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예매가 왜 이렇게 힘든가 했더니 매크로 돌리는 악당 있었네! 대전경찰청 암표상 검거, 선예매 제도까지 악용했다 [스춘 이슈]
매크로로 1만장 쓸어담아 3억 챙긴 40대, 정가 4만원 표 40만원에 재판매... 팬들 분노
[스포츠춘추]
요즘 야구팬들 사이에선 표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매 오픈 시간에 맞춰 컴퓨터 앞에 앉아도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예매 사이트가 열리자 마자 매진, 그게 요즘 프로야구 예매의 현실이었다. 정말 야구 인기가 이 정도인가 싶기도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리고 의심은 현실이 됐다. 표가 사라진 자리엔 매크로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뒤엔 암표상이 웃돈을 챙기고 있었다.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21일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A(42)씨 등 3명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프로야구 입장권 1만881장을 예매한 뒤 암표로 팔아 3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다. 정보통신망법과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다.
A씨의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2023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경기 일대 PC방을 전전하며 매크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예매 인원과 좌석 좌표를 자동으로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총 5254회에 걸쳐 표를 선점했고,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 5억7000만원 상당을 받고 팔아치웠다. 순이익만 3억1200여만원이다.
A씨는 정가 4만원짜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1루 커플석을 40만원에 팔았다. 무려 10배다. 많게는 15배까지 받고 팔았다. 지난 3월 22일엔 하루에만 야구 경기표 128장을 팔아 1527만원을 챙겼다.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까지 인기 구단 표를 싹쓸이했다.
A씨는 가족과 지인 명의로 예매 사이트에 계정을 여럿 만들었다. 대기 없이 좌석 선택창으로 바로 연결되는 이른바 '직접링크' 주소도 활용했다.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매크로로도 예매가 어려워지자, 한 수를 더 뒀다. 일반회원보다 하루 먼저 예매할 수 있는 구단 유료 멤버십에 가입한 것이다. 열성 팬들을 위한 선예매 제도가 암표상의 도구로 전락했다.
경찰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암표 거래가 의심되는 게시글을 발견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잠복수사 끝에 지난 7월 25일 경기 여주시의 한 PC방에서 A씨를 현행범 체포했다. 당시 A씨는컴퓨터 3대를 동시에 켜놓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생활비를 벌려고 범행했고 매크로 프로그램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찰은 지난 14일 매크로 프로그램 개발자 B(26)씨와 유통책 C(28)씨도 붙잡았다. 이들은 암표 구입용 매크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다수의 이용자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단순 예매 기능만이 아니었다. 취소표 자동 구매 기능, 다수의 예매 사이트에 적용할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했다. 프로그램 개수와 기능에 따라 4만원에서 12만원씩 받고 팔았다. 973명에게 1488회에 걸쳐 매크로 프로그램을 판매해 8600만원을 챙겼다. 암표상 뒤엔 또 다른 장사꾼이 있었던 셈이다.
야구팬들이 표를 구하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표는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에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표는 몇 배의 값을 달고 다시 팬들 앞에 나타났다. 구단이 팬들을 위해 만든 선예매 제도마저 악용됐다는 점에서 더 씁쓸하다.
경찰 관계자는 암표 예매용 매크로 프로그램을 개발·제작해 유포하는 업자들을 검거하고, 선예매 제도가 암표팔이로 악용되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건전한 관람환경 조성을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 제작·유포와 암표팔이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