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대량해고한 날 카와이는 24억원 꿀꺽, 일 안 하고도 700억원 지급...LA 클리퍼스 뒷돈 파문 점입가경 [스춘 NBA]

NBA 샐러리캡 우회 의혹 확산, 애덤 실버 커미셔너 "강력한 권한 있다" 경고

2025-09-13     배지헌 기자
카와이 레너드(사진=NBA 방송화면)

 

[스포츠춘추]

미 프로농구 NBA에는 불문율이 있다. 부자 구단주라고 해서 돈으로 스타들을 마음대로 사올 수는 없다. 샐러리캡이라는 엄격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팀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공정한 리그가 된다는 철학이다. 그런데 LA 클리퍼스가 이 룰을 교묘하게 우회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것도 세계에서 10번째로 부유한 구단주 스티브 발머가 연루됐다는 의혹이다.

지난 주 '파블로 토레 파인즈 아웃' 팟캐스트가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LA 클리퍼스의 스타 플레이어 카와이 레너드가 스폰서 회사 애스퍼레이션으로부터 2800만 달러(약 392억원)를 받고도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에는 발머가 5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클리퍼스와는 3억 달러 규모의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완벽했다.

애스퍼레이션이 한 일들을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2022년 12월 15일, 이 회사는 직원 20%를 해고했다. 돈이 떨어져서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레너드에게는 175만 달러(약 24억원)를 지급했다. 돈이 없어서 사람을 자르면서도 레너드에게는 돈을 줬다는 얘기다. 

더욱 가관인 건 이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 단독 보도에 따르면, 발머의 대학 동창이자 클리퍼스 부구단주인 데니스 웡이 정확히 9일 전인 12월 6일 애스퍼레이션에 199만 달러를 투자했다. 웡의 돈이 들어오자마자 레너드에게 나갔다는 뜻이다. 이런 타이밍을 두고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 의심스러운 일은 2023년 3월에 벌어졌다. 애스퍼레이션이 주당 200만 달러씩 현금을 태우며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발머가 마법처럼 나타나 1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했다. 회사는 7500만 달러 모금을 목표로 했지만 900만 달러나 모자란 상황이었다. 발머의 투자금이 없었다면 애스퍼레이션은 그 자리에서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리고 레너드는 남은 계약금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의 냄새가 난다. 레너드에게 돈을 줘야 하는 시점마다 정확히 자금이 투입됐다. 마치 누군가 애스퍼레이션의 장부를 들여다보며 레너드의 계약금을 챙겨주고 있는 것 같았다.

레너드와 애스퍼레이션의 계약서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4년간 2800만 달러를 받는 대가로 레너드가 해야 할 일은 8시간짜리 촬영 1회, 4시간짜리 홍보행사 1회, 1시간짜리 봉사활동 2회, 타이 루 감독과의 대화 영상 주 1회 5분(부상으로 결장 중일 때만), SNS 좋아요나 리트윗 5회, 그리고 코트 밖 프로젝트 3개가 전부였다.

계산해보면 연간 약 30시간 일하고 700만 달러를 받는 셈이다. 시급으로 따지면 23만 달러, 우리 돈으로 3억 2000만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조건도 모자라서, 계약서에는 레너드가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일은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들어있었다. 사실상 '일 안 해도 되는' 면죄부를 준 셈이다.

실제로 레너드는 애스퍼레이션을 한 번도 공개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회사 임원들조차 이 계약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며 당황해했다고 전해진다. 한 전직 CEO는 "이 계약은 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계약은 강행됐다. 회사 창립자 조 샌버그가 자신의 지분 2000만 달러어치를 레너드에게 직접 줘가면서까지 말이다.

스티븐 발머 구단주(사진=NBA 중계화면 캡쳐)

이들이 한 일을 찬찬히 뜯어보면 우연이 아닌 정교한 설계의 흔적이 보인다. 레너드가 2019년 자유계약선수가 됐을 때부터 그의 에이전트 데니스 로버트슨은 각 팀에 "연간 최소 1000만 달러 상당의 스폰서십 수익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레너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조건"이라며 노쇼 계약을 대놓고 요구했다는 것이 토론토 스타의 보도로 드러났다.

당시에는 어느 팀도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클리퍼스 입단 2년 뒤, 갑자기 애스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나타나 이 모든 걸 해결해줬다. 클리퍼스 구단주가 투자한 회사가, 클리퍼스의 스폰서이기도 한 회사가, 클리퍼스 선수에게 노쇼 계약으로 수십억을 줬다. 이보다 더 완벽한 우회로가 있을까.

이 사건이 NBA에서 심각하게 여겨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NBA의 샐러리캡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리그 경쟁력의 근간이다. NFL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스포츠 리그가 된 이유는 엄격한 샐러리캡 덕분에 어느 팀이나 우승할 수 있는 전력평준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NBA도 이를 벤치마킹해 '하드캡'에 가까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클리퍼스와 카와이를 둘러싼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 모든 시스템이 무너진다. 발머처럼 자산 1530억 달러(약 214조원)를 가진 부자 구단주가 스폰서 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선수에게 돈을 건네면, 샐러리캡은 휴지조각이 된다. 다른 29개 팀과 팬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발머는 ESPN에 "그들이 나를 속였다. 정당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사기를 당했다"고 강변했다. 레너드를 회사에 소개해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문점들이 너무 많다. 대학 동창이 투자하고 9일 뒤 레너드가 돈을 받은 것도, 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발머가 구원투수로 나선 것도 모두 우연일까.

애초 이 사태에 미온적이었던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는 최근 이례적으로 강한 경고를 날렸다. "내 권한은 매우 광범위하다. 벌금, 드래프트픽 박탈, 출전정지 등 모든 범위의 처벌이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평소 외교적이고 원론적인 말만 하던 실버로서는 이례적인 강경 발언이었다. NBA는 독립 법무법인을 고용해 수사에 착수했다. 결과에 따라 클리퍼스에겐 드래프트픽 박탈, 거액의 벌금, 심지어 계약 무효까지 주어질 수 있다.

샌버그는 결국 2억 4800만 달러 투자자 사기 혐의로 기소됐고, 애스퍼레이션은 올해 3월 파산했다. 레너드는 700만 달러의 채권자로 등재됐다. 과연 발머의 주장처럼 단순한 사기 피해였을까,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샐러리캡 우회였을까. 진실을 감출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