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은 포기·보상금은 제로…홍건희, 구단 셈법 흔드는 '옵트아웃 불펜' [더게이트 이슈분석]

-보상 규정 밖 특수 매물 -2+2년 깨고 시장 재진입 -팔꿈치 리스크 vs 검증 구위

2025-11-18     황혜정 기자
홍건희가 옵트아웃을 신청했다. (사진=두산)

[더게이트]

2026시즌을 앞두고 FA 시장을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축은 선발이 아니라 불펜이다. 리그 판도를 단숨에 바꿀 만한 ‘슈퍼스타’는 없지만, 어느 팀에 꽂아도 필승조 전력은 한층 두꺼워질 만한 이름이 여럿이다.

이영하와 김범수가 1순위 자원으로 언급되고, 조상우도 2025시즌 후반기에는 예전 위력을 상당 부분 되찾았다. 김태훈, 이승현, 김상수, 이준영에 선발·불펜을 오가는 최원준까지 더하면 시장은 이미 풍족하다. 여기에 박찬호가 두산과 4년 80억원에 계약하면서, 불펜 한 자리를 채우는 비용 자체도 예년보다 올라간 분위기다.

이런 판 위에 조금 결이 다른 카드 하나가 올라왔다. 두산베어스 투수 홍건희(33)로, 신분은 ‘FA 아닌 FA’다. 일반 FA 공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 아니라, 두산과 맺어둔 다년 계약을 스스로 깨고 나와 새 팀을 찾는 방식이다.

홍건희는 2023시즌 종료 뒤 두산과 2+2년 FA 계약을 체결했다. 총액은 최대 24억5000만원, 뒤에 붙은 ‘+2년’은 선수 쪽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옵션으로 구성돼 있다. 이 2년의 보장 금액은 15억원이다. 홍건희는 이번 겨울, 두산에 이 옵션을 사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남은 2년 계약을 포기하고 시장으로 나가겠다는 의미, 사실상의 ‘옵트아웃’ 선언이다.

절차는 일반 FA와 다르다. 형식상으로는 두산에서 방출되는 형태가 된다. 그 결과 일정 기간 동안 두산과는 재계약을 할 수 없고, 나머지 9개 구단과만 협상 테이블을 만들 수 있다. 두산과 이미 보장돼 있던 2년 15억원 조건보다 나은 조건을, 다른 팀에서 끌어낼 수 있다고 본 선택이다.

홍건희가 미칠 파장은 무엇일까. (사진=두산)

이 구조가 주목받는 이유는 ‘보상’ 때문이다. 홍건희의 2025시즌 연봉은 3억원이다. 같은 불펜 자원을 일반 FA로 데려오려면, 구단은 수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보상 선수까지 내줘야 한다. 하지만 홍건희를 영입하는 순간 이런 계산은 필요 없다. 보상금 0원, 보호선수 명단도 건드릴 필요가 없는 완전 자유 매물이다. 구단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점만으로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선수 입장에서도 손익계산이 극단적으로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 팀과 다년 계약을 맺는다는 점에서는 일반 FA와 구조가 거의 같다. 보상 규정에 묶이지 않기 때문에, 복수 구단의 러브콜을 받을 여지도 더 크다. 다만 일반 FA 계약처럼 ‘계약금’ 항목으로 목돈을 한 번에 받기는 쉽지 않다. 대신 첫해 연봉에 계약금 성격을 녹여 거액으로 책정하는 방식 등, 계약 설계로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다.

결국 팀들이 고민할 지점은 현재 경쟁력이다. 2025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불안 요소가 분명하다. 홍건희는 2025년 1군에서 20경기에 나와 2승 1패, 평균자책 6.19를 기록했다. 두산 이적 후 가장 좋지 않은 기록이다. 시즌 개막 직전 팔꿈치 인대 손상이 발견되면서 출발부터 꼬였고, 재활을 마치고 1군에 복귀한 시점은 6월이었다. 팔꿈치 부상 이력은 어느 구단에서도 체크리스트 맨 앞줄에 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홍건희가 다른 팀으로 갈까. (사진=두산)

그러나 2025년 한 시즌만 떼어놓고 보기에는 이력이 만만치 않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시즌을 합치면 42홀드와 52세이브를 남겼다. 특히 2024시즌에는 65경기에서 59⅓이닝을 던지며 4승 3패 11홀드 9세이브, 평균자책 2.73을 기록했다. 매 시즌 60~70이닝을 꾸준히 소화해온 점, 마무리와 셋업을 모두 경험한 필승조 자원이라는 점은 이미 증명된 부분이다.

이번 겨울 불펜 시장은 선택지가 많다. 이영하와 김범수가 ‘1선’을 형성하고, 후반기 반등에 성공한 조상우, 필승조 후보인 김태훈과 이승현, 베테랑 김상수, 좌완 스페셜리스트 이준영에 선발·불펜을 오가는 최원준까지 포진해 있다. 불펜을 전혀 보강하지 않아도 되는 팀은 드물고, 한 자리라도 더 안정적인 카드를 원하는 팀은 항상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보상 없는 불펜’, ‘옵트아웃 카드’라는 홍건희의 조건은 다른 FA들과는 전혀 다른 셈법을 만들어낸다.

정리하면 변수는 두 가지다. 팔꿈치 인대 손상이라는 리스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60이닝 안팎을 다시 꾸준히 던질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의료 체크에서 큰 이상이 없고 구위가 2024년 수준까지 회복된다는 전제만 선다면, 보상금 0원에 마무리 경험까지 갖춘 검증된 불펜 자원을 다년 계약으로 품을 수 있는 셈이다. 불펜 자원이 쏟아진 이번 겨울, ‘FA 아닌 FA’ 홍건희가 여러 구단의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게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