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뚱뚱하고 발도 느린 선수가 어떻게 20도루를? 조시 네일러는 '다리'가 아닌 '머리'로 뛴다 [스춘 MLB]

키 183cm에 몸무게 106kg 조시 네일러의 신기한 도루 능력

2025-08-26     배지헌 기자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발도 느리지만 많은 도루를 하는 선수 네일러(사진=MLB.com 방송화면)

 

[스포츠춘추]

키 183cm에 몸무게 106kg의 뚱뚱한 몸. 메이저리그 전체 546명 중 532등의 느린 발. 그런데 이런 선수가 올 시즌 22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야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1루수 조시 네일러 얘기다.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25일(한국시간) "네일러가 지난 한 달간 11개 도루로 메이저리그 2위를 기록했다"며 "이는 빠른 발로 유명한 엘리 델라 크루즈, 자렌 듀란, 피트 크로 암스트롱 3명이 같은 기간 기록한 도루를 합한 것과 같다"고 보도했다.

네일러의 체격 조건을 보면 더욱 놀랍다. 스탯헤드 통계에 따르면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키 183cm 이하에 몸무게 106kg 이상인 현역 선수는 단 9명뿐이다. 네일러를 제외한 나머지 8명이 올 시즌 합쳐서 기록한 도루는 고작 7개다. 그런데 네일러의 도루 숫자는 22개나 된다.

더 놀라운 건 네일러가 이 신체 조건으로 한 시즌 20개 이상 도루를 기록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번째 선수라는 점이다. 

스탯캐스트가 측정한 네일러의 평균 스프린트 속도는 초속 7.47m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피드스터 바비 위트 주니어(초속 9.24m)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10회 이상 측정된 546명 중 532위에 해당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도루를 하면 안 되는 선수처럼 보인다.

그런데 네일러는 많은 도루를 시도하고, 그만큼 성공한다. 25일 현재 네일러는 시즌 92%의 도루 성공률을 자랑한다. 지난 4개월간 18번 연속 도루 성공이라는 경이로운 기록도 세웠다. 4월 이후 단 한 번도 아웃당하지 않은 것이다.

7월 25일 시애틀로 이적한 이후의 성과는 더욱 놀랍다. 네일러는 단 11경기에서 11개 도루를 성공시켜 100% 완벽한 성공률을 기록했다. 지난 한 달간 뉴욕 양키스 재즈 치솜 주니어(12개)에 이어 메이저리그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네일러가 도루에 성공한 상대 포수 명단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J.T. 리얼무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패트릭 베일리처럼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강견 포수들도 네일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유망주 카일 틸을 상대로는 2경기에서만 4개의 도루를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발도 느리지만 많은 도루를 하는 선수 네일러(사진=MLB.com 방송화면)

그렇다면 네일러가 많은 도루를 하는 비밀은 뭘까. 답은 간단하다. '다리'가 아니라 '머리'다.

"형에게는 게임의 지적인 부분이 있다"고 친동생이자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포수인 보 네일러가 설명했다. "패턴 인식과 그런 것들을 활용하는 능력 말이다. 미친 듯한 스피드를 가진 선수들은 그냥 다리만 믿고 뛰면 된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클리블랜드 1루 코치 샌디 알로마 주니어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네일러는 좋은 주루 IQ와 본능을 갖고 있다. 상대방의 경향과 패턴을 파악하는 데 탁월하다."

전 클리블랜드 코치이자 현 보스턴 레드삭스 코치인 카일 허드슨은 "네일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면서도 "몸매만 봐선 운동선수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매우 운동신경이 좋다"고 평가했다. "2020년 샌디에이고에서 트레이드로 왔을 때 '이 선수 움직임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훨씬 민첩하다."

네일러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네일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기회를 잡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야구를 하고, 열심히 뛸 뿐"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제 '대도' 네일러 앞에는 흥미로운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 시애틀이 클리블랜드를 방문해 가디언스와 시리즈를 치르는데, 여기에 친동생 보 네일러가 포수로 나설 전망이다. 가족들도 이날 경기장을 찾을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느리고 뚱뚱한 '대도'는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친동생을 상대로 도루를 시도할까. 보 네일러는 "100% 그럴 것이다. 솔직히 안 한다면 오히려 놀랄 일"이라며 형과의 대결을 반겼다.

네일러의 신기한 도루 행진은 도루가 단순히 빠른 발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투수의 마운드 습관, 포수의 송구 타이밍, 카운트별 볼 배합 등 복잡한 퍼즐을 맞춰가며 최적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땅딸보' 1루수의 거침없는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