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 역사상 최악의 먹튀를 감독으로 데려온다고? 알버트 푸홀스, LA 에인절스 감독설...구단주가 미는 후보 [스춘 MLB]
디 애슬레틱 단독 보도 "모레노 구단주가 최우선 후보로 지목"
[스포츠춘추]
구단 역사상 최악의 먹튀를 감독으로 데려온다? LA 에인절스가 메이저리그 통산 703홈런 레전드 앨버트 푸홀스를 차기 감독 최우선 후보로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일(한국시간)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에인절스 구단주 아르테 모레노가 푸홀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푸홀스와 가까운 소식통은 "결정은 푸홀스가 내릴 일"이라고 전했다. 감독 선임이 임박했다는 뉘앙스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페리 미나시안 단장은 차기 감독 선임 과정에서 배제되는 모양새다.
푸홀스는 야구 역사에 남을 레전드 선수다. 하지만 LA 에인절스 팬들에겐 흑역사에 가까운 존재다. 2012시즌을 앞두고 10년 2억4000만 달러(3360억원)라는 당시 기준 최고 계약으로 영입했지만 계약 기간 내내 먹튀로 전락했다.
에인절스 시절 푸홀스의 성적은 참담했다. 통산 타율 0.256, 222홈런, 783타점에 그쳤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의 슈퍼스타 푸홀스와는 완전히 다른 선수였다. 데뷔 첫 11년간 타율 0.328에 평균 40개 이상의 2루타와 홈런, 120타점, 117득점을 올렸던 푸홀스는 에인절스에서 평범한 선수가 됐다.
2021년엔 1할대 타율로 허우적댔다. 결국 그해 5월, 에인절스는 푸홀스를 전격 방출했다. 이후 푸홀스는 지역 라이벌 LA 다저스로 옮겨 부활에 성공하며 에인절스를 두 번 죽였다. 친정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 마지막 시즌을 보냈고, 통산 703홈런으로 은퇴했다.
2022년 은퇴 후 에인절스 계약 당시 맺었던 10년 개인 서비스 계약이 시작됐다. 연 100만 달러(14억원)를 받으며 구단에 남게 된 것이다. 푸홀스는 지난 3년간 매 스프링캠프 때마다 며칠씩 유니폼을 입고 팀에 합류했다. 고향 도미니카공화국의 에인절스 아카데미에서 유망주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먹튀라는 이유로 방출했던 선수에게 거액을 주면서 구단 일을 맡긴 건 누가 봐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하지만 계약은 계약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에인절스 구단주는 그 선수를 감독으로 앉히려 한다.
푸홀스는 올해 3월 "적절한 기회가 온다면 준비됐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메이저리그 감독 욕심을 드러냈다. 이미 감독 경험도 쌓고 있다.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레오네스 델 에스코지도를 지휘해 첫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초 카리브시리즈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도미니카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는다. 만약 메이저리그 감독직을 수락한다면 WBC 감독직은 그만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에인절스 감독직을 염두에 뒀는지 구단에 우호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작년 63승 99패에 그친 팀을 언급하면서 "구단이 올시즌 훌륭한 제품을 필드에 올리기 위해 빅리그부터 마이너리그까지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조롱할 의도가 아니었다면 아부라고 봐야 한다.
에인절스의 우승 경쟁력에 대해선 "구단은 매년 우승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는다. 문제는 부상"이라고 답했다. 디 애슬레틱은 이를 두고 "푸홀스가 당시 구단을 비판하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고 풀이했다. 푸홀스의 아부는 성공했다. 지금, 또 한번 형편없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한 에인절스가 푸홀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에인절스는 지난 9년간 여섯 명의 감독을 고용했다. 마이크 소시아 감독의 19년 독재가 2018년 끝난 뒤 감독 자리는 회전문이 됐다. 브래드 오스머스, 조 매든, 필 네빈, 론 워싱턴, 레이 몽고메리가 차례로 거쳐갔다. 이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2시즌을 넘기지 못했다.
에인절스는 1일 워싱턴 감독의 계약 옵션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워싱턴이 심장수술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임시 감독을 맡았던 몽고메리도 복귀하지 않는다. 워싱턴은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때론 형편없는 재료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우승 경쟁력 없는 로스터를 이끄는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에인절스는 올시즌을 72승90패로 마감했다. 10년 연속 승률 5할 미만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긴 포스트시즌 가뭄이 11시즌째 이어지고 있다. 미나시안 단장은 5년째 자리를 지키며 358승434패를 기록했다. 최고 성적이 77승85패다. 구단주와 단장은 놔두고 감독만 계속 바뀌는 기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구단주는 단장을 배제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를 감독으로 데려오려 한다.
과연 푸홀스가 이 난맥상을 풀 수 있을까. 일단 지도자로서 평가는 나쁘지 않다. 론 워싱턴 감독은 올해 초 "푸홀스가 감독직을 맡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푸홀스의 야구 지식과 선수들 사이에서 받는 존중을 언급하며 한 말이다. 10시즌 동안 푸홀스와 함께 뛴 마이크 트라웃도 "그가 선수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보면 좋은 감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은 흑역사로 남았지만 야구 최고의 레전드이자 스타인 건 분명하다. 스타 출신은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이 있다. 푸홀스가 그 속설을 깨고 명감독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감독으로서도 먹튀로 남을지, 그래서 에인절스를 세 번 죽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