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해보고 싶어서 데려왔는데..." 우승 청부사에서 패배의 아이콘 된 벨라스케즈, 그런데 대안이 없다 [스춘 현장]

5경기 연속 부진 속 1승 4패..."첫 단추 잘못 끼워진 것 같아" 김태형 감독의 진단

2025-09-06     배지헌 기자
괜히 바꿨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하는 빈스 벨라스케즈(사진=롯데)

 

[스포츠춘추=인천]

"선발로 또 써야죠. 일단 써야 합니다."

팀을 가을야구 더 높은 곳으로 이끌 승리의 아이콘을 기대했지만 패배의 상징이 된 외국인 투수 빈스 벨라스케즈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의 고민이 깊다. 벨라스케즈는 5일 열린 인천 SSG 랜더스전에 시즌 5번째로 선발등판했지만 4.1이닝 6실점으로 또 무너졌다.

8월 13일 KBO리그 데뷔전에서 3이닝 5실점으로 무너진 뒤 19일 LG전 5이닝 3실점 패전, 24일 NC전에서 6이닝 4실점, 29일 두산전 5이닝 5실점에 이어 SSG전에서도 대량실점하면서 5경기 연속 외국인투수로는 기대 이하의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유일하게 승리한 NC전만 17점을 뽑아낸 타선의 지원 덕분에 승리했을 뿐, 그 외 경기는 전부 패전투수가 되면서 1승 4패에 그치고 있다. 퇴출 전까지 22경기에서 10승 5패, 등판한 경기 팀 승패는 15승 6패로 승률이 71.4%에 달했던 전임자 터커 데이비슨을 내쫓은 게 후회될 정도로 실망스러운 성적이다.

롯데가 10승 투수 데이비슨을 퇴출하고 벨라스케즈를 데려오는 결정을 내린 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승부수였다. 데이비슨의 성적이 결코 나쁜 건 아니었지만, 외국인 투수에게 기대하는 압도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게 롯데의 판단이었다. 우승에 도전하려면 코디 폰세(한화)나 제임스 네일(KIA)처럼 강력한 에이스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데이비슨을 교체하는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38승 투수 경력을 기대하고 데려온 벨라스케즈는 막상 KBO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전혀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평균구속 148.9km/h의 포심 패스트볼은 150km대 외국인 투수가 즐비한 현재 리그에서 평범한 수준이다.

메이저리그 시절 주무기였던 슬라이더도 한국에 온 뒤로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다. 포심 피안타율 0.382에 슬라이더 피안타율 0.321로 주무기 두 구종이 통타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5일 SSG전에서는 평소보다 슬라이더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지만 힘있는 타자들을 상대로 빠른볼 승부를 하다가 홈런 3방을 허용하면서 무너졌다.

6일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김태형 감독은 벨라스케즈의 부진 원인을 분석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한두 경기가 잘 안 되면서 말린 것 같다"는 게 김 감독의 진단이다. 기본적으로 가진 기량 자체는 나쁘지 않고, 공도 좋은 공을 갖고 있지만 데뷔 초반 좋지 않은 결과가 이어지면서 자기 공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 같다는 분석이다. 김 감독은 "첫 단추를 잘 끼워서 갔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 단추가 잘 안 끼워지면서 계속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날 경기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김 감독은 "어제는 초반에 슬라이더가 몇 번처럼 괜찮았다. 그전처럼 빠지지 않고 딱 꺾이면서 들어가더라"면서 "그런데 왜 빠른볼을 들이밀다가 맞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자기가 포수 사인에 고개를 흔들고 던지더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김 감독은 "더 잘해보고 싶어서 외국인 투수를 교체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주사위는 던져졌다. 롯데로서는 좋으나 싫으나 벨라스케즈가 KBO리그에 적응하고 자신감을 찾아서 기대했던 활약을 해주기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시즌 막바지나 가을야구에 올라가서라도 벨라스케즈가 반등 모멘텀을 찾아서 에이스 역할을 해준다면 현재 비난받고 있지만 성공한 영입으로 평가가 바뀔 수도 있다. 물론 현재까지 부진한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KBO리그 역사에 남을 영입 실패 사례로 남을 수도 있다.

롯데는 벨라스케즈를 앞으로도 당분간 선발로 기용할 예정이다. 김 감독은 "선발로 쓰려고 데려왔고 계속 선발로 가야 한다"면서 "일단 써야 한다"고 말했다. 벨라스케즈를 외국인 투수 로테이션에서 제외하기엔 국내 선발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한 롯데의 현실도 있다. 이날 선발등판하는 이민석만 해도 후반기 7경기에서 평균자책 6.95로 최근 부진하다. 김 감독은 "이민석도 지금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멘탈 쪽으로 조금 흔들려 있다"고 했다.

그나마 선발진에 희소식은 나균안의 다음 등판일이 정해졌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 등판인 지난달 31일 경기에서 강습 타구에 맞고 3이닝 만에 내려갔던 나균안은 11일 열리는 광주 KIA전에 등판할 예정이다. 롯데는 주초 한화와 2연전에서 박세웅-알렉 감보아로 선발진을 운영한 뒤 KIA전에서 나균안을 기용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롯데는 박찬형(지명타자)-고승민(우익수)-윤동희(중견수)-빅터 레이예스(좌익수)-손호영(2루수)-나승엽(1루수)-김민성(3루수)-이호준(유격수)-손성빈(포수) 순으로 라인업을 꾸렸다. 전날 경기에서 초반 타구에 맞고 고통을 호소한 뒤 중반 교체됐던 포수 유강남 대신 손성빈이 마스크를 쓴다.

유강남은 최근 쇄골뼈, 무릎, 팔 등에 계속 파울 타구를 맞으면서 수난을 겪고 있다. 김 감독은 "유강남이 오늘 조금 안 좋다. 팔을 드는 것도 힘든 것 같더라. 오늘은 대타로도 어려울 것 같다"면서 "요즘 공에 너무 자주 맞는다. 쉬라고 해도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하고 계속 경기를 나가려고 한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