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 3위한다고 그랬죠?" 김광현의 일침, 야알못 인정합니다...SSG는 강팀이었습니다 [스춘 인터뷰]
KK 캠프 데려간 선수들 올해 1군에서 활약, 자신의 예상을 현실로 만든 리더
[스포츠춘추=인천]
솔직히 고백하겠다. 올 시즌 SSG 랜더스의 가을야구 진출을 예상하지 못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 유튜브 채널 설문조사에선 SSG 순위를 8위로 예상했다. 기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설문에 응한 10명의 전문가와 기자 중 5명이 SSG를 7위로 예상했고, 1명은 9위를 점쳤다. 단 한 명만이 5위로 SSG의 5강 진출을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SSG는 보란듯이 3위로 준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했다. 9월 30일 키움전 승리로 순위를 확정한 뒤, 김광현의 SNS에는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주장 연임을 알리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였다. 김광현은 '팀 순위 3위 이상 시 주장을 연임한다'는 내용의 괴문서(?)와 함께 'OMG'라는 문구를 덧붙여 팬들을 즐겁게 했다.
다음 날 인천 랜더스필드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광현은 의기양양했다. "내가 뭐랬어요"라면서 "우리 3위 한다고 했죠?"라고 되물었다. SSG의 5강 실패를 예상했던 입장에선 김광현의 일갈에 '야알못'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광현은 SNS에 올린 계약서 대해 "계약서라고 하지 말고 협정서라고 얘기해 달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어렸을 때 엄마 말씀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다 읽어보고 아무데나 사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듣고 사인했다"며 "증인들이 너무 많아서 딴 말 못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인 당시만 해도 3위로 시즌을 마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광현은 "그때 아픈 선수도 많았고, 분위기도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 해서 3등만 한다면 언제든지 하겠다고 했는데 진짜 3등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광현의 말에서 시즌 내내 부상자가 속출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팀이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투수 주장은 야구에서 매우 드문 사례다. 야수들은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많고, 어려서부터 리더십을 훈련하기 유리한 조건이다. 반면 투수는 야수들과 따로 움직이고, 대체로 성향이 '개인적'이라 좀처럼 리더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 프로야구 역사를 돌아봐도 투수가 주장을 맡은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다. 하지만 SSG는 팀의 상징이자 베테랑인 김광현의 리더십을 믿고 주장을 맡겼고, 그 결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3위를 차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김광현은 "저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팀원들이 다들 크고 작은 부상으로 계속 엔트리에서 빠지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 성적을 내서 자랑스럽고 너무나 고생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다"고 뿌듯하게 말했다.
모두가 SSG를 하위권 후보로 예상할 때도, 김광현은 팀의 가능성을 믿었다. 그는 "올 초에 내가 '3등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나"라며 하위권을 예상한 이들을 유쾌하게 놀린 뒤,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야구는 정말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 근거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김광현은 "우리 팀이 작년에 비해서 특별하게 전력이 약화된 게 없었다. 우리가 조금만 정신 차리면 충분히 상위권에서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작년에 부족했던 부분을 조금만 채우면 된다고 봤다"고 밝혔다.
예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도 빛났다. 김광현은 올해 1월 후배 이로운, 김택형, 김건우, 최민준, 박시후 등을 데리고 일본 오키나와에서 'KK 캠프'를 진행했다. 김광현은 "선수들이 부담될까 싶어서 누굴 데려갔는지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함께 다녀온 선수들이 지금 다 1군에 있어서 너무나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실제로 KK 캠프에 참가한 선수들은 모두 시즌 내내 1군에서 활약했다. 특히 2년차 이로운은 33홀드를 챙기며 SSG 최강 불펜의 한 축을 이뤘고, 박시후도 좌완 불펜으로 활약했다. '김광현 후계자' 김건우는 KIA전 5.1이닝 12탈삼진 역투에 이어 팀의 3위 확정 경기에서도 승리투수가 되며, 가을야구 선발 후보로까지 거론된다. 주장 김광현의 리더십과 선수 보는 눈이 빛을 발한 셈이다.
SSG 랜더스는 항상 외부 평가나 전력의 합을 뛰어넘는 결과를 낸 팀이다. SK를 인수해 SSG로 창단한 첫해, 전년도 9위 성적으로 기대치가 높지 않았지만 시즌 마지막 날까지 가을야구 경쟁을 펼쳤다. 2022년에는 사상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2023년에도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지난해엔 아쉽게 가을야구에 실패했지만 올해 다시 가을야구에 복귀했다. 타선이 전반기 내내 부진했고, 불펜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강점이 없는데도 막상 경기를 하면 SSG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김광현을 비롯한 베테랑들의 리더십, 팀 전체의 끈끈한 캐미스트리, 전통적인 강팀 DNA는 수치로는 나타나지 않는 영역이었다. 야구가 단순히 전력의 합만으로 성적이 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 SSG다.
김광현은 2년 만의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우리 팀에는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많다. 경기에 들어가서 하는 걸 보면 선수들이 단합되는 모습이 다른 것 같다"며 "포스트시즌은 즐기는 무대이다. 물론 평상시도 즐기면서 야구하지만, 가을야구는 더 즐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기본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광현은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는 실책, 본헤드 플레이가 승부를 좌우한다. 경험상 에러를 안 하는 팀이 거의 이기더라"면서 "기본기를 충실하게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것만 주의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3위에 오른 SSG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또 한번 모두의 예상을 비웃을 준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