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감독 전락한 에릭 텐 하흐, 레버쿠젠에서 3경기 만에 전격 경질..."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결정" [스춘 해축]
분데스리가 최단 기간 해임 기록, 텐 하흐보다 더 큰 문제는 구단의 조급증
[스포츠춘추]
'허니문 기간'은 없었다. 새 감독에게 몇 달은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는 게 상식일진대, 바이어 레버쿠젠은 그 상식을 산산조각 냈다. 에릭 텐 하흐를 단 3경기 만에 해임하며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단 기록을 세웠다. 축구사에 오래 남을 불명예다.
2년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감독을 내쫓는 구단이라니. 레버쿠젠의 조급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텐 하흐가 맡은 건 DFB 포칼 1경기와 분데스리가 2경기가 전부다. 4부 리그 팀을 상대로 한 컵 경기는 4대 0 승리였고, 리그에서는 1패 1무를 기록했다. 이 정도 성적으로 감독을 자르는 구단이 과연 정상인가.
문제는 텐 하흐가 아니라 레버쿠젠이었다. 샤비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뒤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다. 플로리안 비르츠가 리버풀로, 제레미 프림퐁도 같은 팀으로, 주장 그라니트 자카는 선덜랜드로 향했다. 조나탄 타, 아민 아들리, 루카스 흐라데츠키까지 떠나며 팀의 뼈대가 완전히 해체됐다. 이런 상황에서 새 감독에게 즉시 결과를 요구한다는 건 무리수였다.
애초에 레버쿠젠은 왜 텐 하흐를 선택했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해임된 감독의 이력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그런 감독을 영입해놓고, 3경기 만에 "이 구성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몬 롤페스 스포츠 디렉터의 해명이 가관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무도 이런 조치를 취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면서 "지난 몇 주간 이런 구성으로는 새롭고 성공적인 팀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했다. 감독이 부임한 지 채 한 달도 안 됐는데 무슨 판단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선수들의 반응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주장 로베르트 안드리히는 브레멘전 후 "모든 선수가 각자 뛰었고,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자신만 생각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새로 온 감독에게 적응할 생각은 안 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반기를 드는 선수들이나, 그런 선수들 편을 들어주는 구단이나 똑같이 문제다.
레버쿠젠은 올여름 1억7000만 유로(약 2750억원)를 들여 새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말릭 틸만, 자렐 콴사, 엘리세 벤 세기르 등 역대 최고액 영입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정작 새로 온 선수들과 새로 온 감독이 호흡을 맞출 시간은 주지 않았다. 이게 합리적인 구단 운영인가.
31일 브레멘전이 결정타였다. 3대 1로 앞서가던 레버쿠젠은 니클라스 스타크의 퇴장으로 10명이 된 브레멘에게 연속 2골을 허용하며 3대 3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리가 확실했던 경기를 허무하게 흘려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감독을 자르는 건 과도하다.
요즘 축구의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다. 인내심을 잃은 구단, 남 탓만 하는 선수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희생양이 된 감독. 물론 텐 하흐의 능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경기로 그걸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레버쿠젠의 사고방식이 더 큰 문제다. 애초에 3경기 만에 자를 감독을 데려오기로 결정한 사람은 왜 책임을 안 지는지 의문이다.
페르난도 카로 CEO는 "시즌 초반 이런 결별은 고통스럽지만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들의 조급함을 '과감한 결단'으로 포장하는 태도다. 3경기 만에 감독을 자르는 구단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지도자가 과연 있을까. 레버쿠젠은 당분간 코칭스태프가 팀을 지휘한다고 발표했지만, 제대로 된 감독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