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조던' 탄생 이끈 주역, 레전드 농구 코치 조지 래블링 별세…조던 "모든 면에서 멘토였던 분" [스춘 NBA]
마이클 조던 "그가 없었다면 에어 조던도 없었을 것"…나이키 영입 결정적 역할
[스포츠춘추]
'에어 조던' 탄생에 기여한 농구계의 거장 조지 래블링이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3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래블링은 용기와 품격으로 암과 싸워왔다"며 "가족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평안히 숨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래블링은 단순한 농구 코치를 넘어 스포츠 산업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계약을 맺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는 '에어 조던' 브랜드 탄생으로 이어져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을 뒤바꿔 놓았다. 조던은 추도문에서 "40년 넘게 지혜와 격려, 우정으로 내 삶을 축복해 준 분"이라며 "모든 면에서 멘토였고, 그의 지도에 대한 깊은 감사를 평생 간직하겠다"고 밝혔다.
조던은 이어 "나는 조지 때문에 나이키와 계약했고, 그가 없었다면 에어 조던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래블링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당시 미국 대표팀 코치진으로 활동하면서 조던을 나이키의 소니 바카로에게 소개한 것이 역사적 계약의 출발점이었다.
2023년 개봉한 영화 '에어(Air)'에서는 말론 웨이언스가 래블링을 연기했고, 나이키가 조던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조명받았다. 이 계약은 조던 개인에게는 수백만 달러(수십억원)의 수익을, 만년 2위였던 브랜드 나이키에게는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을 가져다줬다.
래블링은 코치 경력도 화려했다. 1972년부터 1994년까지 워싱턴 주립대, 아이오와대, USC에서 총 335승 293패의 성적을 거뒀다. 세 팀 모두에서 첫 시즌은 부진했지만 이후 여러 차례 NCAA 토너먼트에 진출시키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1984년과 1988년 미국 올림픽 대표팀 코치진에 합류했고,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래블링은 1937년 워싱턴 D.C.의 흑인 전용 병원에서 태어나 1969년 메릴랜드대 보조코치로 ACC 최초의 흑인 코치가 됐다. 1972년에는 워싱턴 주립대 감독으로 부임하며 팩-12 최초의 흑인 감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2013년 전미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에, 2015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됐다.
코치 은퇴 후인 1994년 나이키로 자리를 옮긴 래블링은 63세라는 나이에 국제농구 담당 임원으로 새 출발을 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경제학 학위 외에는 정식 경영 경험이 없는 전직 농구 코치이자 흑인이었지만, 포춘 500대 기업의 주요 부서를 이끌게 됐다"고 회고했다. 60세부터 80세까지를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라고 표현할 만큼 나이키에서의 20년은 그에게 제2의 전성기였다.
래블링의 소장품 중 가장 값진 것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 원고였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 당시 26세였던 래블링은 우연히 경비 자원봉사를 하게 됐고, 링컨 기념관 계단에서 킹 목사가 역사적 연설을 마친 후 "목사님, 그 연설문을 제게 주시겠습니까?"라고 즉흥적으로 요청했다. 킹 목사는 흔쾌히 원고를 건네줬고, 래블링은 2021년 모교인 빌라노바대에 이를 기증했다.
별세한 거장을 향한 농구계 인사들의 추도가 이어지고 있다. ESPN 해설자 제이 빌라스는 "진정한 농구의 수호자이자 아이콘"이라고 평가했고, 전 빌라노바대 감독 제이 라이트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자 영감을 주는 멘토, 가장 충성스러운 동문이자 사려 깊고 사랑스러운 친구"라고 표현했다.
NBA 커미셔너 애덤 실버는 성명에서 "농구를 국제적 스포츠로 만드는 데 기여한 개척자"라며 "나이키에서의 오랜 재직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여러 세대의 선수와 코치들을 멘토링했다"고 평가했다.
래블링은 생전 은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며 나이와 상관없이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삶은 두 날짜 사이의 대시(-)로 구성되며, 그 대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의 88년 인생은 그 '대시'를 가장 빛나게 채운 모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