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율 0.286 OPS 0.818' 이 정도면 '공격형 중견수' 아닌가요?...백업에서 주전으로, 김호령의 전성시대 [스춘 히어로]
3안타 5타점 개인 최다타점 타이, 팀 10대 1 대승 견인
[스포츠춘추=수원]
"칠 수 있을 때 많이 쳐놔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공격형 중견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만년 백업에서 주전으로 도약한 KIA 타이거즈 김호령이 또 한번 방망이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타율도 OPS도 어느새 리그 정상급 중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김호령은 2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4타수 3안타 1홈런 5타점 2득점 1볼넷으로 개인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 기록을 세웠다. KIA는 10대 1 완승으로 3연승을 달렸다.
팀 최고참 최형우가 휴식을 취한 이날, KIA는 5회까지 패트릭 머피를 상대로 한 점도 내지 못하고 0대 1로 끌려갔다.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상황에서 김호령이 해결사로 나섰다.
6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김호령이 패트릭을 상대로 우중간 2루타를 터뜨렸다. 이어진 김선빈의 적시타로 김호령이 홈을 밟아 1대 1 동점을 만들었다. 김호령은 "첫 타석 때도 볼넷으로 나가긴 했는데 그때도 타이밍 잡는 연습을 했다.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선우의 역전 3점 홈런으로 4대 1이 된 이후에도 KIA의 공격은 계속됐다. 2사 후 볼넷과 연속 안타로 만루 찬스가 조성되자, 타자일순으로 다시 나선 김호령에게 찬스가 왔다. 0-2 불리한 카운트에서 4구째 커브를 받아쳐 중견수 쪽 라이너를 날렸다. 중견수 앤드류 스티븐슨이 몸을 날렸지만 잡을 수 없었고, 주자 3명이 모두 홈인하며 7대 1로 벌어졌다.
김호령은 "솔직히 잡힐 줄 알았다. 다이빙을 하고 그런 결과가 나왔는데, 나 같아도 그렇게 다이빙했을 것 같다. 잡으면 아웃이니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8회에는 무사 1루에서 김동현의 초구 속구를 받아쳐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을 추가했다. 비거리 130m짜리 시즌 6호 홈런으로 10대 1 완승을 확정지었다.
2015년 신인드래프트 2차 10라운드 102순위로 KIA에 입단한 김호령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수비 하나는 정수빈, 박해민과 비교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에 비해 약한 타격 때문에 늘 백업과 1.5군 외야수에 머물렀다.
올 시즌 전망도 밝지 않았다. 이우성-최원준-나성범에 이창진의 백업으로 외야진이 구성된 가운데 시작한 시즌, 30대에 접어든 김호령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성범과 이창진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최원준과 이우성이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5월까지는 대수비, 백업으로 나오며 타율 0.217로 예년과 다르지 않은 시즌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출전 기회가 늘어난 6월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기회를 잡은 김호령은 6월 타율 0.271, OPS 0.744로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7월에는 더욱 뜨거워졌다. 타율 0.328, 2홈런 12타점 4도루 OPS 0.906을 기록했다. 특히 7월 5일 홈 롯데전이 터닝포인트였다. 2회 시즌 첫 홈런인 솔로포를 시작으로 5회 무사 만루에서 만루 홈런을 터뜨리며 5타수 3안타 5타점 3득점 맹타를 휘둘렀다. 한 경기 2홈런도, 만루 홈런도 프로 데뷔 이후 처음이었다.
8월에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타율 0.303, 4홈런 11타점 OPS 0.942로 외국인 타자급 월간 성적을 냈다. '저러다 말겠지' 하던 시선을 비웃듯이 시즌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뜨거운 방망이를 보여줬다.
30일 현재 김호령의 시즌 전체 성적은 타율 0.286, 출루율 0.359, 장타율 0.459에 6홈런 38타점, 조정 득점창출력(wRC+) 128.6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기에만 타율 0.288, OPS 0.847을 기록 중이다.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는 2.34승으로 지난해까지 10년간 기록한 합계(2.54승)과 맞먹는다.
200타석 이상 중견수 중 김호령의 타율은 삼성 김성윤(0.325)에 이어 2위다. OPS 0.818 역시 김성윤(0.873) 다음으로 높다. 정수빈(0.730), 박해민(0.726) 등 리그 내로라하는 중견수들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해까지 주전 중견수였던 소크라테스 브리토나 최원준의 기록과 비교해도 모자랄 게 없는 스탯을 찍고 있다.
경기 후 김호령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계속 연패하고 팀도 8위로 떨어지고 안 좋은 성적이었는데, 3연승에 보탬이 된 것 같아 너무 기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떻게 해서든 해보자고 모여서 미팅도 했는데 안 될 때는 안 되더라. 1승을 하게 되면 흐름이 바뀌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SSG전부터 좋은 결과로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령은 아직 자신의 방망이를 과신하지 않는다. 최근 타격감에 대해선 "요 근래 타이밍이 잘 맞아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칠 수 있을 때 많이 쳐놔야 할 것 같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도 "장타는 절대 의식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나가려는 생각만 했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김호령의 성적과 경기에서 보여주는 존재감은 더 이상 백업이나 수비형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다. 이제는 '공격형 중견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10년을 기다린 김호령이 타이거즈 외야를 마음껏 호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