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될 뻔한 오스틴, 16타수 만에 첫 안타로 기사회생...1999 로마이어처럼 마지막에 웃을까 [더게이트 KS5]

8회 찬스 날렸지만 9회 쐐기타로 기사회생...시리즈 16타수 만에 첫 안타

2025-10-31     배지헌 기자
오스틴이 홈런을 터트린 뒤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 LG트윈스

 

[더게이트=대전]

LG 트윈스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이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막판 추격 찬스에서 허무한 범타로 물러나 역적이 될 뻔했지만 마지막 타석에 적시타를 날리며 비로소 활짝 웃었다.

오스틴은 30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5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첫 네 타석에서 무안타에 그치면서 이번 한국시리즈 15타수 연속 무안타를 이어갔다가, 9회초 마지막 타석에서 행운의 빗맞은 좌전 안타로 쐐기 타점을 올렸다. 16타수 만에 터진 첫 안타였다.

이날 경기는 오스틴에게 위기였다. 앞서 한국시리즈 3경기 모두 3번 지명타자로 나섰지만 11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2차전에서 볼넷 3개를 골라내며 출루는 했지만, 정작 중심타자에게 기대하는 장타는커녕 안타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염경엽 감독은 3차전 후 타순 조정을 시사했고, 4차전에서 5번타자로 타순을 내렸다. 하지만 첫 네 타석에서도 범타에 그치며 부진의 늪은 깊어졌다.

특히 8회초 네 번째 타석이 아쉬웠다. LG는 0대 3으로 끌려가다 8회초 2사 후 신민재의 2루타와 김현수의 적시타로 1점을 만회했다. 문보경도 안타를 치며 전날 1.2이닝을 던진 김서현이 이틀 연속 8회 마운드에 올라왔다.

김서현은 전날 구원승을 올렸지만 9월 이후 극심한 부진에 시달린 투수. 연이틀 멀티이닝 소화는 정규시즌에 한 번도 없었기에 오스틴이 한 방을 터뜨리면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스틴은 2루수 뜬공으로 아웃당하며 찬스를 날렸다. LG는 8회말 1점을 추가로 내주며 1대 4로 벌어졌다. 패색이 짙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LG 타선이 9회초 폭발했다. 9회에도 올라온 김서현을 두들겨 3대 4 한 점 차로 추격했다. 교체 투입된 박상원도 홍창기에게 안타, 2사 후 김현수에게 역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문보경도 또 쳐내며 LG는 6대 4로 달아났다.

여기서 다시 오스틴의 타석이 돌아왔다. 바뀐 투수 한승혁을 상대로 1볼에서 2구째 속구를 받아친 타구는 앞의 타석들처럼 빗맞아 높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게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절묘한 텍사스 안타가 되면서 문보경이 홈을 밟았다. 시리즈 16타수, 19타석 만의 첫 안타이자 쐐기 타점이었다. LG는 7대 4로 승리하며 3승 1패로 앞서갔다. 우승까지 1승만 남았다.

만약 9회 역전극이 없었다면 오스틴은 8회 찬스를 날린 역적으로 남을 뻔했다. 경기 후 염경엽 감독은 "마지막 안타가 안 나왔으면 5차전에는 문성주가 선발이었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면서 "내일도 그대로 5번 지명타자로 나간다"고 밝혔다.

오스틴 딘(사진=LG)

정규시즌 오스틴의 활약을 생각하면 이번 한국시리즈 부진은 미스터리다. 오스틴은 정규시즌 타율 0.313(425타수 133안타) 31홈런 95타점을 기록한 간판타자다. 3년 연속 3할 타율, 2년 연속 30개 이상 홈런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외국인타자로 군림했다. 2년 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0.350, 1홈런 5타점을 올렸으니 가을에 약한 타자도 아니다. 

그런 오스틴이 시리즈 내내 무안타에 허덕였다. LG 팀 타선이 1차전 8점, 2차전 11점으로 폭발하는 동안에도 혼자만 얼어붙었다. 염 감독은 "시리즈 전에는 가장 컨디션이 좋은 타자였는데 시리즈에 들어와서 부진했다"며 "너무 잘하려다 중심이 무너지고 타이밍이 늦는 경향이 있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정규시즌 맹타를 휘두른 외국인 타자가 가을야구에서 부진한 건 오스틴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NC 에릭 테임즈는 40홈런 121타점을 쳐놓고 한국시리즈에서 16타수 2안타로 두산 투수진에 철저히 눌렸다. NC는 4전 전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9년 두산 호세 페르난데스도 정규시즌 타율 0.344를 기록하고 한국시리즈에선 13타수 1안타로 무너졌다. 다만 두산은 4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 외에도 2000년 현대 찰스 카펜터(15타수 2안타), 2014년 넥센 비니 로티노(19타수 2안타), 2023년 KT 앤서니 알포드(16타수 2안타)가 한국시리즈에서 극심한 부진을 보인 외국인 타자들이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1999년 한화 댄 로마이어다. 로마이어는 그해 타율 0.292, 45홈런 109타점으로 괴력을 발휘한 슈퍼 외국인 타자였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들어 엄청난 부진에 빠졌고, 마지막 5차전 마지막 타석 전까지 15타수 1안타에 허덕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반전이 일어났다. 팀이 2대 3으로 끌려가던 9회초, 로마이어가 동점 3루타를 쳐냈다. 장종훈의 희생플라이 때 로마이어가 홈을 쇄도하며 역전 결승점을 올렸다. 구대성이 그대로 경기를 끝내며 한화는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다. 로마이어는 시리즈 16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오스틴은 15타수 무안타로 2015년 두산 데이빈슨 로메로(10타수 무안타) 이후 외국인 타자 한국시리즈 최장기간 무안타를 이어가다 겨우 한 개를 건졌다. 1999년 로마이어처럼 오스틴도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5차전은 31일 오후 6시 30분 대전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