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국대에는 왜 리버풀 선수가 한 명도 없을까..."난 잉글랜드 사람 아니다" 뿌리깊은 정체성 갈등 [스춘 해축]

4년 만에 전원 제외된 프리미어리그 강팀, 80년대부터 시작된 뿌리깊은 갈등

2025-09-10     배지헌 기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스포츠춘추]

토마스 투헬 잉글랜드 감독이 발표한 이번 월드컵 예선 명단에 리버풀 선수가 한 명도 선발되지 않았다. 현재 시즌 전승 행진 중인 프리미어리그 강팀에서 단 한 명도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하는 보기드문 상황이 벌어졌다.

더 기이한 건 리버풀 팬들의 반응이다. 항의는커녕 '차라리 잘됐다' '오히려 좋아'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일부는 "잉글랜드가 져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한 명의 선수가 선발되지 않아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잉글랜드 북서부의 두 거대 클럽이 나란히 국가대표에서 배제됐지만, 리버풀의 반응은 유독 튀는 면이 있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의 9일(한국시간) 팟캐스트 방송에 따르면, 리버풀 시민들 사이에는 '스카우스 낫 잉글리시(우리는 스카우스이지 잉글랜드인이 아니다)'라는 정서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스카우스는 리버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자신들을 잉글랜드와 별개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여긴다.

이런 현상의 뿌리는 복잡하고 깊다. 지리적으로 리버풀은 잉글랜드에서 아일랜드에 가장 가까운 도시다. 19세기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때 아일랜드 난민들이 대거 정착했고, 대형 항구도시였던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영국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됐다.

결정적 변화는 1979년부터 1983년 사이에 일어났다. 마거릿 대처 총리 집권 시절, 리버풀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실업률이 치솟았고,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정부는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했다. 동시에 극좌 정치 집단이 세력을 확장했고, 마약 문제도 심각해졌다.

여기에 두 차례 축구 참사가 결정타를 날렸다. 1985년 헤이젤 참사에서는 리버풀 팬들이 연루된 사고로 39명이 숨졌고, 1989년 힐즈버러 참사에서는 경찰의 안전 관리 실패로 96명이 압사했다. 특히 힐즈버러 참사에서 정부와 언론은 사실을 왜곡해 리버풀 팬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술 취한 팬들이 난동을 부렸다"는 거짓 보도가 20년 넘게 이어졌고, 2012년에야 진실이 밝혀지면서 정부가 공식 사과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리버풀 시민들에게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는 깊은 배신감을 남겼다. 디 애슬레틱의 사이먼 휴즈는 "1990년 월드컵 때만 해도 리버풀 펍에서 잉글랜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물론 잉글랜드 경기를 보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과거 같은 문화적 이벤트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리버풀에서는 잉글랜드 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야유가 쏟아진다. 2016년 리그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할 때도, 최근 커뮤니티 실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 리버풀의 정체성 표현의 한 방식이 됐다.

정상에 오른 리버풀(사진=리버풀 FC SNS)

팟캐스트에서 토니 에반스 기자는 "나는 잉글랜드인이라는 감각 없이 자랐다"면서 "1980년대 우리 억양은 범죄시됐고, 리버풀은 불량 도시로 취급받았다. 다른 곳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부정적 인상을 갖는다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앤디 존스 기자 역시 "어릴 때는 단순히 리버풀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서 다쳐 돌아오는 게 싫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정치적, 문화적 이해가 깊어졌다"면서 "잉글랜드가 질 때 오히려 재미있다. 리버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속상해하는 걸 보는 게 즐겁다"고 털어놓았다.

휴즈 기자는 특히 지난 10-15년간 이런 정서가 더욱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2010년대 보수당이 재집권하면서 비슷한 사회 문제들이 재현됐고, 브렉시트와 힐즈버러 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아 이런 목소리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휴즈 기자는 "리버풀을 좌파 사상의 보루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나는 '반대 세력의 도시'로 본다"고 분석했다. 최근 리버풀 일부 지역에서 잉글랜드 국기가 늘어나는 등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에반스 기자도 "리버풀에 분명 잉글랜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투헬의 명단에서 리버풀 선수가 전원 제외된 것은 단순한 축구적 판단을 넘어서는 문제일 수 있다. 40년간 쌓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스포츠 영역에도 미묘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잉글랜드 축구사에서 가장 성공한 클럽 중 하나와 국가대표팀 사이의 이상한 거리감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