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까지는 폰세-네일 안 부러운데 5회, 6회 되면 와르르르르...'5무원' 패트릭, KT의 딜레마 [스춘 이슈분석]
5회까지 무실점 순항, 6회 들어 7실점 붕괴...패트릭의 이닝 소화 능력 문제
[스포츠춘추=수원]
외국인 투수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건 '압도적' 에이스의 면모다. 나왔다 하면 7이닝은 기본, 8회 9회까지도 혼자서 다 막아내는 강력한 투수 말이다. 올 시즌 완봉승만 2번 달성한 삼성 아리엘 후라도, 경기당 평균 6.31이닝을 혼자 던지는 한화 코디 폰세 같은 괴물 에이스가 외국인 투수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KT 위즈의 대체 외국인 투수 패트릭 머피는 아쉬움을 준다. 4회까지는 후라도나 폰세 못지않게 강력하다. 제대로 된 안타 하나 때려내기 힘들 만큼 완벽한 피칭을 선보인다. 그런데 5회쯤 되면, 상대 타순이 세 바퀴 돌 때쯤이면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된다.
2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이 패트릭의 약점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5.2이닝 8피안타 1피홈런 4볼넷 7실점으로 무너지며 팀의 1대 10 참패를 자초했다. 5회까지는 단 2안타만 허용하며 무실점 완벽 피칭이었지만, 6회 2아웃을 잡는 동안 6안타 2볼넷을 내주며 7점을 토했다.
5회까지만 해도 패트릭의 피칭은 상대 선발 제임스 네일보다 더 완벽했다. 1회초 볼넷 하나를 내줬지만 실점 없이 넘어갔고, 2회에는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3회에도 선두타자 볼넷 이후 후속타를 허용하지 않았고, 4회에는 KIA 중심 타선을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호투를 이어갔다.
5회에 첫 위기가 찾아왔지만 패트릭은 침착했다. 선두타자 오선우의 안타와 김석환의 안타, 우익수 실책으로 무사 1, 3루 위기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한준수를 1루수 정면 땅볼로, 회심의 대타카드 최형우까지 1루수 땅볼로 잡아내며 득점권 주자를 홈에 들여보내지 않았다. 박찬호까지 2루수 뜬공으로 처리해 5이닝 무실점을 완성했다.
5회말 공격에서 KT가 먼저 1점을 얻으면서 패트릭은 승리투수 자격까지 가져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KIA 타순 세 바퀴째에 접어든 6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선두타자 김호령에게 우중간 2루타를 허용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김선빈의 중전안타로 1대 1 동점을 내줬고, 패트릭 위즈덤을 5구 만에 볼넷으로 내보냈다. 결정타는 오선우의 우월 3점 홈런이었다. 3구째 높은 체인지업을 놓치지 않고 우측 담장 너머로 날려보낸 완벽한 타구였다.
2아웃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한준수 볼넷, 박민과 박찬호의 연속 안타로 만루가 됐다. 이 이닝 첫 타자였던 김호령이 다시 나와 중견수 쪽 라인드라이브를 날렸다. 중견수 앤드류 스티븐슨이 몸을 날렸지만 뒤로 빠지면서 주자 3명이 한꺼번에 홈으로 들어왔다. 패트릭은 결국 6회 1아웃을 남겨두고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KT는 1대 10으로 대패했다.
통계가 패트릭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대 타순을 첫 번째 상대할 때는 피안타율 0.197, 두 번째는 0.226으로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세 번째 상대에서는 피안타율이 0.344로 치솟는다. 피OPS도 1.073으로 급상승한다. 이닝별로 봐도 1-3회 피안타율 0.200, 4회 0.185로 위력적이지만 5회에는 0.393, 6회에는 0.533으로 갈수록 치솟는다. 패트릭이 5회를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KIA 타자들의 증언은 패트릭의 공을 초반에 치기 어려운 이유, 그리고 여러 번 상대할 수록 치기 수월해지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날 3점포의 주인공 오선우는 "투구폼이 정말 빠르다. 와인드업도 빠르고 퀵모션도 엄청 빠르다. 지금까지 만난 선수 중에 제일 빨랐다. 공도 빠르고 해서 그냥 눈 감고 쳤다"고 말했다.
6회 한 이닝에 패트릭에게 안타 2개를 때린 김호령도 "퀵모션이 너무 빨라서 처음엔 타이밍 잡기 어려웠다. 두 타석 정도 치고 나니 적응이 됐다"고 설명했다. 오선우는 "빨리 준비하자. 타자들끼리 그 얘기만 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타이밍을 잡기 어렵지만, 두번 세번 상대하면서 타이밍에 적응이 된다는 얘기다.
패트릭은 애초 긴 이닝을 던지는 데 특화된 투수가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전업 불펜투수로 활약했고, 통산 35경기 모두 구원 등판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202경기 중 95경기만 선발로 나왔고, 일본 니혼햄 파이터스에서도 대부분 불펜으로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날 선발 맞대결 상대였던 KIA 제임스 네일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불펜투수였다는 것이다. 네일은 마이너리그 245경기 중 96경기만 선발로 나왔고, 메이저리그 17경기는 전부 불펜이었다. KBO리그를 평정한 지난 시즌에도 이닝이터 능력은 아쉽다는 평을 들었다. 경기당 평균 5.74이닝에 불과했다.
하지만 네일은 올 시즌 완전히 달라졌다. 경기당 이닝은 6.17이닝으로 늘었고, 13회였던 퀄리티스타트도 19회로 증가해 후라도와 함께 리그 공동 1위다. 7이닝 이상을 던지는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는 작년 3회에서 올해 8차례로 크게 증가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7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아 패트릭과 대조를 이뤘다.
특히 타순을 여러 차례 상대하는 능력에서 네일의 진화가 돋보인다. 지난해엔 상대 타자들을 세 차례 상대하면 피안타율이 0.315로 치솟는 경향을 보였지만, 올해는 확실히 개선했다. 올해 세 번째 상대할 때 피안타율 0.246으로 첫 상대 0.211, 두 번째 0.203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6회 피안타율도 작년 0.309에서 올해 0.173으로 크게 좋아졌다.
네일은 투심, 스위퍼, 커터 등을 효과적으로 믹스하면서 긴 이닝을 막아내고 있다. 헛스윙 삼진만 노리지 않고 빗맞은 타구를 유도해 빠르게 아웃카운트를 잡고 투구수를 줄인다. 다양한 구종을 골고루 던지면서 타자의 타이밍을 교란하는 능력도 일품이다.
선발투수의 투구이닝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최근 야구계 흐름이긴 하지만, 여전히 구단들은 외국인 투수에게 긴 이닝 소화 능력을 요구한다. 롯데 자이언츠가 10승 투수 터커 데이비슨을 퇴출한 것도 '5이닝' 밖에 못 던진다는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5회가 한계인 패트릭을 보면서 KT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외국인 선발투수가 긴 이닝을 버텨주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불펜에게 전가된다. 패트릭의 '5이닝 벽' 돌파가 KT의 남은 시즌 최대 숙제가 됐다. 네일이 그랬던 것처럼 패트릭도 선발 보직에 적응해 이닝이터로 변신할 수 있을까. 그 전까진 KT가 바라는 에이스의 모습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