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구 4개에 눈물 펑펑, 이름까지 바꿨다"…키움 2년차 투수, 절박함 속 던진 새 출발 [더게이트 인터뷰]
-‘이우현’서 개명, 절실한 선택 -마운드 복귀 후 속도↑ -‘조급함’ 대신 ‘완성도’
[더게이트=원주]
이름을 바꿨다, 야구를 놓지 않기 위해. 이우현에서 이태준으로. 단지 글자 몇 개를 바꾼 것이 아니라,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기 위한, 마지막이라는 심정의 선택이었다.
“계속 안 됐어요. 부상도 있었고, 너무 아프기도 했고. 그때는 진짜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었죠.”
2024년 키움 히어로즈에 3라운드 전체 24번으로 지명된 고졸 투수로 올해 2년 차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1군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프로 지명 이후 토미 존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높은 순번에 지명돼 구단과 팬들의 기대감이 높았지만, 몸은 말처럼 따라주지 않았고다. 그럴수록 마음은 날마다 조여왔다. 친구들이, 동기들이, 먼저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 조급함은 더욱 깊어졌다.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기회가 왔을 때 못 잡은 것도 그렇고...괜히 마음이 급해졌죠. 저 혼자만.”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한 건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더는 버틸 수 없을 때였다. 처음엔 부모님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미 그 마음은 스스로 안고 있었던 것인지, 낯설지 않았다.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어요. 계속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았거든요.”
몇 군데 작명소를 다녔다. 좋은 이름을 찾고 싶었다. 후보는 두 개였다. 이태조, 이태준. ‘태조’라는 이름이 농담처럼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조는 좀 웃기잖아요. 하하. 결국은 이태준이 가장 좋다고 하셔서 그렇게 정했어요.” 그렇게 이우현은 지난 6월, 이태준이 됐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단번에 야구가 풀릴 리는 없었다. 수술을 받았고, 재활에 전념했으며, 올해 2월 대만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몸은 회복 중이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래도 천천히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급함을 내려놓고, 야구의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변화구에 집중했다. 포크볼, 슬라이더. 속구보다 변화구의 무게를 믿기로 했다.
“저는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에요. 그래서 변화구와 피칭 디자인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타자의 시야를 흐트러뜨리는, 그런 투구요.”
조금씩 결과도 따라왔다. 이전보다 공이 빨라졌다. 올해 찍은 최고 구속은 시속 152km. 사이드암으로 던졌던 팔을 스리쿼터로 살짝 올리고 던지기 시작하면서 결과가 달라졌다. 몸도 따라주고,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너지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올 시즌 초 등판한 퓨처스리그(2군) 첫 경기인 지난 3월 15일 SSG랜더스와 2군 경기서 이태준은 구원 등판했지만, 1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사사구만 4개 내주고 2실점한 뒤 강판했다. 단 몇 개의 공을 던지고 내려왔던 날. 아무도 모르게 흘린 눈물은 그가 겪은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증명했다.
“사사구 4개를 던지고 내려왔어요.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충격이었고.” 그는 이 말을 마치고 말끝을 흐리며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부상, 좌절, 기대, 무너짐, 그리고 다시 붙잡은 희망까지.
지금 이태준은 조급하지 않다. 빠르게 결과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단단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퀄리티, 완성도, 준비. 이태준은 이런 단어들을 반복했다. “급하면 무너지는 걸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하자는 생각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요.”
마지막으로 구속 얘기를 꺼내자 이태준은 약간 웃으며 말했다. “예전보다 빨라졌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그때보단 올라왔다고 말할 수 있어요. 자신감도 조금은 생겼고요.”
이름이 바뀌었다고 모든 게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 증명해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이태준은 안다. 절실하게 던진 시간들이 결국은 그를 다시 마운드 위로 데려다줄 거라는 걸. “그냥 다시 시작하려고요. 지금은 잘 버티고 있어요.”
말보다 진한 진심은 때때로 고요한 눈물로 전해진다. 이태준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시작됐다. 마운드에 서기 위해 흘린 수많은 눈물, 견딘 시간들, 바꾸고 싶었던 운명. 그 모든 것이 그의 공 끝에 묻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