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도시는 월드컵 개최지 박탈? 스포츠 이용하는 트럼프 정치쇼...8개월 남은 상황서 '불가능' [스춘 해축]
시애틀·샌프란시스코 등 민주당 성향 도시들 겨냥, FIFA와 개최도시들 반발
[스포츠춘추]
도널드 트럼프가 또 한 번 폭탄을 터뜨렸다. 26일(한국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위험한 도시에서는 월드컵을 치르지 않겠다"며 개최지 변경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타깃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같은 민주당 성향 도시들이다. 2026년 월드컵을 정치적 압박 도구로 쓰겠다는 선언이었다.
소동은 한 기자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들이 당신의 이민정책에 반발하고 있는데, 이들 도시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월드컵 개최지를 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처음엔 "매우 안전하게 치를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곧 본색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질문이군." 트럼프는 이렇게 운을 뗀 뒤 2분 45초간 폭주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급진 좌파 광신도들이 운영하는 도시다." 민주당 시장들을 향한 독설이었다. 이어 월드컵 개최도시도 아닌 워싱턴 D.C., 멤피스, 시카고까지 끌어들이며 화살을 돌렸다.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다른 도시로 옮기겠다."
물론 내년 6월 개막까지 8개월 남짓 남은 시점에서 개최지를 바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트럼프에겐 그럴 만한 권한도 없다. 월드컵은 FIFA 소유다. FIFA가 각 개최도시와 계약을 맺었고, 연방정부는 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위협이 아주 허풍만은 아니다. 그에겐 두 개의 압박 카드가 있다. 하나는 FIFA 회장 지안니 인판티노와의 개인적 관계다. 트럼프는 인판티노를 "훌륭한 친구"라고 부른다. 인판티노도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고 찬양해 왔다. 12월 월드컵 조 추첨을 워싱턴에서 열기로 한 것도 트럼프 때문이다.
또 다른 카드는 돈이다. 의회가 월드컵 보안을 위해 배정한 6억2500만 달러(8750억원)를 트럼프가 쥐고 있다. 백악관 월드컵 태스크포스 위원장이 바로 트럼프다. 이론적으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의 자금을 끊을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월드컵 개최지를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선정된 11개 개최 도시는 수년간 월드컵을 준비해왔다. 새로운 도시가 8개월 만에 모든 걸 준비하기는 불가능하다. FIFA는 이미 지정된 경기장 티켓을 판매했고, 다음 주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간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기획 관계자 한 명은 "FIFA는 경기를 재배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애틀 시장 브루스 해럴은 즉각 성명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도시에 대한 무지를 계속 드러내고 있다." 그는 구체적 수치로 맞받았다. "시애틀 강력범죄는 20% 감소했고, 올해 130명의 경찰관을 신규 채용했다." 오히려 트럼프를 향해 역공을 펼쳤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테러 자금을 보류해 우리 도시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
다른 도시들도 비슷했다. 캔자스시티 시장 퀸턴 루카스는 "FIFA는 캔자스시티를 사랑하고 캔자스시티는 FIFA를 사랑한다.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뉴욕/뉴저지 개최위원회는 "이미 공식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며 선을 그었다.
결국 이번 소동은 트럼프식 정치쇼의 연장선이다. 월드컵이라는 국제적 이벤트까지 정치적 압박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발상.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계약서와 국제법, 그리고 시간이 트럼프의 앞길을 막고 있다. 8개월 뒤에는 트럼프가 비난한 도시들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월드컵이 열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