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 끝나자마자 또 공 던지라고? 구단들은 부글부글 "누굴 위한 이벤트인가"...K-베이스볼 시리즈 논란 [더게이트 탐사 2편]
-K-베이스볼, 가혹한 일정에 선수 혹사 논란 -국제 성적, 리그 흥행과 무관... 명분 약해 -네이버, '무료 중계'로 중계권 확보 신호탄...야구계 "네이버에만 좋은 일" -중계권 경쟁도 좋지만, 선수 건강, 내년 리그 경쟁력도 고려해야
[더게이트]
"프로야구를 구한 것이 결국 티빙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T 전문 뉴스레터 '커피팟' 발행인 오세훈의 SNS 글 일부다. 2024년 초 야구팬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을 샀던 티빙의 중계권 계약은 2년 만에 1200만 관중 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숏폼 활성화와 2차 가공 허용은 새로운 팬층 유입으로 이어졌고, 구단들은 중계권료 증대와 콘텐츠 제작 자유를 얻었다. 야구는 '공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뉴미디어 중계권 계약 종료를 1년여 앞둔 지금, 야구계 안팎에선 새로운 변수들이 감지되고 있다.
중계권을 되찾으려는 네이버의 움직임, KBO의 K-베이스볼 시리즈 기획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다시 이전 체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티빙 중계 2년의 성과와 과제,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K-베이스볼 둘러싼 우려의 시선
KBO가 야심차게 준비 중인 'K-베이스볼 시리즈'를 두고 야구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다. 11월 고척스카이돔에서 체코와 두 경기, 이어 도쿄돔에서 일본과 두 경기를 치르는 이번 대회는 내년 WBC를 앞둔 전력 점검이 명분이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같은 조 경쟁국을 미리 상대해보고, 국제 야구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취지다. 조계현 전력강화위원장은 통화에서 "허구연 총재가 KBO에 오시기 전까지 한국야구의 국제경쟁력이 굉장히 낮았다"며 "특히 처음 보는 상대에게 취약했는데, 평가전을 통해 국제 야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현장 감독이나 구단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11월 3일이고, 체코전 첫 경기가 11월 8일이다. 사이가 고작 닷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LG와 한화 선수들은 정규시즌 144경기에 포스트시즌까지 치른 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또다시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LG 트윈스는 이번 대회에 7명이 차출됐고, 한화 이글스도 6명이 뽑혔다. 24일 플레이오프 5차전까지 가을야구만 11경기를 치른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6명의 선수가 차출된다. 야구를 잘하는 팀들이 가을야구를 늦게까지 하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선수들과 구단이 느끼는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구단 측도 공식적으로는 순순히 협조하는 모양새다. 한 서울 구단 단장은 "선수 혹사와 부상 우려는 있다"면서도 "다만 국가대표로서 뛰는 거니 그냥 군말 없이 해야지 어쩌겠나"라고 말했다. 수도권 구단 단장 역시 "무리되는 일정은 맞다"면서도 "10개 구단은 국가대표 차출과 관련 KBO와 협의하게 돼 있다. 선수들이 대표팀에 가서 성장하는 부분도 있다"고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국제 성적, 리그 흥행과 무관...구단 속내 "선수 건강 해치면서까지 무리할 이유 있나"
말은 그렇게 해도 속내는 전혀 다르다. 지난해 프리미어12 사례가 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강행군을 소화한 뒤 프리미어12에 나간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KIA 타이거즈의 곽도규는 대회에서 정규시즌에 해본 적도 없는 3연투를 강행했고, 결국 올해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로 시즌아웃됐다. LG 트윈스 유영찬은 일본전에서 무리한 투구를 한 뒤 팔꿈치 주두골 미세골절로 5월까지 등판하지 못했다.
지난해 리그 최고 마무리였던 두산 베어스 김택연과 KIA 정해영도 올시즌 주춤했다. 김택연의 평균자책은 지난해 2.08에서 올해 3.53으로 치솟았고, 정해영은 지난해 평균자책 2.49에서 올해 3.79를 기록했다.
프런트 출신의 한 야구인은 "구단 입장에서 주력 선수의 국가대표 차출은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는 마음"이라며 "특히 투수라면 가능하면 안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다들 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난해 프리미어12 멤버만 봐도 올시즌 부상자가 되거나 구위 저하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선수는 FA 등록일수로 보상이라도 받지만 구단 입장에선 그런 것도 없으니 득실만 따지면 손해"라는 설명이다.
실제 익명을 요구한 여러 구단 관계자는 "대표팀에 선수 보낼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포스트시즌 끝난 뒤 휴식기도 없이 대표팀에 합류하면 선수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다른 야구 관계자는 "WBC, 올림픽 등 주요 대회야 어쩔 수 없지만 프리미어12 정도 비중의 대회에 왜 1군 주전급 선수가 나가야 하는지부터 의문이다"라며 "올해는 프리미어12 대신 체코, 일본과 평가전을 만들어놨다. 대표팀에 뽑히는 선수들은 올해도 한창 휴식하고 회복할 시간에 공을 던져야 한다"고 우려했다.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최소한 포스트시즌 진출에 탈락한 팀 위주로 명단을 짜는 배려라도 있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팀 명단을 보면 10위팀 키움 1명, 9위 두산은 2명, 8위 KIA 1명, 7위 롯데 2명으로 하위 4개 팀에서 단 4명만 뽑혔다. 반면 상위 4팀에선 무려 24명이 차출됐다.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지방 구단 관계자는 "이제는 국제대회 성적이 국내리그 흥행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2023년 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부진했지만 한국야구 흥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3년 WBC에서 한국은 세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쓰라린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 프리미어12에서도 목표인 4강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KBO리그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돌파했고, 올해는 역대 처음으로 1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국민들은 이제 올림픽에서도 메달 색깔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야구팬들도 마찬가지다. 국제대회에서 못하고 한일전에서 졌다고 대역죄인 취급하지 않는다. 한 야구인은 좀 더 솔직하게 말했다.
"야구팬들이 KBO리그를 보는 게 '경기력' 때문은 아니지 않나. 좀 더 수준 높은 경기를 보고 싶으면 메이저리그를 보면 된다. KBO리그를 찾는 건 그보다는 다른 오락적인 이유 때문이다. 예능프로그램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제대회 성적에 연연하는 건 과거 영광을 잊지 못하는 야구계 '올드보이'들만의 희망사항이라는 지적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의 건강을 해치고, 자국 리그의 질을 낮추면서까지 무리한 일정을 강행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제대회 때문에 부상자가 속출하는 것보다는, 스타 선수들이 건강하게 한 시즌을 소화하는 게 리그와 한국야구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K-베이스볼 시리즈는 정식 국제대회도 아닌 평가전이다.
이에 대해 조계현 위원장은 "일본이나 타이완(대만)은 다른 나라와 평가전이 빈번하다"며 "우리도 허 총재님이 오시면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평가전이 정례화가 되면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수 혹사 우려에 대해서는 "짧게 끊어 던지는 식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KBO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K-베이스볼 시리즈를 만들고 대표팀 브랜드화를 시작했다. 국가대표를 일본의 '사무라이 재팬'처럼 브랜드화하는 중요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네이버, '무료 중계'로 중계권 확보 신호탄...야구계 "선수, 구단, 팬 모두 부상 우려. 왜 우리가 네이버에 좋은 일 해야 하나"
이번 K-베이스볼 시리즈를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이 있다. 바로 뉴미디어 중계권 문제다. KBO는 지난 9월 29일 네이버와 'K-베이스볼 시리즈' 프레젠팅 파트너 체결식을 진행했다. 네이버는 총 4경기의 디지털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다. 그런데 현재 KBO리그 유무선 중계권을 보유한 곳은 티빙(CJ ENM)이다.
티빙은 지난해부터 3년 계약으로 KBO리그 중계권을 독점하고 있다. 지난해 쿠바와의 K-베이스볼 시리즈도 티빙이 중계했다. 이번 대표팀 경기는 네이버가 가져갔다. 네이버는 티빙 계약 전까지 KBO리그 뉴미디어 중계를 도맡아 해온 경쟁사다.
네이버가 이번 K-베이스볼 시리즈 중계권에 투자한 금액은 30억원으로 알려졌다. 4경기에 30억원이라는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KBO 고위 관계자는 "작년에 티빙이 중계할 때도 중계권 팔기가 쉽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일본전이라는 게 있어서 포털 쪽도 관심을 크게 보이지 않았을까"라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이번 계약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특히 '무료'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네이버 이용자들은 네이버 스포츠, 치지직을 통해 무료로 야구 대표팀 경기를 생중계로 시청할 수 있다는 포인트로 티빙의 유료 중계에 대한 야구 팬의 불만을 공략하고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네이버는 KBO와 적극 협력해 대한민국 야구 팬의 축제인 국가대표 경기의 흥행과 야구 대표팀의 발전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야구계 안팎에선 네이버의 이번 계약이 내년 KBO리그 중계권 확보를 위한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네이버가 가장 크게 핵심성과지표(KPI)를 높게 세팅한 것이 KBO 중계권 재계약이란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KBO 중계권 계약을 티빙에 빼앗긴 뒤 뉴스 조회수와 스포츠 페이지뷰(PV)가 감소하면서 손해가 적지 않았고 이에 KBO 직원, 구단 직원까지 스카우트하면서 중계권 회복을 위해 다각도로 애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BO 중계권 담당자는 "네이버도 당연히 야구 중계권에 관심이 있으니 이번에 투자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티빙 측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KBO리그 중계권과 K-베이스볼 시리즈는 계약과 관련해 연관성이 없지만, 향후 중계권 재협상에서 가장 큰 경쟁상대인 네이버의 행보에 여러 우려스러운 시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현재 티빙의 중계권 우선협상이 진행 중인데, 네이버가 K-베이스볼 시리즈 중계를 하게 되면서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KBO의 마음이 네이버 쪽에 좀 더 기울어 있거나, 혹은 대표팀 경기를 활용해서 네이버와 티빙 사이에 경쟁을 붙이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중계권 수복 노리는 네이버의 '무료 중계' 홍보와 앞뒤가 맞지 않는 프로젝트
이와 관련 KBO 중계권 담당자는 "티빙에도 당연히 오퍼를 했다. 여러 군데와 얘기를 했다"며 "그런데 그중 포털인 네이버가 조건이 가장 좋았다"고 설명했다. 티빙이 우선협상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와 별도 계약을 진행한 것에 대해선 "대표팀 한해선 티빙은 우선협상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KBO 고위 관계자도 "K-베이스볼은 티빙 계약사항에 없었다. 입찰은 아니고 여러 군데 문의하다가 네이버가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며 "조건이 포털 쪽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분명한 건, K-베이스볼 시리즈가 어느 모로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프로젝트란 점이다. 대표팀 전력 강화와 KBO리그 경쟁력 강화를 이야기하지만, 한국시리즈 직후 닷새 만에 열리는 일정은 선수들의 건강과 휴식권을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표팀을 통한 리그 흥행이라는 명분은 2년 연속 1000만 관중이 대표팀 성적과 무관했다는 점으로 반박 가능하다. 무리한 일정으로 선수 부상과 컨디션 저하가 오면 오히려 대표팀 경쟁력과 내년 리그 경쟁력에 역효과다. 여기에 중계권 수복을 노리는 네이버의 '무료 중계' 홍보와, 내년 중계권 재협상을 앞둔 미묘한 타이밍까지 겹쳤다. K-베이스볼 시리즈를 고운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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