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경기장에 내 이름 새겨라" 트럼프, NFL 워싱턴 구단에 네이밍 라이츠 압박...이 정도면 병이다 [더게이트 NFL]

-NFL 경기장에 내 이름 새겨라...트럼프 압박 -반대했던 바이든 프로젝트에도 이름 도용 -온갖 건축물, 프로젝트에 자기 이름 붙이기 집착

2025-11-09     배지헌 기자
워싱턴 커맨더스 로고.

 

[더게이트]

이 정도 집착이면 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커맨더스(NFL)의 신규 경기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ESPN은 9일(한국시간)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에 건설될 37억 달러(약 5조2000억원) 규모의 돔 구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길 원한다"며 "조시 해리스가 이끄는 커맨더스 구단주 그룹과 비공식 접촉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신구장 건설을 가능하게 만든 건 트럼프 대통령이니, 그의 이름을 붙이는 게 아름다운 일"이라며 "대통령이 원하는 일이고, 아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레버리지는 충분하다"

문제는 경기장 명명권이 구단 소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규 경기장은 1961년부터 1996년까지 홈구장으로 쓰였던 RFK 스타디움 부지에 2030년 개장 예정이다. 이 부지는 연방정부 소유 땅으로, DC 의회가 구단에 임대하고 국립공원관리청이 관리한다.

구단은 기업 스폰서에게 팔 네이밍 라이츠(명명권)를 갖고 있다. NFL 대부분의 구장은 수억 달러에 기업 스폰서에게 네이밍 라이츠를 판다. 하지만 개인 이름을 기념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그린베이의 '램보 필드'처럼 스폰서 없이 개인 이름을 쓰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백악관 내부 소식통은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작명권을 사거나 기업 스폰서가 대신 사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경기장 승인에 기여한 공로로 '램보 필드'처럼 자기 이름이 붙길 원한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트럼프가 고집한다면 충분한 레버리지가 있다"며 "환경 승인 등 정부 절차를 통해 얼마든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경기장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결국 그의 이름을 붙이는 데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권력을 동원한 사실상의 협박이다.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사진=백악관 홈페이지)


협박과 압박 사이

트럼프는 경기장 건설 과정에 처음부터 깊숙이 관여해왔다. 커맨더스는 오랫동안 DC로 복귀하려 했지만, 경기장 부지가 연방정부 소유라는 게 걸림돌이었다. 상황이 바뀐 건 지난해 말 의회가 DC시에 해당 부지를 99년간 임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서명했다.

올해 5월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해리스, NFL 커미셔너 로저 구델, DC 시장 뮤리엘 바우저와 함께 2027 NFL 드래프트를 워싱턴에서 개최한다고 화려하게 발표했다. 경기장 건설을 지원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두 달 뒤 7월, 트럼프는 돌변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구단이 팀명을 '레드스킨스'로 되돌리지 않으면 경기장 건설을 막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레드스킨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표현으로 지적받아 2020년 전 구단주 댄 스나이더가 폐기했고, 2022년 '커맨더스'로 바뀌었다.

9월 DC 의회는 11대 2로 RFK 스타디움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구단은 27억 달러를 투자해 6만5000석 규모의 돔 구장을 짓고, DC시는 10억 달러를 부담한다. 경기장 외에 주택단지, 스포츠 시설, 상업지구가 들어서는 'DC 역사상 최대 경제개발 프로젝트'다. 이제 남은 건 연방정부의 환경 승인 등 각종 인허가인데, 이 과정에서 트럼프가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트럼프는 10일(한국시간) 커맨더스 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경기를 해리스의 게스트로 관람한다. 현직 대통령이 노스웨스트 스타디움에서 NFL 경기를 보는 건 처음이고, 정규시즌 NFL 경기 관람은 47년 만이다. 구단 관계자는 "트럼프와 신규 경기장에 대한 대화가 오갈 것으로 예상하지만, 경기장 이름에 대한 공식 요청은 아직 없었다"고 말했다.

워싱턴 레드스킨스 시절의 로고.


트럼프 타워부터 바이든 프로젝트까지...이름 집착의 역사

트럼프의 '이름 붙이기 집착'은 수십 년간 이어져왔다. 1980년대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를 시작으로 골프장, 호텔, 카지노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 트럼프 와인, 트럼프 스테이크, 트럼프 대학까지 만들었다가 실패했지만, 이름만큼은 끝까지 고집했다.

2기 행정부 출범 후엔 더 노골적이다. 지난 9월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코네티컷주의 118년 된 철도 교량 교체 사업 현장에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 - 미국 인프라 재건"이라는 빨간 표지판이 세워졌다. 이 사업은 트럼프가 격렬히 반대했던 2021년 바이든의 인프라 투자법으로 진행된 것이다.

시애틀, 보스턴, 필라델피아의 철도 개선 사업, 메릴랜드의 교량 공사 현장에도 똑같은 트럼프 표지판이 등장했다. 자신이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오히려 반대했던 프로젝트까지 자기 이름을 붙이는 파렴치한 행태다. 올여름엔 지지자들이 케네디 센터를 '도널드 J. 트럼프 공연예술센터'로 개명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제는 NFL 경기장까지 노리고 있다. 이 정도면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