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치 운을 전반기에 다 썼나...'전반기 팀타율 1위→후반기 꼴찌' 롯데, 벨라스케즈만 문제가 아니야 [스춘 FOCUS]

전반기 최소 팀홈런에도 높은 타율과 집중력으로 많은 득점...기관총 타선 화력 어디로 사라졌나

2025-09-09     배지헌 기자
2점 홈런을 터뜨린 빅터 레이예스(사진=롯데)

 

[스포츠춘추]

최근 롯데 순위 하락을 두고 주로 거론되는 희생양은 새 외국인 투수 빈스 벨라스케즈다. 10승 투수 터커 데이비슨을 내보내고 "더 강력한 투수가 필요하다"며 벨라스케즈를 영입했지만, 기대했던 폰세나 네일급 성적은커녕 5경기 1승 4패 평균자책 8.87에 그치고 있으니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다. 비록 '5무원'일지언정, 등판한 22경기에서 팀에 15승을 선사한 데이비슨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성적이다.

공교롭게도 데이비슨 퇴출 이후 롯데가 12연패를 기록하는 등 깊은 부진에 빠지면서 벨라스케즈를 향한 원망도 더욱 깊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7월 2일 기준 1위팀을 2경기 차까지 추격하던 롯데가 불과 두 달 만에 6위로 추락한 책임을 온전히 벨라스케즈 한 선수에게 돌리긴 어렵다. 그러기엔 롯데가 겪고 있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반기에 뜨거웠던 롯데 타선이 차갑게 식어버린 데 있다. 롯데 타선은 전반기에 팀타율 0.280으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팀 홈런은 48개로 삼성(93홈런)의 절반 수준인 최하위였지만, 대신 많은 2루타(160개)와 3루타(16개), 높은 출루율(0.353, 2위)과 팀 타율보다 높은 득점권 타율(0.283, 1위)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장타보다는 정확한 컨택으로 많은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 게 롯데의 타격 스타일이었다. 롯데 타자들은 삼진을 거의 당하지 않고 어떻게든 배트에 맞히면서 많은 안타와 2루타, 볼넷을 얻어내는 효율적인 공격을 펼쳤다. 마치 박정태-전준호-김민호-이종운이 함께 활약했던 1990년대초 롯데 야구를 연상케 하는 공격 스타일로 경기당 4.87득점이라는 높은 득점력을 자랑했다.

전반기 롯데 라인업에선 빅터 레이예스(0.340에 10홈런 69타점)를 비롯해 박찬형(0.395), 황성빈(0.314에 12도루), 한태양(0.310), 전민재(0.304에 3홈런 25타점) 등이 좋은 타격감을 자랑했다. 장두성(0.286에 10도루)도 의외의 활약을 펼쳤고, 윤동희(0.299에 4홈런 29타점), 고승민(0.299에 2홈런 30타점), 전준우(0.294에 7홈런 56타점) 등 기존 주축 선수들도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전민재(사진=롯데)

그러나 후반기 들어 롯데 타선은 전반기와는 달리 극심한 침체에 빠진 모습이다. 특히 8월 들어 부진이 본격화됐다. 8월 첫날 경기 무득점 패배를 시작으로 8월의 첫 10경기 중 5경기에서 무득점 패배를 당했다. 8일 SSG전부터 13일 한화전까지는 4경기에서 단 1득점에 그칠 정도로 타격 부진이 심각했다.

8월 7일부터 23일까지 12연패 기간 중 2득점 이하에 그친 경기가 7경기였다. 8월 한 달로 범위를 넓히면 11경기에서 2득점 이하에 그치는 타격 침체를 보였다.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하니 선발투수들이 잘 던져도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한두 점 차 접전이 잦다 보니 불펜투수들의 등판이 늘어나고 과부하가 더 심해지는 악순환도 반복됐다. 

후반기 롯데의 팀타율은 0.242로 전체 꼴찌다. 전반기 1위팀이 후반기에는 꼴찌에 그치고 있다. 특히 전반기에 가장 적었던 삼진이 크게 증가한 점이 눈에 띈다. 8월 1일 이후로 살펴보면 타석당 삼진율이 21.2%로 KIA(21.7%)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스트라이크 중 파울 비율이 30.0%로 최다였고, 헛스윙 비율이 15.9%로 최다 3위를 기록했다.

공을 때렸을 때 인플레이로 이어지지 않고 파울이나 헛스윙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좋은 타구는 줄고 삼진이 늘었다. 전반기 보여줬던 롯데 타선의 장점이 후반기 들어서는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반기 활약한 타자 중에 후반기에도 꾸준한 선수는 레이예스(0.323)와 박찬형(0.322) 정도뿐이다. 한태양(0.246), 윤동희(0.235), 장두성(0.203), 황성빈(0.189), 전민재(0.205) 등 젊은 선수들은 체력적 한계 혹은 경험의 한계가 후반기 들어 나타나면서 전반기 좋았던 기록을 갉아먹고 있다. 여기에 팀의 정신적 지주 전준우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도  전체 야수진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기대 이하의 외국인 투수 벨라스케즈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벨라스케즈가 모든 경기에 등판하는 게 아닌 이상, 롯데 부진 장기화 원인은 다른 데서도 찾아야 한다. 그중 큰 몫을 차지하는 건 가라앉은 타선이다. 롯데 기관총 타선이 전반기만큼의 날카로움을 다시 찾아야 남은 시즌 가을야구 희망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