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날 감독-심판 사적 만남→다음날 편파판정" vs "허위사실" 고교야구 판정 의혹 일파만파 [더게이트 탐사]

-전국체전 경기 전날 감독과 심판진 접촉 의혹 제기돼 -"다음날 경기에서 상대팀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판정" 주장 -학부모들 경찰 고발·각종 진정 제기...의혹 제기된 감독은 "억울하다" 항변

2025-11-25     배지헌 기자
고교야구 감독과 심판이 경기 전날 부적절한 만남을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교야구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챗 GPT 생성 이미지)

 

[더게이트]

고교야구 편파판정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기 전날 감독과 심판진이 만나 부적절한 접촉을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를 주장하는 학교 측은 경찰 고발과 각종 진정서 제출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반면 문제의 감독과 심판진은 허위사실이라고 강하게 맞서고 있다.

사건은 이렇다. 11월 6일 정오 경북 포항야구장에서 제107회 전국체전 1차 예선 결승전이 열렸다. 경주고 대 의성고. 6회까지 1대 0으로 앞서던 경주고를 7회말 의성고가 3득점해 역전했다. 8회말 추가 득점으로 4대 1. 의성고가 승기를 잡는 듯했다.

의성고 학부모들이 주장하는 편파 판정 사례 장면. 경주고 투수의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근거 화면이다.

그러나 9회 초부터 공기가 달라졌다. 관중석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볼 판정이 이상하다." 의성고 학부모들이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성고 투수가 던지는 코스에는 손이 올라가지 않았고, 경주고 투수의 비슷한 공에는 스트라이크가 선언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학부모들이 장님인 줄 아냐"는 고함까지 나왔다.

경주고가 9회 초 3점을 뽑아내며 4대 4 동점. 연장 10회 승부치기로 넘어갔다. 승부치기에서 경주고 주자가 3루로 향했다. 의성고 3루수가 태그를 시도했다. 양팀 학부모들이 숨을 죽였다. 의성고 쪽에선 태그가 됐다고 봤지만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경주고가 득점했다. 의성고는 10회말 반격하지 못했다. 경주고의 승리.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의성고 선수들의 눈가가 붉었다.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행동에 나섰다.

의성고 측이 이의를 제기한 3루 세이프 판정 장면.


"하루 전 식당 앞, 감독과 심판진 포착" 주장

의성고 측이 문제 삼은 건 경기 전날이었다. 11월 5일 저녁. 포항의 한 편의점 앞. 경주고 L 감독과 심판 한 명이 차량에서 함께 내리는 장면이 포착됐다는 게 의성고 측 주장이다. 사진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의성고 측은 또 L 감독이 인근 식당에서 KBSA 점퍼를 입은 경북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들, 심판진과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지역에서 오래 야구를 해온 선수들이 L 감독과 협회 관계자들 얼굴을 알아봤다는 설명이다. 해당 식당은 경북야구소프트볼협회 관련자가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증거자료를 모으고 법률 검토를 마친 의성고 야구부 학부모회는 지난 19일 경북야구소프트볼협회, 경북교육청, 경북체육회,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포항경찰서에는 고발장을 접수했다. 경북교육청 감사관실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스포츠윤리위원회에도 신고가 들어갔다.

진정서 핵심은 두 가지였다. 경기 전날 L 감독과 심판진의 접촉. 그리고 다음 날 판정.

진정서에 따르면 5일 저녁 L 감독은 경북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들, 심판진과 함께 식사했다. "모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이후 함께 숙소로 귀가하는 장면이 목격됐다"고 진정서는 밝혔다.

의성고 학부모 K씨는 "편의점 앞 차량에서 감독과 심판이 함께 내리는 장면을 여러 명이 목격했다"며 "식사 장소에서 나오는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을 확보해 경찰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K씨는 "숙소 인근이었고 KBSA 점퍼를 입은 협회 관계자들이 있었다"며 "우리 선수들이 L 감독 얼굴을 보고 바로 알아봤다"고 설명했다.

의성고가 제출한 진정서.


학부모들 "주심 R씨, 영구제명 요청"

다음 날 경기를 주관한 주심은 R씨였다. 의성고 측은 교육청에 제출한 질의신청서에서 "R 주심의 경우 영구제명을 원한다"고 명시했다.

진정서는 "(9회초) 경주고 공격 시점부터 주심의 판정은 객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공정한 양상을 보였다"며 "현장을 관전하던 지역 주민들조차 '학부모들이 장님인 줄 아느냐'라는 반응을 보일 만큼 논란이 심각했다"고 적었다.

진정서는 "동일한 코스의 투구임에도 팀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지속됐다"고 주장했다. 의성고 측은 편파 판정 의혹 영상이 유튜브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와 있다고 밝혔다. 승부치기 3루 판정도 문제삼은 진정서는 "심판의 공정성은 사실상 상실 상태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성고 학부모들이 주장하는 편파 판정 사례 장면. 경주고 투수의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근거 화면이다.
의성고 학부모들이 주장하는 편파 판정 사례 장면. 경주고 투수의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근거 화면이다.


L 감독 "선배 태워준 것뿐…명예훼손"

이런 의혹에 대해 L 감독은 강력히 반발했다. 더게이트와 통화에서 L 감독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먼저 심판과 차에서 내리는 장면이 포착됐다는 의혹에 대해 L 감독은 "선배님이 차를 태워달라고 해서 태워준 것뿐"이라며 해당 심판이 중고등학교 2년 선배라고 설명했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선배가 태워달라고 하는데 안 태워줄 수 있겠나."

L 감독은 "편의점 앞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샀다"며 "20~30분 정도 선배 말씀만 듣고 헤어졌다"고 말했다. 심판과 함께 식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안 된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차량에 동승한 심판에 대해서도 "심판부에 처음 들어온 분"이라며 "경기에 들어가지도 않는 분이고 영향력이 있는 분도 아니다"고 밝혔다. L 감독은 "나는 술도 잘 못 먹고 골프도 못 친다. 골프 용어도 잘 모른다"며 자신을 향해 제기된 다른 비난에 대해서도 항변했다.

L 감독은 "이건 명예훼손"이라며 "허위사실 유포에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주고 관계자는 "감독에게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며 "학교에서 협회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L 감독은 '식당에서 야구협회 관계자, 심판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식당 사장, 지인 1명과 함께 식사한 것"이라는 취지로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L 감독과 식당에 함께 있었던 인물로 지목된 경북야구소프트볼협회 K 심판위원장은 "L 감독과는 야구장에서 봤다"며 "밖에서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의 식당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다들 밥을 먹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심판들 회식도 하고 야구협회에서도 식사를 하러 왔던 곳이다. 여러 사람이 오는 곳이라 어쩌다 마주쳤을 수는 있지만 따로 만난 사실은 없다."

지방 고교야구 대회에서 판정 시비는 오래된 문제다.


"작년 포철고, 그 전 도개고도 비슷한 일 겪었다"

의성고 학부모회는 진정서에서 "포철고 및 예일고 학부모회와의 통화 결과, 수년간 불공정한 판정이 지속되어 왔다는 심증과 깊은 억울함을 들었다"고 밝혔다.

의성고 측은 "작년에는 포항제철고가, 그 전에는 도개고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전국체전에 나가는 예선전 때만 유독 심하다"고 주장했다. "도 교육청에서 훈련 지원비 등 예산 이권이 오가다 보니 이런 일이 계속 이어졌다는 얘기를 주변 선배 부모들에게 들었다"는 주장이다.

진정서는 "경북 지역 고교 야구권에서 심판들의 판정시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오랜 기간에 걸쳐 특정 학교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불공정 판정이 빈번히 제기되어 왔다"고 적었다. "학부모들은 선수로 출전 중인 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것을 우려해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 채 침묵해 온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주장이 완전히 근거 없는 건 아니다. 지방 고교야구 대회에서 판정 시비는 오래된 문제다. 지역이 좁고 협회와 심판진, 감독들이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가 많아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국내 아마야구계에선 오래전부터 '심판들이 특정 팀만 밀어준다' '협회의 힘 있는 인사가 심판들을 움직여 우승팀을 만들어 준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한 야구인은 "어떤 감독은 자동차 트렁크에 돈 상자를 싣고 다니면서 심판들에게 뿌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판정 불이익을 견디다 못한 일부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캠코더를 여러 대 구입해 촬영한 뒤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 사례도 있다. 1990년대 말엔 심판들의 축승금 수수 파문이 터지면서 일부 팀이 경기 출전을 거부하는 사태도 있었다. 금품을 주고받은 심판, 감독들이 대거 구속되는 일도 여러 차례 겪었다. 문제를 일으켜 징계를 받아도 그때뿐, 시간이 지난 뒤 슬그머니 다시 복귀해 선수들을 지도하고 야구계 요직을 꿰찬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역사가 반복되면서 아마야구계의 인간 심판을 향한 불신과 혐오가 더욱 깊어졌다. 결국 메이저리그는 물론 KBO리그보다도 먼저 고교야구가 로봇심판을 도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목동야구장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자동볼판정시스템(ABS)이 도입되면서 편파 판정 논란은 과거보다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ABS가 없는 지방경기장에서 열리는 대회는 여전히 심판 판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편파 논란이 끊이지 않고 불신이 심각하다.

L 감독도 "경북 지역이 야구계가 좁다 보니 협회나 심판진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젊은 친구들 몇 명은 모를 수 있지만 다 아는 사이인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L 감독은 "나 역시 (지방 경기에) ABS를 도입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성고 투수의 피칭 장면. 의성고는 스트라이크가 볼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형사고발까지

의성고 학부모회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오해나 오심 수준을 넘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의도성 있는 편파 판정"이라고 규정했다.

진정서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고시된 공직유관단체로서, 심판진이 경기 이해당사자인 감독과 접촉한 것은 이해충돌방지법 등 상위 법령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학부모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을 진행했다. 포항경찰서에는 업무방해죄로 L 감독을 고소했다.

진정서는 다섯 가지를 요청했다. 감독과 심판 간 사전 접촉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 R 주심을 포함한 해당 심판의 과거 판정·배정 이력 전수 조사, 편파 판정 정황에 대한 영상 분석 및 제3자 심판 평가단의 공식 검증,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해당 감독 및 심판에 대한 즉각적 징계 및 직무 배제, 심판 배정 방식의 전면 재검토.

교육청에 제출한 질의신청서에는 "혐의가 입증될 시 전국 체전 1차 예선 경주고 전경기 몰수패와 심판 중징계, R 주심의 경우 영구제명을 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사건은 경찰 수사와 교육청 조사, 국민권익위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가려질 전망이다. 의성고 측이 제출한 증거 자료의 내용과 신빙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회는 진정서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학생 선수들은 평생 한 번도 오기 어려운 공식 경기에서 정당한 경쟁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학생 선수들은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교육적 좌절감을 겪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한 경기의 문제가 아닌, 고교야구 전체의 신뢰와 선수들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구조적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