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협박받고 NBA 도박 스캔들 발칵 뒤집혔는데...MLB 커미셔너 "도박업체와 손잡아야" 망언
선수들 협박·살해 위협 시달리는데... 선수 보호는 한마디도 없어
[더게이트]
"네 가족을 찾아가겠다." "총으로 쏘겠다." "너랑 네 가족 다 죽어라."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스포츠 도박 때문에 받는 협박 문자다. NBA는 개막하자마자 터진 불법 도박 스캔들로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MLB 커미셔너는 도박업체와의 파트너십을 옹호하는 한가한 소리나 했다. 선수들이 겪는 고통에는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26일(한국시각)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월드시리즈 2차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스포츠 베팅이 벌어지는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 접근"이라며 "도박업체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밝혔다. 불과 사흘 전 NBA에서 현역 감독과 스타 가드, 전직 코치가 불법 도박 혐의로 일제히 체포된 직후에 나온 발언이다.
맨프레드는 "도박업체에서 뭔가를 얻고 싶으면 우리도 뭔가를 줘야 한다"며 "그래서 이런 관계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도박 적발을 위해 합법 도박업체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정작 선수들이 심한 협박과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맨프레드가 말하는 데이터란 합법 도박업체가 자사 사이트의 모든 베팅을 추적하고 특정 순간에 비정상적인 베팅 급증이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을 뜻한다. 맨프레드는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이상한 베팅이 포착되면 철저하게 조사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힌 뒤 징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의 공정성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며 "우리는 합법화된 스포츠 베팅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정말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수 보호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맨프레드의 한가한 인식과 달리 실제 선수들이 겪는 현실은 참혹하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이 지난 6월 공개한 MLB 선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스포츠 베팅이 팬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고 답했다. 한 베테랑 불펜투수는 "벤모(송금 앱)로 '네가 경기를 망쳐서 9000달러를 잃었으니 그 돈을 보내라. 안 그러면 네 가족을 찾아가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와 리암 헨드릭스는 가족들까지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한 내셔널리그 야수는 "'어젯밤에 너 때문에 2000달러 잃었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며 "아파트에서 총으로 쏘겠다, 경기장 맞은편에 산다는 협박도 받았다. 3~4차례 그런 문자를 받아서 MLB 보안팀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일부 선수들은 아예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했다.
NBA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개막 이튿날인 23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천시 빌럽스 감독과 마이애미 히트의 테리 로지어가 불법 도박 혐의로 체포됐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출신 코치 데이먼 존스도 함께 체포됐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적 선수 출신 감독, 현역 스타 가드, 전직 코치가 한꺼번에 검거된 초유의 사태였다.
보스턴 셀틱스의 제일런 브라운이 선수노조 부회장 자격으로 리그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25일 "리그는 어떻게 하면 사업을 늘리고 수익을 올릴지만 고민한다"며 "선수들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대화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브라운은 "선수들은 많은 돈을 버니까 팬들의 욕설이나 베팅 관련 비난쯤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며 "하지만 사람들이 돈을 걸면 경기와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구조다. 리그와 구단은 도박 산업에서 돈을 번다. MLB, NBA 같은 주요 스포츠 리그가 드래프트킹스, 팬듀얼, 베트MGM 같은 대형 베팅 업체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현재 미국 38개 주에서 스포츠 베팅이 합법이다. 도박은 큰돈이 된다. 그 돈이 리그로 들어온다. 하지만 도박이 만든 부작용은 고스란히 선수들이 떠안는다.
맨프레드는 '합법' 도박 업체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정작 합법 도박이 만든 선수 협박, 가족 위협, SNS 괴롭힘 같은 부작용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합법화는 MLB에 의심스러운 베팅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열어줬다. 하지만 동시에 베팅 자체를 크게 늘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선수들에 대한 협박과 괴롭힘도 늘었다. 맨프레드는 불법 적발 시스템만 강조했을 뿐, 선수 보호 시스템에 대해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NBA나 MLB나 마찬가지다. 도박 산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에만 관심이 있고 선수 보호에는 소극적이다. NBA가 불법 도박 스캔들로 난리통인 바로 그 순간, MLB 커미셔너는 여전히 도박업체와의 파트너십을 옹호했다. 선수들의 고통은 뒷전이었다. 이러다 MLB도 누가 체포당하거나 끌려가면 그때 가서야 움직일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