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읽는 게 아니라, 상대 생각까지 읽어버린다...키움 오석주가 돌아본 2025년 [스춘 인터뷰]

후반기 20G, 평균자책점 0.39 전반기부터 19G 무실점 기록 후반기 리그 최정상급 구원 투수

2025-10-04     황혜정 기자
오석주는 후반기 들어 히어로즈의 필승조로 우뚝 섰다. (사진=키움)

[스포츠춘추]

그날은 커브를 9개 연속으로 던졌어요. 포수 (김)재현 형이 ‘오늘은 커브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전혀 망설이지 않았고요. 결과도 완벽했죠. 그때 확신했어요. ‘아, 이게 바로 대화의 힘이구나. 결국 야구는 지략 싸움이다.’

올 시즌 키움 히어로즈 후반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름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오석주(27)다. 우완 불펜 오석주는 단순히 공을 던지는 선수가 아니다. 던지기 전, 먼저 상대를 읽는 투수다. 타자의 심리와 경기 흐름, 그리고 포수와의 대화 내용까지 종합해 판단한 다음 마운드에 선다. 그 치밀함과 집중력이 만들어낸 성과가 19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진기록이었다. 후반기 최고의 발견, 스포츠춘추가 오석주와 한 시즌을 돌아봤다.

커브 9개로 1이닝 무실점...전략으로 이겨낸 경기

오석주의 ‘생각하는 야구’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지난 8월 6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이다. 당시 키움은 5-5로 맞선 상황에서 9회말 오석주를 마운드에 올렸다. 경기 전부터 그는 포수 김재현과 타자들의 패턴을 분석하며 ‘오늘은 커브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펜에서도, 더그아웃에서도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나온 전략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9개의 공을 모두 커브로 던졌다. 선두타자 김휘집을 상대로 커브 2개를 던져 1루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 이어 안중열에겐 커브 2개로 유격수 땅볼, 마지막 대타 안인산에게는 무려 5개의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다. 단 1이닝, 단 한 구종으로. 그야말로 전술의 정수였다. 이날 키움은 10회초 4득점하며 9-5 승리를 거뒀고, 오석주는 시즌 첫 승리투수가 됐다.

키움 오석주는 생각하는 투수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이 타자에겐 이렇게 던져볼까?”

이날처럼 완성도 높은 투구를 가능하게 하는 건 포수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다. 단순히 사인을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다. 경기 전 분석부터 실전 상황까지, 불펜과 더그아웃에서도 김재현, 김건희 등 포수들과 의견을 나눈다. 

“형, 이 타자는 지난 경기에서 이런 반응 보였어요”라고 물으면 포수는 “그럼 오늘은 타이밍을 흔들어보자”고 한다. 짧은 대화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와 통찰은 오석주의 투구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 그는 “마운드 위는 혼자 싸우는 자리가 아니에요. 포수들과 나누는 대화가 제가 더 편하게 던질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항상 고맙죠”라고 했다.

아침은 책으로 시작된다

오석주는 매일 아침 책으로 하루를 연다. “책을 읽고 목표를 다시 떠올리면, 그날의 마음가짐도 달라져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과정이죠.” 그가 요즘 가장 아끼는 책은 '나는 다시 나를 설계하기로 했다'이다. 독일 최고의 멘털 코치 마르틴 베를레의 자기 계발서다. 팬들이 이 책을 들고 사인을 요청해오는 일도 종종 있다. 이제 이 책은 오석주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책이 직접적으로 경기력에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사고의 깊이를 만들어주는 건 분명해요. 저는 마운드 위에서도 생각이 무기라고 믿습니다.” 올해 초부터 하루 3페이지씩 읽기 시작한 오석주의 하루는 이제 습관이 됐다. 그리고 그 습관은 믿을 수 없는 시즌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했다. 오석주는 "전반기때부터 계속 책을 읽고 스스로에게 믿음을 부여했는데, 그게 쌓여 후반기에 좋은 성적이 연달아 나왔던 것 같아요"라고 돌아봤다.

키움 히어로즈 투수 오석주는 후반기 최고 히트상품이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박윤성과의 멘털 동맹...“전쟁은 기세랍니다!”

독서 습관은 룸메이트 박윤성(키움 투수)과의 관계 속에서도 특별한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시즌 내내 함께 방을 쓰며 두 사람은 ‘멘털 루틴’을 공유했다.

“윤성이가 어느 날 ‘손자병법’을 읽더니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형, 전쟁은 기세랍니다. 우리 항상 기세 좋게 갑시다.’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고 한 오석주는 "한 시즌 내내 윤성이와 저는 서로 마주보며 ‘할 수 있다’, ‘해낸다’를 계속 내뱉었죠”라고 밝혔다. 이 습관은 어느새 경기 전 자신감 넘치는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오석주는 “자기 확신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던지는 건 손이지만, 싸우는 건 머리예요”

오석주의 야구 철학은 명확하다. “내가 타자라면 나를 어떻게 상대할까. 이 질문을 항상 떠올립니다.”

이 철학은 후반기부터 꺼내든 신무기 포크볼에도 적용됐다. 전반기 말부터 꾸준히 준비해왔고, 결국 실전에서 자신 있게 던졌다. “처음엔 불안했는데 의외로 손에 잘 맞더라고요. 점점 자신감도 생겼어요.”

하지만 이 공으로 인해 19경기 무실점 기록이 끝났다. 삼성 이재현에게 초구 포크볼이 홈런으로 이어졌던 순간. 그는 그 장면을 담담하게 돌아봤다. “홈런을 맞은 순간 직감했어요. 그 순간이 되게 천천히 흘러가더군요. 포크볼을 더 다듬어서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요.”

다음 시즌은, 더 강해진 몸으로

올 시즌 오석주는 전년보다 4배 가까운 이닝을 소화했다. 하지만 팔 상태는 괜찮다. 트레이닝 파트와 코치진의 세심한 관리, 그리고 자신의 루틴이 있었다.

그렇다면 내년 시즌은 어떻게 준비할까. 오석주는 “(키움 내야수) 송성문 형을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결국은 체력과 철저한 몸관리가 실력을 완성시켜주는 거더라고요. 이번 비시즌엔 저도 더 강한 몸을 만들어서 돌아오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오석주는 오는 8일부터 시작되는 구단 공식 훈련을 통해 다시 몸을 만든다.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로 고향 내려갑니다”

긴 시즌을 마치고, 오석주는 본가인 경남 양산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고생 많았다’, ‘얼른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전보다 자주 전화 못 드렸는데, 이제 좀 더 가까이에서 인사드리고 싶어요.”

존경하는 키움팬들께

“올 시즌 저희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내년에는 더 나은 팀, 더 단단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더 좋은 모습으로 보답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키움 투수 오석주는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오석주는 단지 투구 기록만 남긴 선수가 아니다. ‘던지기 전 읽는다’는 철학으로 마운드를 설계하고, 포수와의 대화 속에서 정답을 찾는 투수다. 책에서 출발한 하루는 야구장에서 전략이 됐고, 이내 팀의 신뢰와 팬들의 기대를 받는 이름이 됐다. 스스로도 "올해가 터닝포인트"라고 한 오석주의 야구 인생은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