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프링캠프 중에 쇠사슬 연행?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 KBO리그 구단들도 '현실적 공포' [스춘 이슈분석]

조지아주 구금 사태 파장...구단들 "미국 캠프도 예외 아닐 수 있어" 우려 시작

2025-09-11     배지헌 기자
SSG 랜더스,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공식 훈련 시작(사진=SSG)

 

[스포츠춘추]

한국 프로야구와 미국 야구가 이어온 끈끈한 인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300여 명 무더기 구금 사태가 KBO리그 구단들에게도 현실적인 공포감을 안겨주고 있다. 수십 년간 관례처럼 여겨졌던 ESTA 비자를 통한 미국 스프링캠프에 대한 법적 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매년 겨울이면 한국 프로야구 구단들은 너나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SSG 랜더스는 미국 플로리다의 재키 로빈슨 트레이닝 콤플렉스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것이 루틴이고, NC 다이노스는 창단 이후 코로나19 기간만 제외하고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의 레이드파크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차려왔다. LG 트윈스도 주로 애리조나에 1차 캠프를 차렸고, 올해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1차 캠프를 진행했다.

KT 위즈는 코로나19 이전까지 애리조나 투산을 애용했고, 키움 히어로즈도 서프라이즈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삼성 라이온즈는 올시즌을 앞두고 미국령 괌에서 1차 캠프를 치렀으며, 내년 캠프지도 괌이 유력하다.

미국 캠프는 한국과의 시차가 10시간 이상에 달하고 비행시간도 12시간 이상이라 이동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지만, 좋은 구장 시설과 최상의 날씨, 현지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교류 기회 등이 있어서 선호하는 캠프지였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구단 직원들과 선수단이 ESTA 비자로 입국할 때 심사관에게 "한국 프로팀이다" "스프링캠프하러 왔다"고 말하면 오히려 환영받는 분위기였다. 현지 지역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명의 선수단과 직원, 취재진이 몰려오면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팀의 미국 방문은 그야말로 윈-윈이었다.

세계적인 이상기후는 미국 애리조나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은 비 내린 애리조나 야구장(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그런데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판이 뒤바뀌었다.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손목에 수갑을, 발목에 쇠사슬을 찬 채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구금되는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한 야구 관계자는 "미국 상황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한국 노동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물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보지만, 지금의 미국이라면 '절대 불가능'이란 말은 못 할 것 같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기존 관행에 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조지아주 노동자들의 경우도 엄밀히 따지면 ESTA 비자로 미국에서 일한 것이 법 위반이었다. 다만 그간 관행적으로 묵인되어 왔을 뿐이다. ESTA 비자로 미국을 찾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 법적 해석에 따라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이민법은 급여의 출처나 미국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과는 별개로 활동 성격 자체를 문제 삼는다. 미국 내에서 벌이는 전문적·기술적 활동은 한국에서 급여를 받더라도 미국 내 '노동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연습경기는 프로 선수로서의 '업무 수행'이고, ESTA는 애초 'No work whatsoever(일체의 노동 금지)'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구단들이 ESTA 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프로 스포츠 활동에 적합한 P-1 비자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운동선수를 위한 비자'로 분류되지만, 발급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미국 회사가 스폰서가 되어 신청해줘야 한다는 조건이 까다롭다. 반면 ESTA는 90일 이내 단기 방문에 대해 비자 신청을 면제해주는 제도라 구단들이 선호해온 면이 있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의 한 구단 팀장은 "법대로만 따지면 ESTA 비자로 선수나 직원이 미국에서 캠프를 하는 것도 문제를 삼으려면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단순 훈련이 아니라 현지 팀과 연습경기까지 한다면 실정법 위반 소지는 분명히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단 팀장 출신 야구인도 "관광비자로 가서 업무행위를 했던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미국 캠프를 자주 치르는 모 구단 단장도 "그런 이슈가 충분히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뉴스를 보고 심각성을 느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지는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면밀히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 캠프가 단골인 수도권 팀 관계자는 "이민법 이슈는 아직 캠프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성급하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라면서도 "미국 현지 상황이 수시로 바뀌고 변수가 많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입국 심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변화된 미국 내 분위기를 고려해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두는 편이 현명하다.

미국 사정에 밝은 야구 관계자는 "조지아주 사태는 'MAGA' 지지자들에게 성과를 보여주려는 정치적 쇼의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상당 기간 준비해서 치밀하게 계획한 일종의 '보여주기'라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동기와 정부 정책 방향이 맞물린 사건"이라면서도 "프로 구단이나 야구 관계자들의 미국 방문은 그런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다만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한 번쯤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키움은 애리조나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진행하고 있다(사진=키움)

사실 구단들의 미국 방문은 이미 줄어드는 추세였다. 미국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캠프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많은 구단이 일본과 호주, 타이완(대만)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한 구단 단장은 "요즘에는 미국가는 걸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국내 팀들의 미국 방문이 줄면서 연습경기 상대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에는 마이너리그 팀과도 경기했는데 최근 들어 마이너리그 캠프 일정이 늦춰지고 우리는 개막이 앞당겨지면서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여기에 비용까지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민 단속 이슈까지 겹치면서 미국행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다행히 정부 차원의 해결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은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하고 있다"며 비자 제도 개선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똑똑하고 훌륭한 기술 인력을 합법적으로 미국에 데려와 세계 수준의 제품을 만들도록 장려할 것"이라며 비자 제도 개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H-1B 비자의 한국인 할당 확보나 한국인 대상 별도 전문직 취업비자(E-4) 할당 신설 등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한 KBO 관계자는 "미국을 방문할 때 대사관의 사전 협조를 받는 게 안전할 수 있다"면서도 "정부 차원의 비자 제도 개선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과도한 걱정을 벌써부터 할 필요는 없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나쁠 건 없다"고 말했다. 관례가 더 이상 관례로만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점에서 프로야구계도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