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루 글러브 낀 절실한 키움 이형종...."올해처럼 하면, 자진 은퇴할 것" [더게이트 인터뷰]
-초심·간절함으로 재도전 -1루·외야 멀티 수비 도전 -마지막 시즌, 반등 절실
[더게이트=원주]
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이형종(36)이 마지막을 각오한 한겨울, 다시 방망이를 쥐었다. 올 시즌 성적은 33경기 타율 0.200, 2홈런, OPS 0.629. 6월 5일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된 뒤 퓨처스리그에도 나서지 못했다. ‘내리막’만 보이던 베테랑이 원주 마무리캠프까지 올라온 건, 딱 두 가지 마음 때문이었다. 초심, 그리고 간절함이다.
이형종은 “그냥 진짜 초심 같은 마음으로 온 것 같다. 열심히 했을 때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고 생각했다”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제가 몇 년간 보여준 게 없다. 그런 저를 감독님, 코치님, 구단에서 다시 한 번 써보겠다고 한 거니까, 그 믿음에 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했다.
6월 말소, 퓨처스도 못 나간 베테랑
지난 6월 5일, 오른쪽 어깨를 붙잡고 내려간 뒤 그의 이름은 경기 기록지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퓨처스리그 출장도 없었다. 재활과 회복에만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이제 정말 끝인가’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돼 있더라. 작년에 왔던 게 어제 같은데, 제가 한 게 없으니까 더 빨리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와중에 새 지도체제가 들어서면서 마무리캠프 이야기가 나왔다. “설종진 감독님이 ‘원주 갈 생각 있냐’고 툭 던지셨는데, 바로 ‘갑니다. 가겠습니다’ 했다. 그 말 한마디 하고 여기까지 흘러온 것 같다”며 웃었다.
결정이 내려지자 곧장 몸을 만들었다. “원주 오기 전에 고향에서 10월 6~7일부터 모였다. 시즌 끝나고 바로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훈련을 조금 빡세게 했다”고 말했다.
1루 글러브 다시 낀 36살, “막는 데 특화돼 있습니다”
마무리캠프에서 이형종의 가장 큰 변화는 ‘포지션’이다. 익숙한 외야에 더해 1루 글러브를 다시 꼈다. LG 시절 경험이 완전히 낯선 건 아니지만, 30대 중반에 새 임무를 맡는 건 쉽지 않다.
“예전 팀에서도 1루를 조금씩 연습하긴 했었다. 지금은 외야도, 내야도, 어떻게든 한 경기라도 더 나갈 수 있게 만들고 싶다. 1루가 비면 1루로, 외야가 비면 외야로 나갈 수 있는 선수였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코치들을 붙잡고 있다. “문찬종 수비 코치님이 수비를 워낙 잘하셨으니까, 많이 배우려고 한다. 다 처음 같은 마음으로 코치님들을 귀찮게 하려고 한다. ‘저 왜 안 봐주냐, 추가 훈련 좀 넣어달라’고 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원주에서 첫 1루 실전은 나쁘지 않았다. “3이닝 뛰었는데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제 앞으로 땅볼이 오더라. 계속 ‘와라, 와라’ 했는데 공이 딱 왔다.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막는 데 특화된 1루수”라고 표현했다. “어릴 때부터 ‘뒤로 빠뜨리면 안 된다’고 배웠다. 빠뜨리면 막고, 또 막고. 그래서 막는 거에 좀 특화돼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크게 다칠 뻔”…1루에서 배운 ‘살아남는 법’
웃어 넘길 장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캠프 중 한 경기에서는 1루에서 주자와 부딪칠 뻔했다.
“제가 1루 경험이 적다 보니까, 주자 쪽으로 더 나가서 잡으려다가 손목이 먼저 꺾였다. 더 무리했으면 진짜 크게 다쳤을 것 같았다”고 했다.
연습 때도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연습하면서도 (송구를 받으려고 다리를) 끝까지 뻗다가 무릎 쪽으로 잘못될 뻔했다. 그래서 1루 봤던 애들이 ‘그쪽은 시합 때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라. 예전에 (박)병호 형이 1루에서 주자 쪽 공을 잘 빼는 걸 많이 봤는데, ‘그래서 병호 형이 그렇게 많이 뺐구나’ 싶더라”고 털어놨다.
이제는 ‘막는 1루수’에 더해 ‘다치지 않는 1루수’가 목표다. 몸 하나라도 더 버텨야, 마지막 기회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홈런 욕심 내려놓고, 다시 ‘라인드라이브’로
반등의 열쇠는 결국 방망이다. 이형종도 잘 안다. 3년 합산 홈런이 9개에 그친 현실은 냉혹하다. 그래서 지금 가장 많이 반복하는 단어도 ‘초심’이다. 타석에서의 성향부터 다시 뜯어고치고 있다.
“감독님과 면담에서 감독님께서 제가 홈런 치는 느낌을 갖는 것보다, 라이너로 좀 쭉쭉 뺄 수 있는 타구를 원하신다고 하시더라. 저도 원래 그런 스타일인데, 제가 조금 오바한 것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과거엔 ‘타구를 걷어 올리겠다’며 어퍼 스윙을 키웠다면, 지금은 반대로 내려놓는 중이다. “예전에는 ‘걸어 잡는다’고 할 정도로 띄우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그걸 낮췄다. 걸어 잡지 않고 치려고, 더 간결하게 치려고 한다. 공을 띄우려고 하기보다는 정확하게 맞히면, 2루타·홈런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훈련량도 확실히 달라졌다. “연습과 훈련 양이 일단 많았다. 요 며칠만 조금 편하게 했을 뿐, 계속 많이 했다. 스케줄도 예외 없이 다 소화하려고 했다”고 했다.
몸이 버텨주느냐가 관건이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되더라. ‘아직 되긴 되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애들이 몇 시에 자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더 일찍 자고, 더 일찍 일어나서 몸부터 풀려고 한다. 그렇게 하니까 버텨지길래, ‘이제 치는 거, 훈련하는 건 내가 몸만 만들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올해처럼 하면, 내가 먼저 옷 벗을 것”
내년은 이형종에게 계약 마지막 해다. 그래서 더 솔직하다. 잘하면 조금 더, 못하면 여기까지라는 마음이다.
“솔직히 내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마지막 훈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왔다. 올해같이 하면 솔직히 방출 전에 제가 먼저 옷을 벗겠다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기만 품고 캠프에 들어온 건 아니다. 새 지도진이 건넨 신뢰는, 36살 베테랑을 다시 그라운드로 끌어냈다. “분위기가 예전보다는 확실히 다르다. 감독님, 코치님들도 새로 오셨고, 저한테는 분명히 좋은 찬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이 마무리캠프를 통해 자신감을 조금 더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이형종은 끝내 이렇게 정리했다. “초심 같은 마음 플러스, 간절함과 절실함이 더 생겼다. 감독님이 이렇게 좋게 말씀해주시고 도와주시려고 하는데, 제가 그 믿음에 답하지 못하면 안 되지 않나. 분명히 답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보여준 게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36살 베테랑. 그가 말한 초심과 간절함이, 내년 키움 히어로즈의 1루와 외야 경쟁 판도까지 바꿀 수 있을까. 이제 공은, 다시 이형종의 배트 위에 올려졌다.