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思考)로 높인 속도... 키움 윤석원이 4년 만에 터뜨린 '성장곡선' [스춘 인터뷰]
윤석원, 올 시즌 구속 5km 급상승
[잠실=스포츠춘추]
‘메타인지’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인식하고 이를 스스로 보완해나가는 사고 능력이다. 학습자의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개념으로 꼽히지만, 이는 비단 공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나 KBO리그 정상급 선수들 역시 공통적으로 이 '생각의 힘'을 갖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의 좌투수 윤석원(22)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메타인지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한계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방법을 고민한 끝에, 그것을 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입단 4년 만에 꽃을 피웠다. 윤석원은 올 시즌 후반기(7월 17일 이후) 등판한 18경기 중 13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키움 불펜의 '필승조'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단순히 구속이 오른 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윤석원의 성장은 ‘어떻게 던질까’보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서 비롯됐다.
그의 체계적인 점검은 2025시즌을 앞둔 비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근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돌아본 윤석원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체중을 늘리고,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했다. 그 결과 체중은 82kg에서 90kg까지 증가했고, 근육량도 3kg가량 늘어났다. 자연스레 공의 힘도 달라졌다. 윤석원은 "구속이 꾸준히 상승하다가 올해 크게 상승(5km/h)했다"며 “경기 중에도 그 차이가 체감된다”고 말했다. 말투에는 자신감이 뚝뚝 묻어났다.
윤석원은 몸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훈련과 경기 루틴에도 깊은 사고를 녹여냈다. 키움 코칭스태프는 골반 회전과 지면 반발력을 강조하는데, 윤석원은 이를 충실히 따라 아침마다 정해진 루틴을 반복했다. 그는 “캐치볼 전 루틴을 모두 지키면 공을 던질 때 몸의 감각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기술적인 성장 역시 철저한 자기 분석에서 출발했다. 그는 2년 전부터 두 가지 슬라이더를 연마해왔다. 하나는 위닝샷으로 활용 가능한 강한 슬라이더, 다른 하나는 불리한 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한 유연한 슬라이더다. 윤석원은 이 두 가지 구종을 실전에서 지속적으로 시도했고, 지금은 경기 중 자연스럽게 꺼내 쓸 수 있는 주무기로 자리를 잡았다.
올 시즌 확실한 필승조로 성장한 배경에는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 그는 “코치님들의 조언을 듣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연습에 적용해본다”고 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캐치볼을 반복하며 자신에게 맞는 투구 감각을 찾으려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이승호 키움 투수코치도 “윤석원은 알려주기만 하면 바로 터득하는 선수”라며 그의 빠른 이해력과 응용 능력을 칭찬했다.
자신의 투구를 점검하는 눈은 과거 롤모델을 분석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어릴 적부터 한국 최고의 좌투수 중 한명인 SSG 랜더스 김광현을 우상으로 삼았고, 그의 팔 각도와 와이드한 폼을 수없이 돌려보며 연구했다. 윤석원은 “김광현 선배의 투구 폼을 따라 해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윤석원의 투구에는 ‘습관화된 강함’이 스며 있다. 퓨처스(2군) 시절부터 노병오 키움 코치는 “캐치볼을 몇 구만 던지더라도 반드시 세게 던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연습이 된다”고 강조해왔다. 윤석원은 이 지침을 훈련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세게 던지는 습관을 몸에 익히면서 공의 회전수와 구속 모두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포심 패스트볼 회전수는 2330rpm으로, KBO리그 정상급 투수들의 평균치(2400rpm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훈련량은 손끝에서도 드러난다. 물집이 자주 생기고, 굳은살이 생겼다 벗겨지기를 반복했다. 하얗게 주름이 잡힌 왼손은 그의 훈련량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윤석원은 현재 군 복무를 앞두고 있다. 최근 상무 야구단에 합격했지만, 아직 입대 여부는 확정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상황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어 “만약 입대하게 된다면, 제대 후에는 팀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키움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다짐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부족한 점을 분석한 뒤 구체적인 루틴과 훈련으로 보완해가는 투수 윤석원은 단순히 ‘공을 빠르게 던지는 선수’가 아니라, 생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선수다. 그리고 그 ‘생각의 힘’은 구속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