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다저스 우승한 뒤 몇 주간 'We Are The Champions'만 들었다"...커쇼의 가을 트라우마 극복기 [스춘 MLB]

2013년부터 5차례 시즌 마지막 경기서 무너져... 2020년 월드시리즈로 가을 악몽 끝

2025-09-20     배지헌 기자
클레이튼 커쇼(사진=LA 다저스 SNS)

 

[스포츠춘추]

한때 야구팬 사이에선 '가을 커쇼'라는 말이 있었다. 정규시즌에선 무적인 에이스가 10월만 되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뜻이었다. 냉혹한 평가였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클레이튼 커쇼에게 10월은 잔혹한 달이었다.

19일(한국시간) 은퇴를 발표한 LA 다저스 레전드 커쇼. 사이영상 3회, MVP 1회의 화려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거리가 있었다. 바로 포스트시즌에서의 실패였다. 커쇼는 여러 차례 결정적인 순간에서 무너진 기록을 갖고 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이어진 악몽. 2013년, 2014년, 2016년, 2018년, 2019년. 매번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커쇼의 실투와 고개를 숙인 채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야구가 혼자 하는 종목도 아닐진대, 1988년 이후 한번도 우승 못한 다저스의 책임은 고스란히 커쇼의 몫이 됐다. 언론과 팬들은 혹독했다. '정규시즌 사기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가장 참혹했던 순간은 2017년 월드시리즈였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5차전에서 커쇼는 5.1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 수법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커쇼는 팀의 패배를 온전히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여야 했다.

"아직도 그때에 대한 PTSD가 있다"고 커쇼는 후에 털어놓았다. 2년 뒤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또다시 결정적 홈런을 맞고 무너졌을 때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숙인 채 다저스타디움의 황혼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 주변 동료들과 함께 흘린 눈물.

하지만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맥컬로 기자에 따르면 그들은 커쇼가 "20대에 던진 수많은 이닝"을 목격했다. 몸이 망가지기 전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도 봤다. 포스트시즌에서 단축 휴식으로 등판하고, 동료들보다 더 긴 이닝까지 던지는 모습도 지켜봤다.

맥컬로는 다저스 전 선수 알렉스 우드의 말을 인용해 "커쇼가 짊어진 부담은 다른 어떤 팀의 어떤 선수도 요구받지 않은 정도"라고 전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7년간 버텨온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레이튼 커쇼(사진=스포츠춘추 DB)

전환점은 2020년이었다. 코로나19로 단축된 시즌이었지만, 커쇼에게는 구원의 해가 됐다. 월드시리즈에서 2승을 올리며 다저스의 32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다. 경기 후 팀 동료들과 포옹하며 뛰어다니는 커쇼의 모습에서 얼마나 큰 짐을 내려놨는지 알 수 있었다.

우승 후 커쇼는 집에서 몇 주간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을 틀어댔다고 한다. 맥컬로에 따르면 "어깨 위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때야 깨달았다"고 커쇼는 고백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무게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후 커쇼는 달라졌다. 예전처럼 5일마다 찾아오는 스트레스에 짓눌리지 않았다. 동료들도 그의 변화를 느꼈다. 등판일에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24년 다저스가 다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커쇼는 발가락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커쇼의 포스트시즌 기록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위대함을 가리지는 못한다. 정규시즌 평균자책 2.48은 라이브볼 시대 이후 최고 기록이다. 154 ERA+는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공동 1위다.

무엇보다 그는 7년간의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 포스트시즌 실패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욱 인간적이었고, 실패를 극복했기에 더욱 위대했다. 은퇴를 앞둔 커쇼는 "정말 슬프지 않다. 평화롭다"고 말했다. 7년간의 악몽을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