를 지켜본 오 씨는 이렇게 전했다. “정말 재밌었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감동받았고, 순수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어요. 앞으로도 자주 올 생각이에요.”
어릴 적부터 목동야구장과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키움 히어로즈를 응원해온 오 씨. 왜 키움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냥 좋았어요. 부모님은 다른 구단을 응원하시는데, 저만 히어로즈 팬이었죠”라며 자신을 ‘버건디 피’가 흐른다고 표현했다. 오 씨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현재 탬파베이에서 활약 중인 김하성이다.
하지만 최근 키움에 대한 애정은 뚝 떨어졌다고. 구단 관련 이슈가 연이어 터지며 일종의 '환멸'을 느꼈고, 프로야구 전반에 대한 관심도 점점 멀어졌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활력을 준 것이 바로 '여자야구'였다. “프로야구를 안 보던 차에 다음 학기에 휴학하게 돼서 시간이 좀 생겼어요. 주말마다 화성에서 여자야구 대표팀이 훈련한다고 해서 한 번 와봤는데, 정말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여자야구 선수들에게도 ‘1호 팬’ 오 씨의 존재는 반가운 일이다. 손가은은 “응원하러 먼 길 와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저를 통해 여자야구를 아시게 돼서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고, 허일상 감독도 “언제든 오셔서 편하게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드릴 게 없어서 오히려 죄송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는 카메라를 든 팬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촬영한 사진은 온라인을 통해 선수와 구단의 자연스러운 홍보 수단이 되며, 또 다른 팬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이제 여자야구에도, 비록 단 한 명일지라도 그런 팬이 생겼다.
오 씨는 웃으며 말했다. “더 많은 분들이 카메라 들고 여자야구 현장에 나오셔서 저랑 사진 경쟁(?)하시면 이보다 기쁠 일은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