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했지만 '무적 LG' 상대로 빛났다… ‘일당백’ 키움팬 응원 속, 내년 밝힌 희망의 추격전 [스춘 현장]
키움, 0-6에서 5-6까지 추격
[잠실=스포츠춘추]
"이대로 역전하면 히어로즈 팬이 될 것 같아요."
아쉽게도 역전은 불발됐다. 하지만 패배 속에서도 희망은 분명히 있었다. 리그 최강 LG 트윈스를 상대로 후반부에만 5점을 뽑아내며 끈질긴 저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9회말에는 리그 최고의 마무리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추격하는 투지를 불태웠다. 키움 히어로즈가 3년째 최하위에 머물고 있음에도 남은 18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키움은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원정 경기에서 5-6으로 아쉽게 패했다. 대부분의 팬들은 경기 전부터 키움의 패배를 예상했다. LG 선발은 올 시즌 3경기 등판해 18이닝 1실점이라는 압도적 성적을 자랑하는 ‘승률 100% 투수’ 앤더스 톨허스트였고, 키움은 프로 데뷔 후 첫 선발 등판을 맞은 신인 좌투수 박정훈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경기는 초반부터 기울었다. 박정훈이 3회까지 4실점을 기록하며 내려갔고, 이어 등판한 프로 3년차 박윤성이 1이닝 2실점으로 0-6까지 점수가 벌어졌다.
그러나 키움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5회부터 분위기를 뒤집은 건 11일 전 KIA전에서 단 한 명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한 채 6실점했던 김선기였다. 그는 이날 3이닝 무실점으로 완전히 달라진 투구를 선보이며 반전의 불씨를 지폈다.
김선기가 버티는 사이, 키움은 7회 상대 야수진의 실책을 틈타 1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어준서가 병살타로 물러났지만, 그 사이 3루주자 주성원이 홈을 밟아 첫 득점을 신고했다.
8회에는 대거 3득점이 터졌다. 1사 1루에서 임지열이 우중간 적시 2루타로 송성문을 홈으로 불러들였고, 이어 주성원이 중전 안타로 2타점을 보태며 4-6까지 따라붙었다. 상대 마무리 유영찬까지 마운드로 불러내게 만든 추격전이었다.
기세가 오른 키움은 9회에도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선두타자 어준서가 아웃됐지만, 전태현의 좌전 안타와 송성문의 2루타로 1사 1,3루 찬스를 만들었다. 이어 임지열이 유영찬의 실투를 받아쳐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5-6까지 격차를 좁혔다. 2사 3루에서 이주형이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며 극적인 기회가 이어졌으나, 마지막 타자 주성원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역전 드라마는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이날 3루 219블록 원정 응원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야구 입문자' 직장인 김경민(28)씨는 8회 무렵 "이대로 역전하면 키움팬이 될 것 같다. 어제는 송성문에 반했는데, 오늘은 원종현이 눈에 띈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비록 결과는 아쉬웠지만, 잠실을 찾은 이 한마디는 키움이 보여준 끈기와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날 2만 3750석 매진 관중 대부분은 홈팀 LG를 응원했지만, 3루 원정석을 지킨 소수의 키움팬들은 ‘일당백’ 정신으로 끝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핑크빛 응원봉을 흔들며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버건디 소총 부대의 열정은 단순한 패배 이상의 가치를 남겼다.
3년 연속 최하위로 가을야구 문턱을 밟아보지 못하는 현실은 냉정하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드러난 신예들의 성장과 끈질긴 추격은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전력 열세에도 끝까지 함께한 키움팬과 최선을 다해 경기한 선수단에게 리그 1위 '무적' LG를 상대로 이날의 패배는 아쉬움이었지만, 동시에 내일을 밝히는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