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는 유명 선수 쉼터 아냐!" 참을 만큼 참은 박치왕 감독 작심발언…부상 선수 입대 관행에 일침 [스춘 이슈분석]

박치왕 감독 이례적 강경 발언 "군대는 놀러 오는 곳이 아니다"

2025-10-02     박승민 기자
상무 박치왕 감독이 1일 퓨처스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취재진을 만났다. (사진=스포츠춘추 박승민 기자)


[스포츠춘추=고척]

상무 피닉스 박치왕 감독이 부상 및 재활 선수들의 입대 문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목소리를 냈다. 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상무와 KT 위즈의 퓨처스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박 감독은 이 문제를 '신뢰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박 감독은 네 선수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 "구창모, 배제성, 이정용, 김재웅이 전부 1군 선수들인데,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구창모는 2023시즌 종료 후 왼팔 척골 피로골절로 인한 수술을 받은 뒤 12월 상무에 입대했다. 이듬해 재활에 집중했고, 9월이 돼서야 시즌 첫 등판을 가졌다. 배제성도 입대 후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2024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이정용도 2024년 6경기에만 나섰다. 김재웅은 작년 6월 입대해 17경기에 나섰지만 올해는 7경기만 출장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마다 파이가 정해져 있다"며 투수들이 이닝을 분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선수들이 빠져버리면 나머지 선수들이 혹사를 당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부상 선수들이 전력에서 이탈하며 지난 시즌을 치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호소였다.

"군대는 놀러 오는 곳이 아니다. 여기는 유명 선수들의 쉼터가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부상과 수술로 인한 공백기에 상무 소속으로 재활하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을 향한 강한 일침이었다.

상무 피닉스의 상급부대인 국군체육부대는 '국가체육을 선도하는 엘리트 군인선수 육성'을 사명으로 한다. 이 취지에 따라 상무에 입대한 프로야구 선수들은 경력 단절 없이 계속해서 경기에 나갈 수 있는 혜택을 누린다. 박 감독의 발언은 부상으로 이탈한 전력들이 이 취지에 어긋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NC 구창모는 상무 입대 이후 첫 시즌이었던 2024년을 재활로 휴식했다. (사진=NC)

박 감독은 "신뢰의 문제다. 상무는 선수들이 기량을 발전시키는 곳이다. 부상을 숨기고 들어와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쉬는 건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 현재는 제도화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평등의 의무가 있으니, '너는 들어오지 마라'는 얘긴 못한다"고 했다. 이어 "구단과 개인이 판단해서 상무 입단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상무에 입대하는 타자와 투수들의 태도 차이도 지적했다. 박 감독은 "타자들은 상무에서 발전과 깨우침, 자기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반면 투수들에 대해서는 "부상 없이 나가는 게 목표라 한다. 그렇다면 상무에 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부상 없이 나가겠다'는 선수들에게 박 감독은 "전방에 가거나, 사회복무요원을 하면서 쉬는 것이 낫다.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부상 회복과 휴식이 목표라면 국방 의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입대 전 팔꿈치 수술을 받고 타자로 활약 중인 전미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미르는 지난 12월 수술을 받고 6월 상무에 입대했지만, 그 여파로 투수 등판이 불가능했다. 병원 소견은 재활에 6개월이 소요된다는 것이었지만, 예상보다 회복이 더 오래 걸렸다.

박 감독은 "전미르를 그냥 두면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내가 제안했다"며 전미르를 타자로 활용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투타에서 모두 빼어난 활약을 보였던 전미르였다. 상무에서 등판할 수 없었던 전미르를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 강구한 방법 중 하나였다. "투수의 훈련일과를 소화한 후 타격만 하고 있다. 투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미르는 지난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해 12월 수술대에 올랐다. 6월 상무에 입대한 이후에는 타자로 활약하고 있다. (사진=롯데)

부상으로 인해 입대를 미룬 선수도 있다. 롯데 좌완 김진욱은 이번 시즌 상무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팔꿈치 통증을 이유로 취소했다. 전미르는 그대로 상무 입대를 진행했지만, 김진욱은 그러지 않았다.

병역 문제 해결에 있어 상무 입대만이 능사는 아니다. 많은 경기를 치르며 경험이 필요한 선수들은 상무에 입대하는 것이 좋지만, 휴식이 필요한 선수들은 현역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올 시즌 LG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손주영도 현역으로 군 문제를 해결했다. KT 고영표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각자 상황에 맞는 입대 유형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청 야구단이 폐지된 이후 현역으로 군 문제를 해결하는 선수들이 증가하고 있다. 군 복무 기간에도 기량을 잘 유지하거나, 오히려 기량이 발전해서 돌아온 선수들도 많다. 1군 경력이 있는 선수보다 많은 실전 경험이 필요한 선수들에게 상무가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KT 고영표는 지난 2018시즌 종료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소집해제 이후 KT의 토종 에이스로 자리 잡으며 승승장구했다. (사진=KT)

상무 입장에서는 입대 후 가용 전력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기존 선수들의 부담이 커졌다. 상무는 정원이 제한돼 있다. 부상 선수가 들어오면 다른 선수가 그 기회를 놓친다. 동료 선수가 출전하지 못하면 다른 선수에게 부담이 가중된다.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결국 박치왕 감독의 작심 발언으로 이어진 셈이다. 선수 이름까지 대놓고 거론할 정도면 꽤 수위 높은 발언이다. 야구계에서는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박 감독의 발언에 해당 선수들의 소속 구단은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 KBO는 '선수 선발은 병무청과 상무에 권한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박 감독의 발언이 야구계와 팬들 사이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 상무 선수 선발 방식이나 구단의 선수 군입대 관행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